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손에 쥐여준 공 두 개와 한국인 의사가 남편인 내게 던진 말
지난달 아내는 허리 통증 때문에 MRI를 찍었다. 결과는 허리디스크였다. 한국 같으면 이 병원 저 병원 다니면서 물리치료라도 바로 받았을 텐데, 캐나다 의료시스템은 참 답답하다. ‘패밀리 닥터’에게 가서 소견서를 받고, 한국으로 치면 전문의인 ‘스페셜 닥터’를 만나기 위해 하염없이 기다려야 한다. 보통 예약하고 몇 달은 기본이라 날짜를 잊고 지내는 것이 정신건강에 도움이 될 정도이다. 다행히 저번 MRI 검사 때도 크게 기다리지 않았고, 이번 전문의 진료 예약 역시 운이 좋았는지 한 달도 안 돼서 의사에게 직접 전화가 왔다.
예약이 된 오늘, 아내의 통증 치료를 위해 함께 동행했다. 종합병원 형태가 아니기 때문에 진료받을 병원은 일반 빌딩 5층에 있었다. 다행히 의사가 한국 분이라 답답함 없이 속 시원하게 상담을 받을 수 있었다. 의사 선생님 말씀이, 디스크는 일을 쉬고 꾸준히 운동하면서 관리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그러더니 옆에 있던 나에게 "남편분이 집안일 좀 도와주시나요?" 하고 물었다. 집안일도 결국 몸을 쓰는 일의 연속이니 남편의 도움이 절실하다는 소리였다. 그 질문에 아내가 "남편이 많이 도와준다"며 내 편을 들어주었다. 아내의 그 말에 고맙기도 하고 왠지 모르게 마음 한구석이 머쓱해졌다.
의사는 통증을 줄여주는 재활 주사를 맞아보겠냐고 물었다. 사람마다 다르지만 한 번 맞으면 적게는 서너 달, 길게는 1년 넘게도 통증을 잊고 살 수 있다고 했다. 물론 체질에 따라 별 효과를 못 보는 사람도 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아내는 한국 방문할 때마다 통증 때문에 병원을 찾아 뼈 주사라고 말하는 주사를 맞아본 적이 있어 "많이 아픈가요?" 하고 물었더니, 의사 선생님은 "보통 주사보다 훨씬 아픕니다"라고 했다.
잠시 후 간호사가 들어오더니 아내 양손에 말랑한 공을 하나씩 쥐여주었다. 아프면 이 공을 꽉 쥐고, 대신 소리는 지르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주사가 얼마나 아프길래 맞기도 전부터 공까지 줘가면서 그럴까 하는 생각에 아내의 얼굴이 금세 붉어졌다. 실제로 주사를 맞고 난 아내는 정말 생각했던 것만큼이나 아프다고 했다. 하지만 허리가 아파 겪어온 일상의 고통에 비하겠냐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진료를 다 마치고 나왔지만, 캐나다 병원 어디를 가보아도 한국처럼 돈 내는 수납 창구가 없다. 진료비가 공짜이기 때문이다. 주변에서 주사 비용이 꽤 든다는 이야기를 들은 터라 간호사에게 주사비는 얼마냐고 물어보았다. 돌아온 대답은 의외였다. "별도의 주사비나 시술 비용은 없습니다. 다만 오늘 맞은 주사약과 앞으로 두 번 더 맞을 분량까지 총 3개의 주사약을 약국에서 직접 사다가 다음 예약 날짜에 병원 오실 때 채워 넣어주시면 됩니다"라며 처방전을 내밀었다.
진료비와 주사를 놓는 비용 전액 무료이지만, 정작 몸속에 들어가는 주사약값만큼은 환자가 직접 해결해야 하는 게 이곳의 규칙이었다. 오늘 맞은 주사약을 다시 채워 넣고, 앞으로 남은 두 번의 치료에 쓸 약까지 미리 준비하기 위해 처방전을 들고 병원을 나섰다. 만약 다음 예약 때 상태가 좋아져 주사를 맞을 필요가 없어진다면, 사 온 약은 병원에 맡겨두었다가 나중에 몸이 안 좋을 때 맞으면 된다고 하니 꽤 합리적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요즘 들어 몸 이곳저곳이 아픈 데가 늘어나 병원 찾을 일이 자꾸 늘어난다. 돈도 돈이지만, 역시 몸이 아플 때는 병원 문턱이 낮은 게 최고라는 생각이 든다. 나이가 들수록 병원 가까운 곳에 살아야 한다는 말을 실감하게 된다. 아내를 데리고 병원을 오가다 보니 문득 한국 살 때가 생각났다. 그때는 젊어서 그랬는지 산부인과나 애들 어렸을 때 가벼운 진료를 위해 다니던 병원 말고는 병원을 갈 기회가 없어 병원 귀한 줄 모르고 살았었나 보다.
가끔 몸이 아프면 문밖만 나서면 병원이 널린 한국의 의료 시스템이 간절해진다. 캐나다는 응급 상황이 아니면 예약 기다리다 진이 다 빠지니, 아프면 고민부터 깊어지는 게 이민 생활의 현실이다. 그래도 오늘 만난 한국인 의사의 따뜻한 잔소리와 아내 손에 쥐어졌던 공 두 개를 떠올리며, 오늘은 저녁 설거지를 위해 아내 대신 고무장갑이라도 껴야겠다고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