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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하 Jun 23. 2022

The Girl From Wonderland

2020








놀이공원에 화창한 날씨가 빠질 수 없다. 윤승은 오늘 새벽 옆방의 카세트라디오로 일기예보를 엿들으며 생각했다. 인간들이 더럽게 많겠군. 그 비관은 일상적인 재앙으로 그에게 닥쳐왔다. 개장을 시작하기 전부터 사람들은 무자비하게 몰려있었다. 그들은 오늘이 아니면 더 이상 제 인생에 이런 낭만과 축제는 없을 거라는 듯 스스로를 비관하기를 깡그리 잊어버린 얼굴로, 혹은 축제를 즐기러왔지만 결국 즐거움은 한 순간임을 안다는 듯한 피로에 지친 얼굴로, 각기 다른 삶의 두께로 짓눌린 모습으로 줄을 서있었다. 그들의 인생은 늘 그렇게 줄 서는 일뿐인 듯한 군상이었다. 윤승은 그들이 가여웠고, 오늘만큼은 그들이 행복하기를 바라면서도, 미웠다.


각기 사람을 실은 대관람차는 느릿하게 굴러간다. 땅에 있던 사람이 하늘에 오르고, 하늘에 있던 사람이 땅에 내려온다. 그러한 극명한 이동은 오직 이곳에서만 존재한다.


원더랜드.


자루걸레를 든 윤승의 옆으로 조그만 아이가 지나갔다. 까르르 웃는 웃음소리가 맑고 투명했다. 이미 그런 웃음에 무뎌진 그였지만 아이의 웃음이 오래도록 남아있기를 바라는 마음은 여전했다.


웃음의 빈도가 행복의 증거이고, 인생의 행복에 정해진 총량이 있다면, 왜 어른이 되면 어린아이의 웃음이 사라지는지 납득이 된다. 윤승은 그렇게 믿고 있었다. 하지만 저 같은 사람에겐 언제쯤 그 행복의 증거가 나타날 것인지, 제게 정해진 총량은 그토록 경미해서 이미 행복은 모두 끝나버린 것인지, 그것만은 납득할 수 없었다. 















The Girl

from

Wonderland 















윤승의 일과는 매일 똑같이 흘러갔다. 그는 열여섯 여물지 않은 나이일 때부터 이곳, 원더랜드에서 청소와 각종 허드렛일을 하는 잡역부로 일했다. 집 없이 떠돌아다니던 그는 일을 시작하며 근처 쪽방촌에서 살았다. 쪽방촌은 놀이공원과 근방의 번화가와 부대시설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으로, 더럽고 시끄럽고 열악하기로 정평이 난지 오래였다. 더구나 경중을 따지지 않는 범죄가 일어나고 공적인 무력으로 통솔되지도 않아서 관할 경찰도 쉽게 건드리지 않는 곳이었다.


그런 곳에서 윤승은 십년이 넘게 살아왔다. 십년이 넘는 세월을 그런 곳에서 살면 자연히 모든 걸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고 새로운 생각을 하지 않으며, 아무런 놀라운 일이 일어나지 않으므로 뼈저린 타성에 젖은 채 무기력해져만 간다. 지금껏 이곳에서 살았기 때문에, 앞으로도 이곳에서 살 테며, 죽어도 이 시궁창에서 벗어날 수 없으리라는, 스스로 일컫는 저주나 다름없는 세뇌에 빠져드는 것이다.


어느 뜨거운 한낮, 바람이라고는 불지 않는 좁은 방바닥에 누워서 윤승은 생각했다. 사람들은 그렇게 인생이란 늪에 빠지는 걸까.


태어날 적부터 자신의 인생이 무위와 절망으로 점철되리라고 예상하고, 바라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원하는 삶을 원하는 대로 살아가지 못하고, 끊임없이 잘못된 선택과 자책을 하고, 결국 언젠가 그렸던 포부와 꿈은 사라지고 원하지 않는 막장을 살아가는 것은 왜일까. 단순히 대부분의 사람들이 무능하고 멍청해서일까. 윤승은 그렇다고 생각하면서도, 늘 의문과 의심에 싸여있었다. 혹은 신이 인간에게 내린 저주란 그런 것일까. 이 땅에 태어나 살아가는 대신, 원하는 대로 살아갈 수 없다는 것. 모든 인류가 공유하는 슬픔과 운명.


