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과 고립의 시간
나는 왜 과거를 붙잡고 있는가. 누구나 한 번쯤 분노를 느낀 경험이 있을 것이다. 어떤 이들은 오래된 분노를 여전히 놓지 못한 채 미움을 키워간다. 분노는 단순히 의지로 내려놓을 수 있는 감정이 아닐 수도 있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내 안의 분노는, 미안하게도 아직도 내려놓지 못했다. 순간순간 되살아나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시간 때문이다. 내려놓고 용서하려 해도 마음이 허락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도 영원히 내려놓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아직 단 1%도 용서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그만큼 혹독하고 깊은 분노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나의 분노는 몇 년 전, 내가 근무하던 성당에서 시작되었다. 많은 이들이 그곳을 거룩한 공간이라 불렀지만, 나는 그 안에서 위선과 권력의 얼굴을 마주했다.
겉으로는 늘 미소를 띠며 손을 모으던 그녀. 그러나 그 미소 뒤에는 배제와 조종이 숨어 있었다. 늘 맨 앞에 앉아 가장 먼저 입을 열던 사람. 나는 그녀가 정직하고 인성이 바른 사람이라 믿었다. 그러나 그 믿음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녀 곁에는 언제나 모든 것을 포용하는 듯 보이는 이들도 있었다.
겉보기에 사소해 보일 수 있는 말과 행동이었지만, 나는 인생 최대의 치명상과 불명예를 입었다. 마치 무심코 던져진 돌에 맞아 외롭게 죽어간 개구리처럼, 누구도 나의 고통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위로 한마디 없었고, 사람들은 왜 내가 쓰러졌는지도 모른 채 지나쳐버렸다.
직장을 떠나기 전까지 나는 한 가닥 기대감으로 그들을 믿고 있었다. 어머니가 평생을 기도하며 다녔던 곳이었고, 나 또한 모태신앙으로 그 공동체에 몸을 담아왔다. 그러던 어느 날, 믿음도 사람도 한꺼번에 무너졌다. 가식, 이중성, 위선이 동시에 드러났기 때문이다. 처음엔 대화로 풀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갈등은 점점 더 퍼졌고, 나는 조용히 밀려나 고립되었다. 존중 없는 공간은 사람을 쉽게 무너뜨린다.
가장 믿었던 이들조차 침묵했다. 존경하던 성직자도, 따뜻했던 누군가도 말없이 나를 지나쳤다. 나는 누구에게도 보호받지 못한 채 혼자가 되었다. 결국 사표를 냈다. 그만두기 전의 나는 이미 기도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상처는 성당을 떠난 뒤에도 내 안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지금도 가끔, 그날의 분노가 내 어깨를 두드린다. 나는 여전히 과거를 붙잡고 있다. 후회도, 미련도 아니다. 정직하지 못했던 기억이 나를 떠나지 않는다. 내가 등을 돌린 것이 아니다. **‘신앙의 이름을 앞세운 사람들’**이 나를 밀어낸 것이다.
그날 이후 나는 기도를 멈췄다. 기도는 여전히 아름답지만, 그 소리를 들어줄 존재에 대한 신뢰는 그곳에서 무너졌다. 언젠가 이 분노를 내려놓을 수 있을까. 아니면 나는 평생, 그날을 끌어안고 살아가야 할까. 나는 아직 그 안에 머물러 있다. 차라리 그땐 몰랐다면, 이런 미움과 증오의 감정이 내 삶을 흠집 내지 않았을 텐데.
그러나 언젠가 이 글이, 그 상처에서 벗어나는 작은 문이 되어주기를 바란다.
※ 이 글은 특정 종교나 신앙에 대한 비판이 아닌, 개인이 직장이라는 공간 안에서 겪은 인간적인 상처와 갈등을 담은 이야기입니다. 종교적 의미나 이념을 논하려는 의도는 없으며, 그저 한 사람의 고통스러웠던 시간을 기록해 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