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사랑하고 나를 품어가야 하는 것들

나를 나답게 해주는 것

by 김종섭

가끔은 나는 무엇인가, 라는 평범한 질문을 심오한 표정으로 던져볼 때가 있다, 질문의 답을 구한다면 흐림과 맑음의 차이 정도로 봐주면 되지 않을까 싶다. 맑은 날에는 초록의 꿈이다. 세상 전부가 내 것 같아 보이고 모든 것이 아름답고, 풍부한 에너지가 솟구친다. 흐린 날은 그날의 기분에 따라 자유롭지 않은 불충분한 나를 만나게 된다. 온종일 소화력 없는 체기만 남은 상태이다. 환경의 변화에 따라 감정의 기복이 단순히 깊어지는 과정이 늘 문제가 되었다.


감정의 기복은 궁색한 변명이 주어진다. 작은 것 하나도 덮어두거나 흘려버리는 나 다운 기교가 없었다. 자신을 누구보다 잘 알 것 같다는 생각은 착각이었다. 착각의 혼돈이 경직될 무렵 하늘의 뜻을 안다는 지천명이 되었다. 하늘의 경지는 아직까지도 세상의 풍경을 읽을 수 는 내공의 힘이 부족한 탓일까, 세상을 알면 알수록 삶에 법칙은 어려운 과정으로 남아 늘 개운하지 않았다.


내가 나를 알고 있는 겉모습이 제한적으로 보이는 한계가 있었다. 눈은 있어 상대의 모습을 볼 수 있지만 진작 자신의 얼굴을 보려 치면 거울을 빌려야 했다. 외모 지상주의는 사회 관계망에서 평가 기준의 잣대가 되었다. 첫인상은 상대에게 부담감 없는 친근함으로 다가와야 후한 점수를 얻어냈다. "멋있다. 아름답다"는 느낌을 받기 위해 얼굴 만들기를 게을리하지 않아야 했고, 웃음을 잃어버린 날에도 억지스러운 표정으로 진실의 웃음을 보내야 했던 나 답지 않은 행동도 성숙한 세월의 흐름을 타고 화장끼가 벗겨진 실제의 나 다운 모습으로 돌아왔다.


내 마음속의 깊이도 가늠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나는 상대의 눈을 먼저 맞추려는 어리석은 배려의식을 치렀다. 나이가 먹으면 뻔뻔해진다는 말의 의미를 언제부턴가 강탈해 냈다. 얼굴에 철면피를 깐 모습처럼 분별력이 상실된 것은 단연코 아니다. 사실 살면서 뻔뻔함은 없었다. 이후 이목의 잔재 의식이 사라지던 날 난 비로소 마음의 자유에 날개를 단 느낌이다.


가짜가 판치고 모순이 난무한 세상은 혼탁했다.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홀로 서기엔 비웃음 거리가 된다. 나라는 존재감은 한 점의 시선으로도 간격을 유지할 수 없는 미약한 존재이다. 남들은 나를 헛똑똑이라 불렀다. 장점이 될 수도 간혹 단점이 되어 상처가 될 수도 있다. 겉으로는 똑똑한 체하지만 실제로는 아무런 실속이 없다. 그래도 그런 따뜻한 인간미를 가진 내가 좋았다. 이것이 또 다른 나를 품고 갈 수 있는 나 다운 진정한 모습인지도 모른다.


나를 만들어간다는 것, 과거에는 새로운 옷을 갈아입는 과정쯤으로 생각하고 살아왔다. 늘 새로움은 설렘이 있었고 오래된 기억을 느낄 때 식상함으로 옷을 집어던졌다. 나이가 먹어가면서 장맛의 비유를 얹어 놓았다. 오래된 장맛이 좋다고 했다. 계절이 바뀌면 옷장에서 오랫동안 입을 수 있는 옷을 찾았다. 내 몸에 어울리는 옷오래 입어도 식상하지 않았다. 젊은 날에는 민감하게 유행한 옷만을 고집하며 갈아입었지만 다시 고풍이 순환하는 시대가 도래된다는 진실의 지혜를 알고 있다. 복고풍이라는 사전적 의미가 한층 더 나를 만들어가는 시선에 힘을 보태어 주었다. 복고풍은 "회상, 회고, 추억이라는 뜻의 영어 ‘Retrospect’의 준말로 옛날의 상태로 돌아가거나 과거의 체제, 전통 등을 그리워하여 그것을 본뜨려고 하는 것을 말한다"라고 전하고 있다.


출근길 엘리베이터 거울 속에 비추어진 내 모습이 유난히도 멋져 보일 때가 있다. 그 모습 그대로 영원했으면 하는 바람은 욕심이었다. 퇴근 후에도 엘리베이터 거울 속 모습은 아침과 흡사한 모습을 닮았다. 하루의 시작과 끝의 시간이 거울 에 만족이라는 평가를 얻어내고 감정의 신호가 멈추어 섰다.


누군가 삶이 꼬여갈 때 영혼 없는 말을 던졌다. 인생 별것 있냐고, 인생 별것 없이 살려 보니 인생 별것이 분명 있었다. 이유를 만들어 변명이 필요할 필요도 없었다. 한때는 죽을 만큼 사랑했던 사람이 있었고 나에 모든 비밀도 함께 나눈 친구가 있었다. 그들 모두가 내게서 어느 날 하나둘 떠버렸다. 그들이 변하고 세월이 변한 줄 알았다. 인내의 시간처럼 떠나보내고 내가 떠나버렸다는 사실을 뒤늦게 후회했다. 미워하고 증오심에 다시는 안 볼 것처럼 이별한 사람들까지 이제는 웃음으로 다시 볼 수 있는 나 답게 하는 용기가 세월 속에 변화를 맞이했다.


나를 나답게 해주는 것이 무엇일까, 늘 고민스럽게 질문을 던져보고 때로는 체면을 걸어본다. 어쩌면 쉽고 단순하게 얻어질 해답일 것 같아도 특별하게 내세울 것 없는 자신감 앞에서 머뭇거리게 된다. 남보다 월등이 머리가 좋아 학습 능력을 높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남들보다 뛰어난 재능이 있는 것도 결코 아니다. 차츰 포기보다는 조건 능력에 집착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나 자신에게 질문과 격려를 끊임없이 던지면서 나를 나 답게 해줄 수 있는 적성에 어울릴 법한 소질의 반려(伴侶)를 살아온 길이만큼 찾아냈다.


" 벼는 농부의 발소릴 듣고 자란다"는 말이 있다. 꽃을 잘 키우고, 나무를 잘 자라게 하려면 사람의 관심과 사랑이 있어야 한다고 한다. 사랑은 관심의 실천이다. 나를 사랑하고 상대를 긍정의 마음으로 포용하고 이해한다면 넓고 기나긴 사랑의 통로를 통한 여정에서 진정 나다운 모습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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