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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땅, 새로운 시작 50세에 떠난 이민

가족과 함께하는 두 번째 삶

by 김종섭
⑨이 시대의 어른이 되었습니다

2014년 1월 14일, 내 인생에서 또 다른 모험이 시작되었다. 50세라는 나이에 가족이 있는 캐나다로 떠나는 비행기에 올랐다. 지금 돌이켜보면 결코 늦은 나이가 아니었지만, 당시에는 "너무 늦었다"는 생각이 나를 짓눌렀다. 7년간의 기러기 생활을 끝내고 가족과 다시 함께하기 위해 떠났지만, 설렘보다 막연한 두려움이 더 컸다. 안정적인 직장도, 익숙한 환경도 뒤로하고 완전히 새로운 삶을 시작해야 했기 때문이다.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영어로 쏟아지는 안내방송, 낯선 풍경, 그리고 이국적인 공기를 들이마시는 느낌과 건물 내에서 풍겨오는 냄새까지 모든 것이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사람들의 모습에서도 "이방인"이 된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익숙했던 한국의 삶이 저 멀리 과거로 사라지는 듯했다.

공항에서 가족과 재회하는 순간, 우리는 서로를 꼭 끌어안았다. 7년이라는 세월이 무색할 만큼 반가웠지만, 한편으로는 어색함이 감돌았다. 아이들은 훌쩍 자라 있었고, 아내의 얼굴에는 혼자서 아이들을 키우며 쌓인 세월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나는 "가장의 역할"을 다했다고 생각했지만, 가족들에게는 부족한 아빠이자 남편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착의 첫걸음은 집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가족은 이미 캐나다 생활을 익숙하게 자리 잡았지만, 나에게 있어 캐나다 생활 모든 것이 낯설었다. 한국에서는 사소한 문제도 혼자서도 쉽게 해결할 수 있었지만, 이곳에서는 심지어 생활용품을 사는 일조차 혼자서는 쉽지 않았다. 상점에서 점원의 영어 질문을 알아듣지 못해 멍하니 서 있기도 했고, 자동 계산대 앞에서 한참을 헤매기도 했다. "과연 내가 이 생활을 해낼 수 있을까?" 하는 불안이 밀려왔지만, 스스로를 다독이며 하나씩 익혀나가기로 마음먹었다.

언어 장벽은 생각보다 높았다. 간단한 대화는 가능했지만, 실생활에서 원활하게 소통하기에는 한계가 많았다. 은행에서 계좌를 개설하는 일도 가족 중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했고, 정부에서 보내온 편지 내용조차 읽으려면 마치 해독이 어려운 시험 문제처럼 느껴졌다. 캐나다 운전면허증으로 다시 발급받고 새로운 법규, 새로운 길을 운전하는 일 또한 새로움이라는 설렘보다는 도로에 대한 두려움이 앞섰고, 주유소에서 주유하는 방법도 새롭게 익혀야 했다.

모든 것이 새롭게 적응해야 할 과제였다. 익숙한 것들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이 나를 점점 위축시켰다. 자연스럽게 말수도 줄었고,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질문하는 시간만 늘어났다. "내가 여기서 잘 살아갈 수 있을까?" 하지만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쉽게 찾을 수 없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가족과 함께하는 순간들이 조금씩 위안이 되었다. 아이들이 행복하게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가장 큰 기쁨이었다. 저녁 식탁에서 하루 동안 있었던 이야기를 나누고, 주말이면 함께 공원을 산책하며 캐나다 생활에 점차 익숙해졌다. 작은아들이 "아빠랑 같이 공원도 가고 놀 수 있어서 좋아"라고 말했을 때, 가슴 한쪽에 쌓여 있던 미안한 마음이 조금씩 채워지는 듯했다.

이민 생활이 쉽지 않은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경제적인 문제였다. 한국에서는 안정적인 직장을 다녔지만, 캐나다에서는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다. 현지 회사에 지원할 만큼 영어 실력이 충분하지 않아, 한인 사회에서 운영하는 사업체에 이력서를 넣으며 한정적인 선택지 속에서 도전을 이어갔다. 시간이 흐를수록 한국과 캐나다의 삶을 비교하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캐나다의 부정적인 면이 더 많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민을 떠나며 주변인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비행기 안에서 한국에서 있었던 추억과 자존심을 태평양에 버리고 와야 한다." 그 말만큼 이민자의 현실을 정확히 표현한 명언이 없었다. 나는 그 의미를 깊이 새기며 새로운 삶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하지만 나는 점차 이민이 단순히 거주지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삶의 방식을 완전히 바꾸는 일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비록 늦은 나이에 시작한 도전이었지만, 가족과 함께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스스로 다짐했다.

첫발을 내디딘 이곳에서, 나는 다시 걸음마를 떼는 심정으로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적응하는 과정이 쉽지는 않겠지만,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다 보면 언젠가는 이곳이 "내가 살아가는 곳"이 될 것이라 믿었다. 낯선 땅에서의 시작이 두려움이 아니라 또 다른 가능성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나는 스스로를 위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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