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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vergreen Oct 13. 2023

2023년 10월

용서



여전히 요구사항이 많은 사춘기 딸아이가 친구네 집에서 보리차를 마셔 보고는 우리집도 보리차를 끓여 달라 성화다. 비염이 심해 아기때부터 가을 무를 볶은 것과 작두콩을 넣어 더 좋은 걸로 먹이고 있었는데 그게 또 불만이다. 추석 인사로 어머님의 큰언니, 큰 이모님댁에 인사를 갔다가 보리를 얻어와 온 집에 보리차의 향긋함이 가을 저녁을 채운다. 어린 시절 할머니 집 바로 옆에 잘 익은 벼의 내음과 벼 낱알을 빠알간 큰 대야에 담아두고 잔뜩 부어 놓은 이상한 농약냄새마저도 구수하던 그 시절이 생각난다.


"깨톡"

과외 신입생 레벨테스트 공지를 한 후라 또 학부모님이신가 싶어 후딱 폰을 보니 우리 둘째가 4살~7살때까지 다니던 성당어린이집 수녀님으로부터 톡이 왔다.

"우리 JJ, 며칠전부터 생각이 나서 연락드립니다. 잘 지내는지요? 보고싶습니다."

"수녀님, 우리 JJ, 어느새 열살이에요. 앞니도 반듯하게 잘 자랐답니다.

그리고 그때 그 일을 통해 저는 용서를 배웠구요. 히히"


신도시에서 가장 큰 성당 어린이집에서 스쳐가는 아이였을 수도 있겠지만 수녀님도 우리 아이를 평생 못 잊을거다. 아이가 5살 올라가 적응하고 있던 어느 겨울날,  방학이라 고등부 수업을 오후 4시에 마친 시간에 어린이집 선생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어머님. 어떡해요. 어머님..."

"선생님. 왜그러세요!"

"JJ가... 친구가 달려와 머리를 박아서...앞니가..."

"무슨 일이세요 선생님! 대체 무슨 일이에요!"

"앞니 두개가 빠진 것 같아요..."


그 자리에서 소리를 질렀다. 과외 아이들은 눈이 휘둥그레져 상황을 이내 곧 파악해 조용히 집에 갔고 나는 방학이라 집에 쉬고 있는 남편과 차를 타고 치과에 도착했다.


나를 닮아 소같이 큰 눈을 갖고 있는 둘째 아이가 입을 씰룩댄다. 울음이 터져나와 입이 벌어지니 시벌건 피가 질질 흐른다.

"악!" 나는 그자리에서 주저앉았고 남편도 이게 무슨 상황이냐며 소리를 쳤고 죄없는 어린이집 선생님은 이미 울고 계셨다.


그 순간 나는 벌벌 떨고 우는 선생님이 눈에 들어와 손을 잡아 주었고 둘이 치과 로비에서 엉엉 울어대고 아이는 강제 발치를 해야 한다며 치과 의자에 앉아 남편이 아이의 두 팔을 강제로 붙잡고 두개를 뽑아버렸다.


집에 돌아와 남편도 울고 나도 울고 둘째 아이도 울고 아무것도 모른 채 미술학원을 신나게 다녀온 첫째아이도 무거운 분위기를 느꼈는지 금새 울음이 터질 것 같은 얼굴이다. 이게 무슨 상황이며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몰라 멍하니 있는데 수녀님과 선생님, 그리고 머리를 갖다 박은 아이와 그의 부모님이 우리 집에 모여들었다.


"죄송합니다."

수녀님이 우신다.

"죄송합니다."

선생님도 우신다.


"죄송합니다."

우리 둘째보다 더 조그만 덩치의 남자 아이의 머리통만 보인다. 참 단단해 보이네.

가만 앉아 자동차놀이를 하던 우리 둘째 아이에게 그 아이는 자동차를 몰고 부웅 하고 달려오다 머리로 갖다 박았단다.

환장할따. 누구의 책임이란 말인가. 누구에게 책임을 묻는단 말인가. 저 조그만 아이의 머리통? 자동차?

한참을 한숨만 지었다. 함께 울었다.