삶이 지독히도 끔찍하고 자신의 내면을 갉아먹는 것밖에는 할 일이 없으면, 이렇게도 철학적이게 될까. 그는 자조했다. 돈도 안 되는 게 뭐가 좋다고. 그는 자리를 박차고 일을 가야만 했다. 그는 매일을 일했다. 그렇게 일하지 않으면 하루도 온전한 자신으로 살아갈 수 없는 삶이, 바로 이곳의 현실이었다. 철학이나 문학, 예술, 공상 같은 것들 따위는 조금도 필요하지 않았다. 더구나 사랑과 온기는, 어찌나 이곳에서 거세되어있는지.


그런 윤승에게 나타난 한 아이는, 신기하고 놀라운 존재였다.


그 아이는 운행이 끝난 점프슈터를 걸레로 벅벅 문질러 닦고 있던 윤승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그렇게 자신을 신기하고 놀랍다는 시선으로 쳐다보는 모습이, 윤승을 놀라게 했었다. 처음 갖는 느낌은 윤승에게 성가시고 귀찮을 따름이었다. 하물며 그 아이의 존재는. 웃지 않고, 눈을 깜빡이며, 저를 지나치지 않고, 저를 향해 작은 몸을 딛고 서있는 존재는.


“뭘 그렇게 봐?”


윤승은 신경질적으로 물었다. 하지만 아이는 조금도 겁먹지 않고 태연한 표정으로 윤승에게 말해왔다.


“뭐하는 거야?”

“뭐하는 걸로 보이니?”


아이의 대답은 윤승을 멈추게 했다.


“울고 있는 것 같아.”


윤승은 허를 찔린 듯 놀란 얼굴로 돌아보았다. 아이는 여전히 그 자리에 서있었다. 제 키를 넘는 울타리 밖에서, 녹슨 대를 잡고 윤승을 주저함 없는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어쩌면 저런 태연자약하고 천진난만한 시선을 견딜 수 없어서, 아이들을 싫어했을지 모르겠다고 윤승은 생각했다.


그가 아는 아이란 존재는 그럴 수 없는 존재였다. 남의 슬픔과 외로움과 상처를 보는 것, 이해하는 것. 아이는 그저 배고프면 울고 원하는 게 있으면 떼쓰고 갖고 싶은 게 있으면 조르는 존재이고,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남들이 생각하는 바와 다르게 아이들의 웃음이 가장 가식적이라고 느꼈었다. 아무도 그 속내를 보지 않지만 실은 너무도 단순하고 원초적이고 사악하지. 인간은 원죄를 가지고 태어나는 거야. 자신이 태어난 땅을 망가뜨리고 낳은 이를 저주하며 지옥 같은 삶을 살아가지. 천국이란, 사랑과 온기가 존재하는 아주 멀고 먼 땅에서나 존재해.


아이는 그런 사랑과 온기를 알고 있는, 어떤 영험하고 신적인 존재처럼 제게 나타나있는 듯했다.


윤승은 아이에게 다가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거기서 뭐하고 있어?”


아이는 방긋 웃으며 대답했다.


“엄마 기다려.”


그렇게 환히 웃기에는 너무 슬픈 말이었다. 










슬비는 그렇게 말했지만 그는 알고 있었다. 슬비의 엄마는 돌아오지 않을 거라는 것.


일 년에 놀이공원에서 버려지는 아이가 몇이나 되는지는 아무도 궁금해 하지 않는다. 윤승은 자신을 버린 남자를 기억했다. 제게 노란색 솜사탕을 사주고, 그보다 더 달콤한 오후의 행복을 맛보게 했던 남자는 제게 벤치에서 기다리라고 말했다. 잠시 어딜 좀 다녀올 테니 꼼짝 말고 기다리고 있으라고. 어린 윤승은 해맑게 고갤 끄덕였다. 해가 저물고 밤이 깊어지도록 기다렸다. 아이에겐 그런 판단력이 없었다. 기다리라는 말을 믿어선 안 된다는 것, 사람을 믿어선 안 된다는 것. 아이는 눈물 콧물 범벅으로, 처음으로 일그러지고 더러워진 얼굴로 온몸을 벌벌 떨면서 벤치에 앉아 있다가 어느 경비의 손에 이끌려 놀이공원 바깥으로 내팽개쳐졌다. 통상 버려지는 아이들은 운 좋으면 고아원에 들어가고, 운 나쁘면 어느 질 나쁜 어른에게 이끌려 소매치기에 동원되거나 고사리 같은 손으로 허드렛일을 하며 거리에서 살아간다. 윤승은 그중에서도 가장 운 좋은 아이였다. 어린 윤승을 불쌍히 여긴 한 바텐더가 데려가서 먹이고 키웠다. 그는 거리의 삶에 이골이 날대로 난 여자로, 윤승에게도 늘 그렇게 말했다.


