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에서 마주한 60년 전의 나, 돌사진이 전한 세대의 거리
오늘은 ‘그 길 위에서 만난 오늘’ 연재의 한 장면으로, 오래된 돌사진을 통해 세월과 세대의 간극을 돌아본다.
앨범을 정리하다가 빛바랜 사진 한 장을 발견했다. 60년이 훌쩍 지난 나의 돌사진이었다. 어린 시절의 모습이 남아 있는 유일한 사진이다. 사진 속에는 시대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묻어 있다. 짧은 소매에 단추가 달린 셔츠를 입고, 앞이 트인 바지를 착용하고 있었다. 당시엔 아기들에게 흔히 입히던 옷이었다. 사진 속 트인 바지 사이로 아기의 가장 사적인 부분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그 시절에는 누구나 웃으며 받아들였던 순수한 사진 장면이었다. 지금 같으면 이해받기 힘든 모습이지만, 그때는 자연스러웠다. 사진은 꾸밈없고 자유로운 1960년대의 한 단면을 보여주며, 따뜻함을 담은 기록이 되었다.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사진의 중간 부분은 찢긴 듯 트여 있었고, 색은 누렇게 바래 있었다. 그 사진을 그냥 버려둘 수 없어 복원해 보기로 했다. 포토샵으로 손상된 부분을 보정하고 최대한 자연스럽게 복구했다. 완벽하진 않았지만, 찢어진 부분을 감출 수 있었고, 그 자체로 충분했다.
사진이 담긴 핸드폰을 들고 집 근처 런던드럭(London Drugs) 매장에 들러 사진 인화를 맡겼다. 사진을 찾던 다음 날, 괜히 마음이 들떴다. 혹시 중요한 부분이 노출된 사진이라 인화를 거절당하지 않을까 걱정도 되었다. 캐나다 사람들의 눈에는 다소 낯선 1960년대 한국 아기의 복장이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었다.
괜한 걱정이었다. 사진은 봉투에 깔끔히 밀봉되어 있었다. 집에 와 사진을 꺼내보니, 복원된 결과는 완벽하지 않았지만, 세월의 흔적을 따라가는 느낌이었다. 사진을 액자에 넣어 책상 앞에 올려두니 묘하게 가슴이 뭉클했다. ‘이게 바로 60년 전 나였구나.’ 세월의 먼지가 묻은 사진 속 어린 나를 바라보며, 그 시절과 눈을 마주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장롱 속에는 몇 달 전 정리한 가족사진 앨범들이 여전히 보관되어 있다. 한국에서 온 큰아들에게 “어릴 적 사진 가져가라”라고 했더니, 아빠가 그냥 보관하세요라며 두고 갔다. 아내가 아쉬운 마음에 “그래도 열쇠고리에 담긴 돌사진이라도 가져가라”라고 했지만, 아들은 웃으며 “엄마가 갖고 계세요”라고 말하고 떠났다. 작은아들도 다르지 않았다. 결혼까지 했지만, 앨범에는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보며 문득 생각했다. 우리 세대에게 사진은 시간을 붙잡는 기억의 끈이었지만, 요즘 세대에게 사진은 클릭 한 번으로 남겨지는 디지털 데이터일 뿐이다. 현상된 사진은 그들에게 번거롭고 낯선 물건일지도 모른다. 활자 신문이 사라지고, 손 편지가 이메일로 바뀐 것처럼, 사진도 디지털 세상 속에서 형태를 달리했을 뿐이다.
예전에는 결혼식이나 신혼여행 때 ‘남는 건 사진뿐’이라며 카메라를 챙기곤 했다. 그 시절엔 사진 한 장이 인생의 기록이자 기억의 증표였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남기기보다는 즉시 보여주고, 기록하기보다는 순간을 공유하는 시대가 되었다.
복원된 돌사진을 바라보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마 우리 세대가 간직하는 ‘사진’의 의미는 서서히 사라져 가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 장의 빛바랜 사진 속에는, 어떤 디지털 이미지로도 대신할 수 없는 세월의 온기와 존재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
오늘 책상 앞에 둔 돌사진을 바라본다. 사진 속 아기의 눈빛이 따뜻하게 느껴진다. 혹시 이 글을 읽는 누군가에게도, 오래된 사진 한 장이 전하는 그 따뜻함이 닿기를 바란다.
■오마이 뉴스 https://omn.kr/2fnz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