이런 어른들의 분위기가 무거웠던지 우리집 둘째가 그 아이에게 말을 건넨다.

"내 방 갈래?"

사실 그때는 그 아이도 똑같이 때려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그냥 멍하니 아무말도 하고 있지 않았다.

작은 아이방에서 도란도란 놀이하는 소리가 들린다. 조금 지나니 까르르 웃는 소리도 들린다.


남편이 입을 연다.

"이걸 누구의 잘못이라고 하겠어요. 더이상 할 말이 없을 것 같습니다."

어른들은 침묵했고 아이들의 재잘대는 목소리만 들린다.


그날 밤, 아이의 눈을 보며 나는 더 울었다.

"엄마 진짜 미치겠어. 걔가 용서가 안되."

앞니빠진 갈갈이가 된 둘째가 내 손을 잡는다.

"엄마, 내 친구잖아. 용서해야지."

아...다섯살 짜리의 입에서 나올 말이 아니잖아... 내게 하나님이 용서를 강요하시는 거야? 지금 이 상황에?

"나는 용서가 안되. 너무 미워. 똑같이 아팠으면 좋겠어."

"엄마, 용서해 줘. 걔도 모르고 그런거야."


강제 발치를 해서 잇몸이 지리지리하게 아팠을 아이가 나보다 낫다. 상황 정리가 안되던 어른들에게 둘째가 건넨 용서라는 말에 남편과 나는 그리 하자고 마음을 먹었지만 시댁 어른들의 훗날 교정을 하게 될 경우 그때 교정비용을 부담하겠다는 각서라도 받아내라는 성화에 어린이집에 운영위원회가 열리고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지만 결국 수녀님께서 나중에 교정을 해야 할 경우 본인이 백프로 책임을 지겠다며 지면으로 남겨주셨고 다른 도시의 어린이집으로 옮기시고 나서도 매년 연락이 왔었다. 교정비용때문이 아니라 진심으로 우리 아이가 잘 자라고 있는지 진심에서 우러나온 연락을 말이다.


유치가 강제로 발치되어 영구치가 내려오기까지 4년을 앞니빠진 갈갈이로 살며 잘 씹지못하고 먹는 것도 잘 먹지 않아 삐쩍 골아 저혈당을 달고 살며 몇번이나 응급실로 실려가긴 했지만,  자연의 순리라는게 소름끼치게 정확하여 영구치가 감사히 그 자리에 고이 내려오던 날, 우리 온 가족은 또 울었다. 당연히 그 날 수녀님에게 아이의 갓 잇몸을 뚫고 나온 두 이만 클로즈업 해 카톡을 보내고 교정할 필요 없다고 수녀님 정말 감사했고 죄송했다고 연락을 드리니 수녀님도 안도하셨다.


그렇게 유치가 자연스럽게 내려와 사과를 베어무는 법부터 단단한 음식을 씹는 것을 다시 훈련하며 언제 그 두 이가 없었냐는 듯 잘 지내고 있는 열살의 가을날, 수녀님으로부터 연락이 온 거다. 수녀님은 어떤 생각이 나셨을까. 눈망울이 큰 아이가 앞니 두개가 빠져 씨익 웃을때마다 찬바람이 불던 날 얼마나 이가 시릴까, 아이의 상처가 얼마나 시렸을까를 생각하셨을까.


"어머님. 정말 감사드립니다."

"수녀님, 그 시간 정말 귀한 시간이었어요. 용서를 배웠다니까요"


아, 내가 썼지만 멋있다. '용서를 배웠대'래.

내 멋에 취해 신나게 설거지를 하고 있는데 마음이 따끔거린다.

'내가 용서를 배웠다고...?내가...?'

아, 또 자기방어 나왔고요. 또 멋있는 사람인 척 포장하고요. 하, 진짜 고질병. 자기 방어.


고무장갑을 조용히 벗고 며칠전 부터 쓰기 시작한 일기장을 펼쳤다.

'내가 용서를 배웠나? 내가 진정으로 그들을 용서할 수 있을 까?'


내게 상처를 준 사람들을 나는 용서했을까. 용서를 할 수 있을까. 가족들을 용서할 수 있을까.