‘언젠가 벗어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살아가야 해. 절대로 그걸 잊으면 안 돼. 잊는 순간, 곧바로 늪에 빠져버릴 거야.’


윤승은 그가 떠난 후에야 그 말을 뼈저리게 이해했다. 그는 윤승이 열여섯 되었을 무렵, 웬 부잣집 사장님 같은 여자와 함께 떠났다. ‘이제 너도 네 삶을 간수할 수 있지?’ 그렇게 확신한다는 듯이 물었다. 윤승은 그렇다고 할 수밖에 없었다. 살다 보면 우연히 만날 수 있을까. 윤승은 아득히 펼쳐진 깜깜한 미래에서, 저를 길러준 그를 다시 만나는 순간을 상상할 수 없었지만, 그럼에도 그의 행복을 진심으로 빌었다. 그는 아무 대가 없이 수고롭게 저를 먹여살려준 은인이었고, 저를 야생으로 독립시킨 제 어미였다.


슬비를 보며 지난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간 탓이었을까. 윤승은 이곳에서 버려진 아이를 보면 외면했었지만, 슬비만은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것을 느꼈다. 빛을 발하지 못할, 기약 없는 기다림과 그리움을 가진 아이. 슬비는 솜사탕의 단맛을 아직 혀에 남기고 있는 아이였다.


댓평 남짓의 국수집에서 윤승은 슬비에게 밥을 먹였다. 아이는 많이도 굶주렸는지 허겁지겁 먹으려다가 입을 데이고 눈물을 글썽였다. 윤승은 슬쩍 미소를 지었다.


“천천히 먹어.”


네가 다 먹을 때까지 여기 있을 거니까.


슬비는 숟갈에 국물을 떠 후후 불었다. 이 아이도 처음 먹은 밥을 기억하게 될까. 윤승은 더 먹고 싶은 게 있으면 얘기하라며 너덜거리는 메뉴판을 내밀었다. 슬비는 괜찮다며 다시금 맑은 미소를 보여주었다. 윤승은 먼저 국수를 다 먹었다. 슬비와 마주보고 앉아서, 도랑처럼 고여 있는, 혹은 개울처럼 졸졸 흘러가는 밤이 느껴졌다. 늘 그렇듯 시간과 감정은 다른 속도로 흘러갔다.


윤승은 슬비를 집에 데려갔다. 집이라고 하기 뭐한 작은 방에서 저보다 몇 뼘이 작은 슬비와 서있으니 꽉 찬 느낌이 들었다. 윤승은 눈 비비며 졸려하는 슬비를 낡은 매트리스에 눕히고 이불을 덮어주었다. 그저께 빨래를 해놔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자신은 어디서 자야 할지 고민했다. 내일 시장에 가서 매트리스 하나를 사와야겠다고 생각했다. 매트리스뿐 아니라 아이에게 필요한 용품 몇 가지도 사두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앞으로 펼쳐질 또 다른 깜깜한 미래를 열심히 고민하고 싶지는 않았다. 당장 내일의 삶도 알 수 없는 그였다. 슬비는 금방 새근새근 잠들어있었다. 윤승은 돌돌 만 옷가지를 베개 삼아 누워서 아이의 잠든 모습을 바라보았다. 아마 저처럼 이미 행복의 총량이 거덜 나고 줄어든 삶을 살아갈 운명인데 비해, 고민도 슬픔도 없는 얼굴이었다. 











