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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이문 Aug 16. 2022

22년 8월 15일 광복절

23개월 8일

피곤한데 카페인 과다 섭취로 인한 소화기관 불편감과 장기간 풀지 못한 목과 어깨와 등의 통증으로 잠이 오지 않아서 한참 책상 앞에 앉아있다. 묵상도 하고 오랜만에 친구와 카톡도 했다. 일기를 쓰기에는 어깨가 너무 아파 귀찮았는데, 지난 일기를 읽다 문득 글로 남긴 기억의 힘을 느끼고 브런치를 열었다. 부족하더라도 남기자. 그러면 무엇이든 남는다.


토요일부터 우주의 콧물이 확연히 줄어들었다. 우주는 며칠 못 잔 잠을 점심까지 몰아서 잤다. 그리고 또 더 회복했다. 낮잠을 자고, 밤잠을 자고 일어날 때마다 우주는 더욱 회복했다. 토요일에 진료를 보고 왔지만 기침에 대해 말씀드리지 않았던 게 자꾸 마음에 걸려서 일요일에도 진료하는 소아과에 다시 다녀왔다. 안심이 됐다. 


수족구 진단을 끝으로, 다니던 소아과가 여름휴가에 들어가는 바람에 새로운 소아과들을 경험해보게 됐다. 더 좋은 원장님을 만나면 어쩌나 싶었는데 다행히 아직도 우리 원장님이 나랑은 가장 잘 맞는다. 어떤 증상에 대해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들과 대처 방법을 미리 알려주셔서 좋다. 속사포 랩처럼 쏟아내시지만 집중해서 잘 들으면 된다. 우리 원장님 그립다. 원장님이라면 수족구 완치 판정을 내려주실 때 우주를 좀 더 쉬게 해 주라고 얘기해주셨을 것이다. 콧물이 나기 시작했을 때 주의사항을 알려주셨을 것이다. 콧물이 심해지면 중이염이 올 수도 있다고 조심시켜주셨을 것이다. 우리 원장님이 그립다.


우주는 아팠던 2주 간 더 많이 자랐다. 처음으로 밤에 아빠 곁에 누워 잠이 들었다. 할 수 있는 표현도 더 많이 늘었다. 지나간 일에 대한 기억을 문장으로 설명한다. 같은 동사도 과거형으로 쓰기도 하고 요청하는 데 사용하기도 한다. 장난감으로 역할놀이할 때 상황을 만드는 능력도 생겼다. 다른 사람의 말을 알아듣고 그에 대해 말로 동의나 거부를 정확히 표시한다. 가령, 졸리냐고 물으면 고개를 젓는 것으로 답하지 않고 '안 졸려.'하고 말하는 식이다. 연결어의 어감을 정확히 이해하고 사용한다. 비슷하거나 같은 것을 모양만 찾는 줄 알았는데 기능이 같은 것도 찾아낸다. 기억하는 노래 가사가 더 늘었다. 아파서 집에 있는 동안 유튜브를 많이 봤는데 거기에 나온 대사를 기억한다. 침대에서 열심히 뛰더니 "엘리베이터에서 뛰면 안 돼~"하고 말했다. 유튜브에서 본 엘리베이터 안전교육 영상에 나오는 대사다. 뇌 발달은 기적이다. 


열이 잘 떨어지지 않았던 밤들이 아득하다. 목이 너무 아파서 음식을 삼키다 안겨 울던 우주의 모습이 흐리다. 콧물 생성기 마냥 계속 콧물이 나와서 서너 시간 동안 잠들지 못하고 다시 깨서 안겨 자던 밤들도, 불과 며칠 전인데 기억이 선명하지 않다. 다행이다. 다 지나갔다. 그때는 지나갈 거라는 희망도 품기 어려웠는데. 일주일이면 끝났을 시간이 2주로 늘어난 데는 내 탓이 크다. 수포가 딱지로 변하자마자 우주가 다 나았다고 섣불리 판단해서다. 바이러스를 온몸으로 이겨낸 아기의 몸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생각하지 못해서다. 며칠은 더 조심해줘야지. 체온을 관리하고 영양을 더 신경 써야 한다. 앓느라 마른 몸을 다시 회복시켜줘야 한다. 


내 생일을 축하해주러 동생과 제부가 집에 왔다. 우주는 오랜만에 이모를 만나 행복한 밤을 보내고 아쉬움에 울다 늦게 잠들었다. 길었던 여름, 에어컨이 없는 우주 방을 떠나 셋이 함께 했던 안방 생활을 청산하고 우주는 다시 본인의 방으로 돌아갔다. 모든 게 참 감사한 밤이다. 하나님이 주신 따뜻한 밤이다. 짧은 요가 루틴으로 몸을 풀어내고 나도 누워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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