할머니집에 갔다가 엄마가 있는 집으로 신이나 돌아가는 길 벌 한마리가 내 머리카락으로 숨어들었다.

"엄마~~" 하고 여섯살의 내가 엄마를 부른다.

항상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던 엄마가 벌에 쏘일까봐 겁이나 우는 아이를 손짓으로 부르더니 베란다에 물을 촤 하고 틀더니 내 머리를 한손으로 잡고 수도꼭지 밑으로 밀어넣었다. 그리고 엄마는 다시 전화를 하러 갔다.어느 날엔 엄마가 칼을 들고 아빠를 죽이겠다며 쫓아갔고 저녁밥을 먹고 있는데 분을 못이겨 유리 반찬통을 쓸어버려 파편과 반찬이 바닥에 나뒹굴고 언니와 나는 그것을 주섬주섬 담고 정리를 했다.


"야이, 니 생일 챙겨주기 싫으니까 니 할매집에 가."

새엄마와 살게 되고 나서 5학년이었나. 내 생일 날 아침. 케잌은 바라지도 않았는데 내 생일을 챙겨주기 싫다며 며 퉁을 주는 새엄마 덕에 생일날 할머니 집에 가게 됐다. 급하게 손녀의 생일을 챙겨줘야 된 할매는 냉장고에 있는 재료로 급하게 배추가 들어간 잡채에 배추가 들어간 김밥을 만들어 주셔서 그렇게 생일을 보냈었다. 할매는 그날따라 손에 힘이 빠지셨는지 물기를 덜 짠 데쳐낸 배추 덕에 질겅질겅 씹을때마다 배추에서 물기가 흘러내렸다. 니맛도 내맛도 없는 배추가 그냥 슬펐다. 그냥 그 날이 슬펐다. 내 생일이 슬퍼지기 시작했다.


고등학교때 친구들 사이에서 왕따를 당했을 때 아빠에게 울며 전학보내달라고 힘들다고 이야기 했을때에 아빠는 여전히 무심했다. "왜!" 버럭하며 마치 내게 문제가 있는 아이인양 물어댔고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은 아빠덕에 고1, 야영가서 나는 무리에서 벗어나 멀찌기 떨어져 활동을 했다. 차라리 조용히 사라지면 좋겠다며 오지도 않는 잠을 잔다며 무기력하게 누워 보낸 시간이 많았었다.



나의 글이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 이런 이야기를 남기지 않으려 했지만 용기내 써 본다.

그런데 그들을 용서할 수 있을까.


코로나에서 겨우 회복해 이제는 우울해 하지 않고  제대로 살아보겠다며 호기롭게 다짐했건만 누구의 큰 뜻인지 이제는 '용서'라는 삶의 과제를 '툭'하고 던져 주시는 것만 같다. 겨우 '우울'의 감정을 39년에 걸쳐 털어낼 수 있었는데 다음 과제는 '용서'인 건가.


정여울 작가의 책을 읽다가 이 구절을 읽고 책을 덮었다.

"Wounded Healer" 상처입은 치유자.

당신께서 내게 원하는 삶이 이런 거라면 나는 또 고개를 숙이고 무릎을 꿇고 그저 당신이 이끄시는 대로 따라 갈 수 밖에 없는 거겠지요.

'하나님께서 나를 쓰실만 하시거든 삶의 단계단계마다 하나씩 연단하셔서

우리 두 아이들, 남편, 그리고 과외 아이들에게 사용되게 해 주세요. ' 기도를 하다 목이 메인다.


나는 또 다음 과제인 용서를 오랜 시간에 걸쳐 치열하게, 힘겹게 싸우겠지.

하지만 나는 결국에 해 낼 것을 믿는다. 삶의 고비마다 능히 해 냈던 나를 믿는다.



온 집에 퍼진 구수한 보리차 향기가 평안하다.

글을 쓰며 얼마나 울었던지 따스한 보리차 한잔 하고 화장실 한번 갔다가 앞으로 펼쳐질 나의 삶을 기대하며 잠이 들거다.


오늘밤은

마냥 슬프지는 않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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