윤승은 슬비를 어떻게 데리고 살아야 할지 알 수 없었지만 저를 길러준 여자를 떠올렸고, 그가 했던 그대로 따라서 하기로 했다. 어쩌면 그 여자도 그렇게 길러졌을지도 몰랐다. 윤승은 슬비를 단칸방에 혼자 둘 수 없기에 저를 따라다니게 두었다. 사람들이 슬비를 신기해하거나 저를 유난스럽다는 듯 쳐다볼 줄 알았으나 그렇지 않았다. 윤승은 남들과 대화를 잘 나누지 않는 사람이었다.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도 윤승을 신경 쓰지 않고 지나쳤다. 일찍이 마음의 문을 닫은 사람에게는 다가가고 싶지 않은 테두리가 생기는 것처럼.


윤승은 제게 다가온 슬비를 다시금 신기하게 여겼다. 다른 포근한 인상이나 이곳에 안 어울리게 정다운 분위기를 가진 사람도 있는데, 굳이 제게 다가온 이유가 있을까. 울지 않는데도 우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 불쌍해보였을까.


슬비는 윤승이 놀이기구를 닦거나 손보고 있으면 먼발치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윤승은 슬비에게 ‘기다리라고’ 말했다. 자신이 일을 마치고 아이의 손을 잡고, 값싼 동화적 환상이 다른 삶의 터전과 다름없는 진부한 삶의 상성과 공존하는 이곳에서 나갈 수 있을 때까지. 윤승은 기다리라는 말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수많은 아이들을 지나치고 외면했을 테다. 그 말에는 얼마나 지독한 이기심과 무책임이 담겨있는지. 그는 늘 그것을 실감하며 살아온 사람이었다.


윤승은 슬비에게 기다리라고 말했을 때, 죄책감을 느꼈다. 저를 길러준 여자도 그랬을까? 더는 죄책감을 느끼고 싶지 않아서 떠났을까? 죄책감은 책임감에서 비롯된다. 어쩌면 책임감 없이 자기 자신만을 챙기고 싶은 건 누구나 그렇다. 그럼에도 제가 낳은 것도, 혈연이 있는 것도 아닌 아이를 거두는 것은, 살면서 한 번이라도 발현될까 말까한 순수한 의지였다.


슬비는 마치 그런 윤승을 다 이해한다는 듯이, 제게 돌아온 윤승의 손을 잡았다. 그를 바라보는 아이는 윤승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기다리라는 말속에 담긴 돌아온다는 약속을 지킨, 늘 차가운 현실을 헤매고 있었으나 누구보다도 따듯해질 수 있는 사람을 알아보는 눈. 아이라면 가질 수 없는 눈빛이었다. 윤승은 슬비를 꼭 끌어안았다. 이상하게도 슬비가 제게 너무나 의지가 되어주고 있었다. 누구에게도 기대지 않던 그가 저보다 한참 작은 아이에게 마음을 열고, 어쩌면 그 아이의 몸보다 더 큰 위로를 받고 있었다.


윤승은 바닥에 엎드려 시장에서 사준 연필로 골판지 반대편에 그림을 그리는 슬비를 보았다. 놀이공원 여기저기에 있는 꽃을 구경했는지, 각기 다양한 모양새의 꽃들을 그리고 있었다. 윤승은 그 그림에서 한 번도 제대로 눈여겨본 적 없는 꽃들의 색과 향기가 느껴지는 듯했다.


“방이 너무 좁아서 미안해.”


미안하다고 하면, 한도 끝도 없었다. 밤이면 바깥에서 주정뱅이들의 고성방가나 싸우는 소리, 또 어딘가에 아이가 살고 있는지 숨차게 울음을 터뜨리는 소리가 진동했다. 낮은 천장에 매달린 작은 전구 하나에 의지해 생활해야만 했다. 그 깜빡거림은 자주 사람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더 맛있고 질 좋은 식사를 하게 해주지 못했다. 새벽이든 한낮이든 사람들과 뒤섞이며 공용 화장실과 공용 부엌을 오가야 했다. 그런 판에 박힌 일상만이 주어져있었다.


“미안하다고 하지 마. 나는 더 좁은 곳에서도 살아봤는데.”


윤승은 울컥했다.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지난 삶을 토대로 한 자신은 슬비에게 다른 어떤 구차한 말도 할 필요가 없었다. 자신을 그렇게 구차한 사람이지만은 않게 느끼게 해줘서, 고맙고 또 고마웠다. 그 마음을 표현하지 못하는 자신을, 평소보단 조금 가볍게 느끼며 편히 눈을 감았다. 깜빡 거리는 전구도 별처럼 궤도를 가지고 있을 것 같은 밤이었다. 










