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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vergreen May 10. 2023

2023년 5월

사랑


투머치 감성주의자인 나와는 정반대의 남편.


매사에 논리적, 이성적이며

1년전 하반신 마취하며 수술할때도

의사와 이야기 나누며

수술과정 동안 온갖 집도소리를 들을정도로

피도 눈물도 없을 것 같은 남편이

고작 발목 핀제거 수술을 앞뒀을  뿐인데

작은 침대위에 눕더니

눈빛이 순한 양이 되어 버린다.


1년사이 급격히 체력이 딸리나

아니면 사춘기 딸 키우느라 기력이 다했나

침대에 고이 누워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는데

말이 없다.


"여보~떨려? 이힝, 여보, 잘하고와~!"

"아 쫌. 별거아니다. 갔다올게."

별거아니라는 말과는 다르게

의기양양하던 1년전 모습은 오간데 없이

축쳐져 수술실에 들어간다.


수술대기 명단에는

다양한 나이 환자들의 명단이 뜨고

대기실에는 그의 가족들이 숙연히 앉아있다.


다들 별거 아니라는

발목 핀 제거 수술인데

수술대기실에 앉아있으니

이 특유의 무거운 분위기는

이상하게 살아온 날들을 곱씹어 보게끔 한다.


대기에서 수술중으로

남편의 이름이 옮겨간다.

내게 메스를 들이댄듯 온몸이 아프기시작한다.

뇌의 무슨 회로가 잘못된 건지

타인의 고통을 나는 1.5배 느끼게 된다.

누구의 말마따나

참 힘들게 인생사는 케이스다.



적막이 흐르는데

수술회복실에서 누군가 우는 소리가 들린다.

고개를 들어 회복실 명단을 보니

목소리를 들어보았을 때

80세 저 할머니겠구나,싶은데

갈수록 크게 우신다.


"(꺽꺽 우는소리)

아들이 온다요.

울 아들이 공부를 다마치고

지금 온다요.

아들이 온다요~~~"


80노모의 아들이 공부를 할 리 만무한데

할머니는 애타게 아들을 찾으신다.


"인쟈 공부하고 우리 아들이 온다요~

울아들이 온다말이요~

..."



머리가 희끗 벗겨진 60대즘 되보이는

그녀의 아들같은 분이

대기실에서 어찌할 줄 몰라

수술실 앞을 왔다갔다한다.


저 노모는 어느때를 기억하시는 걸까.

까까머리의 아들이 교복을 늠름하게 차려입고서

해질녘 노을을 등지고

공부를 마치고 돌아오던 모습이

뜨끈하게 밥을 짓는 그 어미의 눈길에

각인되어 있는 것일까.


어미는 아들을 애타게 찾는다.

"아들이 공부를 마치고 오는데~..."


코끝이 또 찡해진다.


자식이 대체 무엇일까.

대체 어떤 인연이길래

나를 버리고 깨부수어도

그토록 끝도없이 미안하고 애처롭고 애달픈걸까.


나의 생모도

정신이 온전한 날이면

이토록 지독하게 내가 생각이 날까.



남편이 수술을 마치고 나왔다.

남편의 얼굴을 쓰다듬는다.

"아까운 내 남편, 아까운 내 여보ㅜ.ㅜ"

"아우,쫌. 제발. 오바좀 하지마."


자식을 지키기위해

예민해지는 어미사자처럼

엘리베이터를 오르고

복도를 지나는 동안

남편의 수술부위를 경호하고

병실에 들어오자마자

온 몸을 두드려맞은 듯 몸살끼가 도진다.

너무 감정이입했나보다.

나란 인간, 참 독특하다.



하루에도 몇번이고

1층 카페와 편의점으로 오가며

사람들을 바라본다.



링겔꽂은 어린 손녀를 품에 안고서

잠투정 부리는 아이를

할머니 할아버지가 사랑 듬뿍담긴 목소리로

자장가를 불러주신다.

"우리 @@이가 잠이와요~

얼른 열이 떨어지게 해 주세요~

잠이 와요, 잠이와~

우리 @@이가 잠이와~"



몸이 쇠약해져

휠체어에 탄 노모에게

중년의 아들이 말을 건넨다.

"엄마. 어때요. 괜찮아요?"

허공을 응시하던 노모가

아들의 목소리를 이내 듣고는

눈을 바라보며 대답한다.

"어? 어. 그래."



육신은 쇠약해져

삶의 낙과 행복이 잠시 중단된것 처럼,

뻥 비어져 보이는 이순간에

사랑으로 다시금 채워지는것만 같다.



그들 사이에 느껴지는

온기와 사랑을 바라보며

사랑을 더 가득 장전하고

내사랑을 부담스러워하는

AI같은 남편의 병실로 올라간다.



오늘 이 순간도 참 귀하고 복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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