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의 성탄을 바꾼 커피 뚜껑 위 문장 하나

복사해 보낸 모바일 카드보다 따뜻했던 어느 직원의 손글씨...

by 김종섭

한국은 이미 크리스마스 당일의 열기로 가득하겠지만, 시차가 있는 이곳 캐나다는 이제 막 12월 24일 성탄 전야의 오전을 지나 오후로 접어드는 시간이다. 기대했던 화이트 크리스마스는 물거품으로 돌아왔고, 영상의 기온 속에 오늘도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다. 매년 이맘때면 눈 덮인 풍경을 기다리지만, 올해 사람들의 기대는 차분한 빗줄기에 젖어버렸다. 기후가 예상을 벗어나 어수선할 법도 하지만, 캐나다에서 성탄절은 종교를 떠나 가족과 함께하는 연중 가장 큰 명절로 다가온다.

아내와 늦은 아침을 먹으려고 패스트푸드점에 들러 햄버거 세트를 주문했다. 주문한 메뉴와 함께 나온 커피 두 잔이 오늘따라 유난히 색다른 모습으로 눈에 띄었다. 커피잔 뚜껑 위에 붉은색 매직으로 직접 쓴 문구가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한 잔에는 'Winter Magic(겨울날의 기적)', 다른 한 잔에는 'Santa Approved(산타도 인정한 맛)'라고 적혀 있었다.


'Winter Magic'이라는 말은 직역하면 겨울의 마법이지만, 비 오는 궂은 날씨에도 기분 좋은 일이 생기길 바라는 '겨울날의 깜짝 선물' 같은 의미로 읽혔다. 또 'Santa Approved'는 산타클로스조차 합격점을 줄 만큼 정성껏 준비했다는 직원의 귀여운 자신감이 담긴 표현이었다. 패스트푸드점은 보통 효율과 속도를 우선시하는 곳이다. 그런 무미건조할 수 있는 공간에서 직원들은 바쁜 와중에도 시간을 내어 손님이 마실 커피잔 뚜껑마다 손글씨를 남겼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매년 크리스마스 풍경을 그려 인쇄한 컵이나 카드에 적힌 형식적인 인사말, 혹은 모바일 메신저로 영혼 없이 주고받는 복사된 글과 그림보다 이런 구체적인 수고가 사람의 마음을 더 움직이게 한다. 오늘따라 커피의 맛이 더 좋게 느껴진 것은 아마도 그 직원이 쏟은 정성이 전달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화려한 조명 아래 북적이는 한국의 성탄 풍경과 달리, 캐나다의 성탄은 이 커피잔 뚜껑 위에 손수 써 내려간 글씨처럼 각자의 자리에서 이웃에게 건네는 사소한 배려에 더 큰 의미를 두곤 한다. 떠들썩한 축제는 아닐지라도, 사람과 사람 사이의 틈을 메우는 건 결국 이런 작은 배려들이다.

값비싸고 거창한 선물이 아니더라도 내가 가진 정성과 시간을 조금 할애해 상대방에게 진정한 마음을 보일 때, 진짜 크리스마스가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화려하게 먹고 마시는 유흥 문화 이전에 '나눔'이라는 성탄의 본질을 캐나다의 한 패스트푸드점에서 새삼 확인한 셈이다.

식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내는 리쿠어 스토어(주류판매점)에 가서 와인 한 병을 사자고 했다. 내일 크리스마스 당일에는 아들의 초대를 받아 아들 집으로 가기로 했지만, 오늘 전야만큼은 우리 부부끼리 와인 한 잔을 마시며 조용히 보내기로 했다. 비록 밖은 계속 비가 내리지만, 아침에 마주한 작은 정성 덕분에 우리 부부의 성탄 전야는 이미 충분히 넉넉하고 따뜻하다. 캐나다의 비 오는 이브는 그렇게 소박하지만 깊은 온기로 채워지고 있다.


여러분 메리크리스마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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