윤승이 퍼레이드 준비로 크고 화려한 코스튬을 입을 때, 슬비는 무척이나 좋아라했다.


“언니가 꼭 마법사 같아! 너무 멋있어!”


돌아가면서 퍼레이드에 동원되는 걸 끔찍이 여기던 윤승은, 슬비의 응원 덕분에 사람들 앞에서 자신이 정말 그런 신비하고 멋진 존재가 된 듯이 연기할 자신이 생겼다.


퍼레이드는 하루에 두 번, 한 시와 여섯시에 열렸다. 온갖 동화와 영화의 주인공들이 가면을 쓰고 코스튬을 차려입고 노래에 맞춰 율동을 하고 아이들에게 손을 흔들며 놀이공원을 행진했다. 매일 같은 형식과 흔해빠진 구성이었지만 아이들에게는 인기 만점이었다. 점점 퍼레이드에 동원되는 텀이 짧아지는 것은, 다른 대형 레저파크와 놀이공원의 등장으로 오랜 역사를 가진 원더랜드의 인기가 많이 줄어들어 사람들이 잘려나가고 있는 탓이었다. 언젠가는 윤승도 속수무책으로 잘리고 빈털터리가 될지 몰랐다.


윤승은 제가 기다리라고 했던 바로 그 자리에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고 있는 슬비를 발견했다. 제가 사준 솜사탕을 겨우 반밖에 안 먹은 슬비는 입가에 설탕 결정을 다 묻히고 있었다. 어떻게 알아봤는지, 제게 손을 흔들고 벤치에 올라서서 방방 뛰고 있었다. 저러다 넘어지는 건 아닌지 윤승은 걱정했다. 아니나 다를까, 슬비가 벤치에서 넘어지는 모습에 심장이 덜컹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그는 알프스 소녀 하이디의 복장을 한 채로 군중 속으로 들어갔다. 돌발행동이 아니라 아이들과 좀 더 가까이에서 인사를 나누기 위한 것처럼, 율동적인 몸의 움직임을 멈추지 않으면서 제게 몰려드는 아이들과 손을 맞춰주면서, 군중의 파도를 헤치며 슬비에게로 나아갔다. 슬비는 울고 있었다. 그제야 슬비가 정말로 일차원적인 고통과 슬픔을 아는 아이 같았다. 어른의 고통과 슬픔을 헤아려주는 남다른 존재가 아니라. 저를 위해 세상에 나타난 요정이나 천사가 아니라.


“괜찮니, 슬비야?”


슬비는 눈물 젖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지만, 윤승이 제게 눈높이를 맞추자 더 크게 울었다.


윤승은 주저 앉아있는 슬비를 안았다. 작은 몸을 감싸고 미약한 손짓으로 등을 토닥였다. 슬비는 차츰 눈물을 그쳤다. 어느 새 거대하고 환상적인 퍼레이드와 노랫소리는, 조금도 들리지 않았다. 두 사람을 둘러싼 모든 세계는, 부질없는 거짓 같았고, 의미 없는 소음이 되어있었다.


“슬비야! 슬비야, 갑자기 어디 가!”


윤승은 돌연 제 품을 떠나 어디론가 달려가는 슬비를 보았다. 너무나 놀라서 따라가지도 못하고 그대로 있었다.


“엄마아…!!”


슬비는 온통 새하얀 천사 복장을 하고 아이들에게 비즈 장식의 바구니에서 사탕을 나누어주고 있는 여자의 치맛단을 안고 있었다. 슬비는 계속해서 엄마를 불렀다. 너무도 애타고 아픈 외침이었다.


그런데 여자는 슬비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는 것처럼 다른 아이들에게만 사탕을 나누어주고 있었다. 그보다도, 아예 슬비의 존재 자체가 없다는 듯이 말하고 미소 짓고 움직이고 있었다.


엉거주춤 일어난 윤승은 슬비에게 다가갔다.


“슬비야….”


윤승의 부름에 슬비는 다시금 울상이 된 얼굴을 하고선, 엄마라고 부르던 사람을 떠나 윤승에게로 돌아왔다.


