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간판 없는 슈퍼는 사라졌지만 진짜 간판은 남았다

브랜드 자산중 브랜드 연상에 대하여

by 임용

"여보는 항상 간판을 보더라" 아내가 길을 걷다 신기하게 나를 본다. 아내가 간판을 훑어보는 내 버릇을 알아챈 것이다. 나도 모르는 사이 언제부턴가 상가의 간판을 읽는 게 버릇이 됐다. 마케팅이 내 본업이라 그럴 수밖에 없다고 아내에게 대답했다. 하지만 무언가 또 다른 이유가 나 스스로에게 있을 거 같았다.


간판이 부러웠던 슈퍼마켓 아들


어릴 적 부모님은 슈퍼마트를 운영했다. 말이 슈퍼마트지 작은 구멍가게였다. 그래도 그 구멍가게에서 부모님은 집도 마련하고, 누나와 나 모두 대학까지 보냈다. 그런데 부모님은 30년 넘게 슈퍼마트를 운영하면서 간판 하나 없었다. 어느 날 나는 엄마한테 물었다. "간판 하나 다는 거 어때?" 그러자 엄마는 필요 없다는 대답을 했다. 장사도 안된다면서 왜 부모님은 간판이 필요 없다고 할까? 나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때부터 다른 가게들의 간판은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그리고 부러움은 간판을 보는 버릇으로 이어진 것 같다.


누나와 나는 브랜드이자 마스코트


돌이켜 생각해보면 부모님에게 간판은 필요 없었다. 누나와 내가 간판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누나는 존재 자체가 브랜드가 되기도 했다. '종점상회'라는 슈퍼마트 이름이 있어도, 누나 이름으로 ○○네 가게라 불렸다. 누나는 부모님의 첫 자녀로 상징성이 있었다.

한편, 나는 슈퍼마트의 마스코트였다. 나는 어릴 적 슈퍼마트에서 꽤 많은 시간을 보냈다. 자 호루라기를 불며 교통경찰 놀이를 하고, 가끔은 상품을 진열하며 부모님의 일도 도왔다. 그런 모습들을 손님이 보면 귀여운 어린아이였을 거다.

심지어 성인이 되어서도 나는 슈퍼마트의 마스코트였다. 슈퍼마트 앞에는 30사단 군부대가 있었다. 그 군부대에 이 좋게 내가 발령받아 복무를 하게 되었다. 너무 가깝다 보니 중대 안에서 신의 아들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러한 소문은 중대와 대대를 넘어 사단 전체로까지 퍼졌다. 그러다 보니 군 복무가 슈퍼마트를 홍보하게 된 것이다.


사람도 브랜드 자산이니까


브랜드에 자산이라는 개념이 있다. 브랜드 자산의 구성요소 중 하나는 브랜드 연상이다. 예를 들어 기업 '애플'하면 떠오르는 게 혁신, 스티브 잡스가 우리 머릿속에서 떠오를 수 있다. 이렇게 떠오르며 연상되는 이미지들이 애플 기업의 브랜드의 연상이고, 브랜드 자산 중 일부이다.

부모님의 슈퍼마트인 '종점상회'를 고객들 입장에서 생각하면 누나와 내가 떠올랐을 수 있다. 따라서 누나와 나는 '종점상회'의 브랜드 연상이고 자산 중 일부였던 것이다.


간판 없는 슈퍼마트는 사라졌지만 진정한 간판은 남았다


30사단 앞 간판 없는 슈퍼마트는 지금 사라지고 없다. 30년 넘게 운영한 슈퍼마트를 폐업 처리하며 부모님은 많이 허탈해했다. 래도 허탈함은 잠시였다. 진정한 간판들은 사라지지 않았고, 오히려 늘어났기 때문이다. 누나와 나는 부모님에게 소중한 간판들이자 자산으 남아 있다. 그리고 매형, 조카, 내 아내까지 새로운 간판이자 자산들이 부모님 마음속 슈퍼마켓의 빈자리를 채웠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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