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끝에서 만난 따뜻한 맛과 사람의 온기
튀르키예 여행의 마지막 날 오후. 떠날 준비를 하며 마음은 이미 이별을 준비하고 있었다. 낯설고 설레던 첫날과는 달리, 이스탄불의 공기와 풍경은 어느덧 익숙해졌다. 아쉬움과 안도가 교차하던 그날, 우리는 마지막으로 갈라타 타워를 보기 위해 파묵칼레에서 아침 일찍 출발해 6시간을 달려왔다.
익숙해진 듯 낯선 골목을 지나 갈라타 타워 앞에 섰다. 하늘을 향해 뾰족하게 솟은 탑은 고요하면서도 웅장한 자태로 우리를 맞았다. 말없이 서서 세월의 풍경을 담아 온 이 탑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낯선 도시에서 만난, 하나의 이정표 같은 느낌이었다.
타워를 뒤로하고 탁심 광장을 향해 걷던 중, 아들이 말했다.
“여기 현지인들 사이에서 유명한 전통 맛집이래요. 가볼래요?”
아들이 가리킨 곳은 ‘하지 압둘라(Hacı Abdullah Lokantası) 언뜻 보기엔 조용한 동네 식당 같았고, 소박한 외관에 잠시 의심이 들었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건물 외관만 보고 판단한 나의 착각이자 편견이었다.
가게 내부는 크지 않았다. 테이블도 몇 개뿐이고, 화려한 인테리어나 세련된 장식은 없었다. 하지만 오래된 시간의 결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고, 정리되지 않은 듯한 내부가 오히려 맛이 있을 것이라는 묘한 신뢰가 느껴졌다. 이런 허름한 분위기가 진짜 맛이 숨어 있는 법이다.
자리에 앉자 직원은 메뉴판을 가져다주었다. 메뉴판에 음식 이름이 한국어로 먼저 표기되어 있었고, 한국어 뒤로 영어와 터키어가 표기되어 있었다. 아들이 고른 메뉴는 ‘클로티드 크림과 꿀(Clotted Cream)’이었다. 달콤한 맛이라면 아빠가 분명 좋아할 거라는 아들의 자신감이 느껴졌다. 메뉴판이 나라별로 따로 제작된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이유나 방법은 어떠하든지 이런 세심한 배려가 감사하고도 정성스럽게 다가왔다.
잠시 후, 따뜻한 빵과 함께 하얀 클로티드 크림, 윤기 흐르는 꿀, 그리고 커피 대신 진한 홍차가 테이블 위에 놓였다. 주인아저씨가 능숙한 손놀림으로 빵 위에 꿀을 듬뿍 뿌려주며 환하게 웃었다. 그의 몸짓엔 익숙함과 정겨움이 묻어 있었다.
식당 안은 주인아저씨의 이야기로 가득했다. 그는 손님들에게 아들 자랑을 하며 눈을 반짝였고, 그 모습은 세계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아버지’의 모습 그대로였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자식 자랑은 부모의 공통 언어라는 생각에 미소가 번졌다.
아저씨가 있는 테이블 위에는 한국과 태국의 국기가 꽃병처럼 꽂혀 있었고, 벽면에는 한국 유명 연예인의 사인도 붙어 있었다. 한국을 사랑하는 마음일 수도 있고, 한국인 손님이 많아서 감사의 표시로 꽂아둔 것일 수도 있다. 터키가 한국을 ‘형제의 나라’라 부른다는데, 그 마음이 국기 하나에도 담겨 있기를 바랐다.
스푼으로 한 입 떠먹자, 부드럽고 고소한 크림과 깊은 꿀맛이 입안 가득 퍼졌다. 우유의 진한 풍미와 꿀의 달콤함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며, 단순하지만 결코 단조롭지 않은 맛을 선사했다. 말이 필요 없었다. 그저 눈빛만으로 “이거 정말 맛있다”는 감탄을 나눴다. 입안에 남은 달콤함은 마음까지 포근하게 감싸주었다.
아들은 샥슈카라는 요리도 추가로 주문했다. 토마토소스에 계란을 넣어 만든 터키식 요리로, 매콤하고 부드러운 풍미가 어우러져 익숙하면서도 이국적인 맛을 품고 있었다. 여행의 마지막 날이라 그런지 살짝 한국 음식이 그리워지기도 했지만, 아들은 그 맛을 기억하고 있었는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식사를 이어갔다. 두 번째 방문이라 그때의 감동이 다시 떠오른 듯했다.
식당을 나서 탁심 광장 쪽으로 걸었다. 북적이는 사람들, 서로를 비켜가며 걷는 거리. 복잡하지만 그래서 더 인간적인 풍경. 서울의 명동을 떠올리게 하는 장면 속에서, 여행의 마지막 여운을 곱씹었다.
화려한 레스토랑도, 고급 디저트도 아니었지만, 이 작은 식당에서의 경험은 무엇보다 특별했다. 그날 오후, 가족과 함께 나눴던 빵 위의 꿀맛처럼 달콤한 기억은 오래도록 잊히지 않을 것이다.
아들의 추천 덕분에, 여행의 마지막 순간까지 따뜻한 추억 하나를 더 품고 돌아올 수 있었다.
여행의 끝에서 만난 이 소박한 간식 한 접시가, 우리 가족의 튀르키예 여행을 가장 아름답게 마무리해 주었다.
*맛집 기행 *2025.5.14 오후*하지 압둘라 식당(Hacı Abdullah Lokantas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