윤승은 제게로 돌아온 슬비를 끌어안고서, 제 삶의 어느 시기에도 없었던 안정과 온기를 비로소 되찾아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안도하면서도, 자조하고 말았다. 그리고 스멀스멀 살갗에 공기처럼 닿아오는 공포를 조금씩 느꼈다. 어쩌면 이 안정감이, 제 품에 분명히 느껴지는 이 온기가, 이곳에 공기처럼 부유하는 값싼 낭만과 환상처럼 거짓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어쩌면 제가 새로이 알게 된 것이 꿋꿋이 삶을 버텨나가고 있던 제게 주어진 보상이나 우연한 기적이 아니라, 누구나 그릴 수 있고 누구나 원하는 뻔하디 뻔한 이야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제게 다가온 동화가, 잔혹한 현실과 다르지 않은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어떡하면 좋지. 윤승은 괴로운 듯이, 슬비를 더욱 필사적으로 끌어안았다. 숨이 막히는지 칭얼대는 소리가 들렸는데, 너무나 미약하고 희미했다.


“거기서 혼자 뭐하고 있는 거예요? 얼른 대열에 합류해야죠.”


햇빛을 등지고 있어 그 눈부신 빛을 스스로 뿜어내고 있는 천사처럼 보이는, 여자가 말했다.


윤승은 저 말고는 아무도 슬비를 보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모든 축제가 끝나고 공허해진 밤이었다. 윤승은 슬비에게 새로 솜사탕을 사주고, 함께 불 꺼진 놀이기구들을 차가운 시체처럼 눈앞에 둔 채 어느 벤치에 앉아있었다. 그런 심정이었다. 처참하고, 허무하고도, 애달픈 눈빛으로 모든 게 죽어있는 듯이 바라보는.


“엄마를 봐서 너무 좋았어.”

“…….”

“근데 엄마는 왜 나를 못 알아보지?”


저토록 천진한 말과 웃음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인 건 제가 너무 외로운 사람이기 때문이었을까. 얼마나 외로웠으면 더욱 외로운 존재인 너에게서 바라고 바랐을까. 대체 무엇을.


윤승은 제 방의 전구처럼 깜빡이는 슬비의 말들을, 옆방에서 들려오는 라디오처럼 흘려듣고 있었다. 그러다가도 그래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정신을 차리려고 부단히도 애썼다. 그렇게 자꾸만 의문을 가지고 불안과 혼란을 키우다가, 슬비가 사라져 버릴까봐. 한낮의 아지랑이처럼 덧없이 사라지고, 이 모든 일이 꿈처럼 무의미해질까봐. 윤승은 두려웠다. 슬비가 저를 떠날까봐 두려웠다.


“너무 열심히 일하고 있느라 슬비를 못 보고 지나쳤나봐.”

“정말?”

“그래, 그런 거야. 그러니까 실망하지 마, 슬비야.”

“하지만 다음에도… 엄마가 날 못 알아보면 어떡해? 엄마를 다시 못 만나면 어떡해?”

“아니야. 그러지 않을 거야. 언니가… 꼭 엄마를 찾아줄게.”


그래서 모른 척하기로 했다. 슬비가 어떤 존재이든지.


제게는 별처럼 반짝이지만 멀리 있는 것보다는 곁에 있는 외로움과 어둠이 더욱 소중했다. 










윤승은 그를 알고 있었다. 원더랜드가 워낙 넓은 곳이라서 모르는 사람이 태반이었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슬비가 엄마라고 부르던 그 사람 애나가 누군지는 알고 있었다. 이곳엔 삶의 굴레가 비슷비슷한 사람들만이 있었다. 남의 얘기를 듣고 소문을 부풀리고 떠드는 일이 유일한 취미인 사람들이 태반이었다. 애나는 이곳에서 가장 많이 입에 오르내리는 사람 중 하나였다. 그는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들 중에서 가장 아름다웠고, 누구라도 흠모하게 만드는 사람인만큼 가장 복잡한 연애관계를 가지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의 애인이 바뀔 때마다 그의 애인과 애인들이 싸울 때마다 신나게 입을 놀리고 즐거워했다. 그는 너무나 아름다운 신의 작품이어서, 많은 사람들이 흠모하고 손을 갖다 대다가 결국은 산산조각으로 깨뜨려버릴 듯한 이였다. 그는 자신이 가진 아름다움만큼 가장 불행해 보였다.


