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포비 엄마입니다. 저희 강아지가 한 달 전 갑작스럽게 황달이 오면서 쓰러져서 현재까지 500만원 이상의 치료비를 지불했고 앞으로 지속적으로 치료를 받아야 할 상황입니다.
얼마 전 어머님께서 암투병 회복 중이신데 포비의 아픔으로 인해 아파하고 계십니다. 저희 포비를 도와주세요. 제 인생의 하나뿐인 행복이자 희망인 하나뿐인 아들 포비에게 미소를 찾아주시면 너무 감사하겠습니다.
도네이션과 주위에 공유해주신다면 저희 포비에게 정말 큰 힘이 될 것 같습니다.감사합니다"
반려견을 키우고 있는 어느 애견가가 캐나다 한인 신문 커뮤티에 올린 내용의 요지이다. 마지막 글에 돈을 입금할 수 있는 도네이션 주소를 적어 놓았다. 주소를 클릭 해 들어갔을 때는 이미 3천 불 이상 모금이 이루어진 상태이었다. 외국인들의 도네이션 플랫폼이다 보니 일찍이 100여 명 이상이 성의를 표현해 왔다. 성금액은 많게는 200불에서 적게는 5불까지 다양했다. 글을 올린 분은 한국인이고 미혼의 여성으로 보인다.
코로나로 어려움을겪고 있는 상황에서 사람도 아닌 애완동물이 아프다는 내용으로 치료비도움을 요청해 왔다. 독자층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반응할지 사뭇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애견가 입장에서는 이해가 될만한상황이겠지만, 비 애견가 입장에서는 강한 거부감이 담긴 내용의 글을 가지고 찾아올지도 모른다는 생각할 때쯤 관심은 호기심으로 바뀌어가고 있었다.
마침내 댓글이 하나둘 달려 나가기 시작하였다.몇 개 안 되는 댓글이었지만 서로 다른 관점에서의 표현은 명확했다. 자칫 자신의 의사를 표현했다가는 공격의 댓글로 다가올 수도 있는 상황이 될 수도 있어어느 한쪽에 치우쳐 손을 들어줄 수 없는 예민한 부분이기도 하다.
댓글에 올라온 내용을 살펴보면
"요즘 강아지를 빌미로 해서 개인 이득을 챙기려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조심들 하시길..."이라는 내용부터 시작하여 "개 키울 능력 없으면 다른 곳으로 맡기던지 하세요. 생판 모르는 사람에게 기대하지 마시고"등등의 부정적인 시각으로 표현한 댓글까지 다양하다. 이와는 달리 긍정적인 의견도 있다. "마음이 삐뚤어진 사람들이 많네요. 참 불쌍합니다. 싫으면 싫은 거고 굳이 다른 사람 상처되는 말을 할 필요는 없는데... 쯧쯧 포비 응원합니다"라는 힘을 실어주는 응원의 댓글도 찾아볼 수가 있었다.
우리는 사람 구실을 못할 때 개만도 못하다는 말을 종종 내뱉게 된다. 강도 높은 욕의 경우에는 항상개가 중심이 되어 걸쭉하고도 거친 욕이 완성되었다. 개라는 명칭이 안 좋은 곳에서 늘 습격을 당했다. 첫마디부터 목소리를 높여 개라는 명칭이 들어가야 진정한 욕이 되었던 선조들의 뜻이 궁금하다. 반면 애견가들에게 반려견은 동고동락하는 가족의개념이었다. 자칭 아빠가 되었고 엄마가 되었다. 가족에게는애교 많은 자식 같은 사랑을 받았고 삶에 위안과기쁨을 느껴갔다."인간은 살아가면서 배신을 반복하는 경우수가 빈번하지만, 반려견은 한결같은 모습과 행동으로 주인을 섬기고 영원히 배신하지 않는다"라는 정직한 믿음의 신뢰가 인간에게 각인되어 있다. 그러한 진심이 통해 인간과 견이 사랑의 교감을 나누면서 살아갈 수 있는 이유가 되지는 않았을까,
몇 년 전 나는" 해외에서 본 보신탕 소고"라는 글을 한국 지역신문에 기고를 한 적이 있다.
그렇다고 지독히 개를 사랑할 정도의 애견가 입장은 아니다. 내가 아니더라도 애견은 세상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것에는 분명 틀림이 없다.
전생에 인간과 개는 어떤 연계성을 가지고 관계를 유지해 왔을까, 물론 옛날에는 집을 지키고 사람에게 필요한 식용으로서 그 가치의 목적이었다. 과거와는 달리 개의 생존방법은 사람과 함께 호흡해가는 시대를 맞이한 지 오래되었다. 사람만 보면 꼬리를 흔들고 반기고 따르는 행동이 어쩌면 사람 관계 속에 살아남을 수 있는 생존법은 아니었을까,
반려견이 갈수록 개체수가 날로 늘어나는 일은 어쩌면 이 땅에 슬프고도 고독한 현상일지도 모른다. 많은 사람이 사람과의 친교보다 반려견에서 사랑과 즐거움을 찾으려하기 때문이다. 사실, 나이가 먹을수록 사람의 관계 유지가 능숙할 만도 한데 갈수록 힘들다. 어쩌면 나만 느끼는 감정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주변 사람들도 나와 같은 느낌을 가지고 산다고 한다.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공원을 산책한다.공원에는 사람과 애견이 친근감 있는 모습으로 산책을 즐기고 있다. 사람 우선이 아닌 애견의 부족한 운동량을 위한 인간의 배려심이 묻어 있다.
포비 엄마의 간절한 호소가 담긴 글을 보면서분명개만 못한 인간도 있겠지만많은 사람들이 돈이 없어 어디선가 시름하고 죽어간다고생각할 때 인간 존엄성을 우선으로 관대하게 관여하는 목소리가 더 강하게 들려올지도 모른다.그렇다면 포비 엄마의 호소력은 설득력의 균형이 깨질 수도 있다. 하지만, 이미 도네이션에 동참하는 사람들은 반려견을 키우고 있는 입장에서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포비의 건강이 조속히 회복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할 것이다.
세상은 정확한 정답이 없다. 객관적이든 강제적이든 또는 자율적이든 어떤 의견을 자기 입장에서 옳다 나쁘다 하는 것은 개인의 이기심일지도 모르기때문에 흐름대로 역행하지 않고 중심에 서 있는 마음이 군자 일지 모른다.
하지만, 흐름에도 순서가 있다. 어떤 것이 먼저이고 나중인 순서가 인간 세상에는 분명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