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일상 속에서 만난 캐나다의 세심한 배려와 따뜻함
오늘 아침, 아내의 출근길에 함께 나섰다. 아내는 요즘 작은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매일 차로 5분도 채 걸리지 않는 거리의 출근길을, 오늘부터는 걸어서 가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걸으면 약 10분 정도 걸린다고 했다. 그동안 승용차로 가는 게 너무 익숙해졌고, 어느새 게으름을 부르고 있었던 것 같다고 웃으며 말했다. 가까운 거리지만 걸으면서도 새로운 생각을 하게 되는 순간이 아닐까 싶었다. 나도 아내의 결정을 응원하며 같이 배웅했다.
아내와 회사 근처에서 헤어진 후, 나는 맥도널드에 들러 따뜻한 커피를 한 잔 사서 도서관으로 향했다. 오늘은 조금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고 싶었고, 도서관은 그런 나에게 가장 좋은 장소였다. 도서관에 들어서자, 다양한 형태의 좌석들이 나를 반겨주었다. 여럿이 앉을 수 있는 넓은 테이블부터, 칸막이로 둘러싸인 아늑한 개인 좌석까지 여러 선택지가 있었다.
내가 고른 자리는 창가에 있는 작은 독립된 좌석이었다. 소파처럼 편안한 의자에 앉아, 좌우로 움직일 수 있는 작은 테이블이 의자 위에 장착되어 있었다. 창밖으로 비치는 햇살이 따스하게 내리쬐며, 그 빛 속에서 나는 책을 펼치거나 노트북을 열기에 더없이 좋은 자리에 앉아 있었다. 이 자리는 책을 읽기 위한 공간이지만, 마치 여유를 즐기기 위한 특별한 공간처럼 느껴졌다. 이곳에서 한동안 조용히 시간을 보내며, 일상에서 벗어난 작은 여유를 만끽했다.
인터넷을 훑어보며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도서관은 점차 사람들로 붐비기 시작했다. 순간, 문득 내 주위의 공간을 돌아보게 되었다. 벽면에 'Teen Lounge'라는 글씨가 보였다. 순간, 내가 앉은자리가 십 대들 만을 위한 공간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공간에 앉을 수 있는 나이가 아닌 것 같아 약간 어색했지만, 여전히 빈자리가 있었기에 그곳에서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자유롭지 못한 느낌을 떨칠 수 없었다.
내 뒷자리에 초등학생과 대학생으로 보이는 두 사람이 앉았다. 대학생은 아마도 과외 아르바이트를 하는 듯했다. 책을 펼쳐 들고 초등학생에게 수학 문제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캐나다에서도 일부 학생들은 과외를 받지만, 한국처럼 과외가 일상적인 문화는 아니다. 학습 보충이 필요한 경우에만 과외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도서관에서 이런 풍경은 나에게 다소 낯설게 느껴졌다.
도서관은 다양한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대부분은 책을 읽는 대신, 컴퓨터를 사용하고 있었다. 장년층의 사람들이 많았다. 컴퓨터로 자료를 찾거나, 개인적인 작업을 하는 이들의 모습을 보며, 나는 도서관의 또 다른 모습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책을 읽는 공간이지만, 사실 도서관은 이제 사람들이 자신의 시간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열린 공간이 된 것 같았다. 책이 많지만, 도서관 별도의 시청각실에 PC사용과 오픈 테이블 위에는 책보다는 개인용 노트북이 더 많았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나는 잠시 화장실에 들렀다. 그리고 그곳에서 예상치 못한 장면을 마주했다. 남자 화장실에서 버튼을 누르면 자동으로 공급되는 기계가 설치되어 있었다. 화장실에 비치된 생리대, 탐폰, 기타 여성 위생 용품을 제공하는 기계였다. 일반적으로 "sanitary product dispenser" 또는 "feminine hygiene product dispenser"라고 불린다.
처음에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왜 남자 화장실에 생리대가 있을까? 이유는 간단했다. 일단, 남녀 구분 없이 공공 화장실에서 위생 용품을 제공하는 것이라 한다. 남자 화장실에 생리대가 비치된 이유는, 일부 남성도 여성과의 교차 문제나 긴급 상황에서 사용이 필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여행 중에 여성 친구나 가족의 필요를 충족시키거나 예상치 못한 상황에 대비하는 경우, 이런 시설은 공공의 편의성을 고려한 배려로 볼 수 있다.
자판기는 버튼을 누르면 자동으로 공급된다. 당연히 요금은 없다. 나는 이 배려가 왜 필요한지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오늘 도서관에 온 이유는 책을 읽고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의외로 내가 경험한 것은 책 보다 더 중요한 배려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현장에서 깨달았다. 작은 것까지 배려하는 사회가 있다면, 그 사회에서 개인의 삶은 조금 더 따뜻하고 풍요로워질 것이다. 나는 그 생각을 하며, 오늘 이곳에서 느낀 작은 여유와 배려가 나를 더욱 따뜻하게 만들어준다는 사실을 새삼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