윤승은 그에게 다가가는 일이 과연 합당한지, 며칠 내내 끊임없이 되뇌며 고민했다. 다가가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도 알 수 없었다. 더구나 이 일이 혹여나 그에게 상처를 들쑤시고 덧입히는 일이 될까 염려하는 마음도 있었다. 잘 알지도 못하던 사람에게 그만큼 마음이 쓰인 적이 없었다. 그와 같은 삶의 형태를 가지고 이 굴레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저였지만, 그와 완전히 똑같은 삶을 산 것은 아니기에 그의 슬픔과 상처를 다 알 수 없는 것이 당연했다. 그래서 그에게 함부로 어떤 말도 할 수 없을 터였다. 그 누구도 타인의 삶을 평가할 자격이라곤 갖지 않은 채 태어나는 법이니까.


다만 윤승은, 그보다는 그에게서 버려진 슬비가 더욱 가여웠을 뿐이었다.


“잠시 얘기 좀 할 수 있을까?”


애나는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윤승의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겠다는 듯 조금의 동요도 없이 서서 불에 타들어간 담배를 깊이 빨아들이고, 깊은 숨을 내쉬었다.


“도대체 내가, 너한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하지 않을 수가 없어서 이렇게 말하려는 거야.”


윤승의 진심을 느낄 수 있을 리 없는 그가, 호기심이 들었는지 고개를 돌려 윤승을 쳐다봤다.


“뭘? 나한테 뭘 말하려는 건데?”


서로 이렇게 가까이 마주보는 건 처음이었다. 애나는 그에게 관심이 가는지 눈을 게슴츠레하게 떠보였다.


반면 윤승은 큰 용기를 안은 채 그에게 구연동화보다 믿기 힘든 이야기를 전하고 있었다.


“슬비라는 아이를 알고 있지?”

“…뭐?”

“나도 알고 있어. 네 딸이라는 건 얼마 전에 알았지만. 슬비, 그 아이가 나한테 와있어.”

“…….”

“날 만나자마자 그렇게 말했어. 널 기다린다고. 지금도 그래. 슬비가 널 많이 보고 싶어 해.”


이 말을 전하기 위해, 윤승은 슬비를 탈의실에서 잠재우고 불안한 마음을 안고 나왔다. 슬비가 제게 매달려 부탁한 적은 없지만 윤승은 슬비의 간절한 바람을 알기에 나서고 있었다. 제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살면서 그런 일을 해본 적이 없는데도 막강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었다. 제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 있다는 것은, 삶이란 자신의 수많은 선택이 아니면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 일이기도 했다.


하지만 애나가 원하지 않는다면 억지로 슬비와 만나게 할 생각은 없었다. 원더랜드는 얼마든지 두 사람을 만나지 않게 할 수 있는, 쪽방촌의 몇 배나 되는 넓은 동산이었다. 단지 윤승은 그에게 묻고 있었다. 슬비를 만나줄 수 있는지.


애나는 윤승의 말을 듣자마자 얼마간은 멍해있었다. 그리고 조금씩, 경악에 휩싸여 온몸을 갈대처럼 떨고 있었다. 거센 바람이 불어와 그를 가두고 있는 듯이, 애나는 모든 걸 견딜 수 없다는 듯이 괴로워하는 얼굴을 허공에 내버려두었다가 이내 두 손으로 일그러뜨리듯 감쌌다.


“아냐. 그럴 리가 없어…. 그 애는… 그 애는 죽었단 말이야!!”


그는 속수무책으로 무너지듯 주저앉았다. 잊고 있던 기억들이 혼령처럼 그의 주위를 맴돌고 있는지, 그 환영을 보고 있기라도 한지 애나는 눈을 질끈 감은 채 고개를 세차게 휘젓고 있었다. 지나온 삶과 모든 걸 부정하고 싶어 하는 것은 윤승과 닮아있었다. 누구도 가여워하지 않지만 세상에서 가장 가여운 처지에 있는, 웃지 않는 밤의 영혼들. 윤승은 그가 안쓰러웠지만, 슬비에게 했던 것처럼 그를 안아줄 수는 없었다.


“그 애는… 죽었어…. 아냐, 내가 죽인 건 아니야. 물론 그 애가 내 눈 앞에서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그러면 숨통이 트일 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절대로… 내가 죽인 건 아니야. 날 사랑한다고, 여기서 떠나게 해주겠다고 했던 놈을 자꾸 떠올리게 해서… 그 새끼가 너무 저주스러워서… 죽이고 싶었지만, 그 애는… 정말로 아니야. 정말로 그렇게 되기를… 바랐던 게 아니란 말이야!!……”


윤승은 그 또한 저와 같이 무력하고 고통스런 삶을 살아왔기에,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죄책감에 싸인 채로 시간을 버리라고 삶이 주어진 것이 아니다. 그는 그에서 벗어나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이곳이 아니라 어디를 가더라도 괴로우며, 행복할 수 없었다. 죽을 때까지 떠날 수 없는 단 한 가지는 바로 자신이니까.


“괴롭게 해서 미안해. 단지… 알려주고 싶었어. 슬비는 널 조금도 원망하지 않아. 그 애는 널 사랑해. 그러니까… 너도 그 애에게 조금도 미안해하지 마. 슬비는 너무나 잘 지내고 있으니까.”


윤승은 슬비의 그림이 그려진 골판지를 애나에 발치에 내려놓았다. 애나는 통곡하고 있었다.


“그래, 그렇게 잊고 살아. 너를 위해서.”


윤승은 애나를 떠나 슬비에게 돌아왔다. 잠이 깨었는지 껌뻑이는 눈으로 앉아있던 슬비는, 윤승을 보자마자 벌떡 일어나 달려갔다.


“언니, 보고 싶었어!”


윤승은 슬비를 품에 안고 있을 때마다, 왜 이렇게 마음이 따듯해지면서도 한편으로는 울고 싶은 기분인지 알 수 없었다.


이젠 온기가 느껴지지 않네. 온기를 주는 것은 자신뿐인 것 같았다. 이렇게 슬비가 사라질 수도 있을까. 점점. 흐릿해질 수도 있을까.


눈물이 흘러나왔다. 제 품에서 떠나지 않기를, 사라지지 않기를 절실히 바라고 있었다. 영영 눈을 감은 채로라도. 그건 제 욕심일까. 윤승은 제 욕심이 슬비에게 너무 버거울까 걱정이 들었다.


“언니, 울어?”


윤승은 훌쩍이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안 울어. 그냥 눈물이 나는 거야. 슬비야. 눈물이 난다고 해서 꼭 우는 건 아니야. 눈물이 난다고 해서 꼭 아픈 것도, 슬픈 것도 아니야.”

“그래?”

“넌 내가 울지 않을 때도 우는 것 같아 보인다고 했잖아.”

“응.”

“그런 거야. 다 그런 거야….”


윤승은 슬비가 제 등을 토닥여주는 것을 느꼈다. 그 작은 진동, 미약하게 남은 온기, 말로 다 할 수 없는 이 환상의 여운.


“언니는 맨날 울고 있는 표정이야. 근데 나한텐 웃어줘.”


움직임이 없자 불이 자동으로 꺼지고, 온통 어둠으로 뒤덮인 가운데서도 윤승은 두려움을 느끼지 않았다.


“웃으면 다 웃는 일이 된대.”


그래, 그럴게. 윤승은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애써 웃어보였다. 그랬더니 정말로 웃고만 싶은 기분이 들었다. 모나리자의 미소처럼 영원히 웃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한 번도 놀이기구를 타보고 싶다고 말한 적이 없었다. 그것부터 이상하다고 느꼈어야 했는데. 그러다 매일 지겹도록 놀이기구를 보고 살면서, 슬비에게 타보자고 말하지도 않은 제가 더 이상하다고 느꼈다.


“슬비야, 언니랑 저거 같이 탈래?”


비교적 무서움이 덜하고 아이들에게 가장 인기가 많은 풍선 모양의 놀이기구였다. 왔다갔다 교차하면서 움직일 때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주변에 부드러운 포말처럼 퍼져나갔다.


“응!! 언니랑 같이면 다 좋아.”


윤승은 슬비와 함께 놀이기구를 탔다. 다른 사람들 눈에는 혼자 어린이전용 놀이기구를 타는 사람으로 희한하게 보였겠지만 상관없었다. 풍선이 푸슈숙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움직였다. 점차 속력이 빨라졌다. 슬비는 처음엔 조금 무서워하더니 금방 웃음이 피었다.


슬비는 널따란 파도 같았다. 윤승은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메마른 모래사장 같던 저를 감싸는 슬비의 웃음소리를 들었다. 사라진대도 잊히지 않을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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