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는 날까지 사과 한 그루를 심는 사람!
인생은 두 번 있지 않다. 지금도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시간이 흘러간다. 현재를 우리는 선물이라고 하고 살지만 오늘 하루를 선물이라고 생각하며 사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우리는 언젠가는 죽음을 맞이할 거지만 평생 살 것처럼 아옹다옹 살아간다. 웃으면서 살아도 모자란 삶인데 찡그리고 화내며 산다면 억울하지 않을까? 그래서 사는 동안 하고 싶은 일, 먹고 싶은 것, 가고 싶은 곳을 갈 수 있는 자유를 누려야 하다. 그 자유를 얻기 위해 우리는 또 하루를 산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잘 사는 사람은 누굴까?
사람들이 알아줘야 잘 사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곡간에 곡식이 많아도 그것을 재화로 바꾸어 재물을 사거나 다른 사람과 나누지 않는다면 사람들은 알 수 없다. 우리 부모님은 자식을 낳고 키우기 위해 열심히 일하셨다. 남들이 자는 시간에 일어나 남들이 쉬는 시간까지 일하셨다.
6,25 전쟁으로 북에서 피난 왔다고 해서 우리 집을 피라미집이라고 불렀었다. 친구는 우리 집을 피라미집이라고 불었다고 하며 잘 살았다고 했다. 더 이상 피라미집은 나에게 나쁜 의미가 아니다. 나는 아버지가 이순신처럼 나라를 구하지는 않았지만 우리 집을 화목하게 만드신 가장 훌륭한 아버지로 존경한다.
부모님은 자식을 키우기 위해 밤, 낮으로 일을 하셨다. 남들도 일하고 살았지만 우리 집은 어느 집보다 잘 사는 집이 되었다. 부모님은 잘 살아야 하는 이유와 목적이 분명했다. 전쟁으로 헤어진 가족들을 보기 위해, 다시 일군 가족을 위해 밤, 낮을 가르지 않으셨다.
무엇을 해야 할까?
어떻게 할 수 있을까?
하며 많은 시간을 도전하기를 멈추지 않으셨다. 아버지는 "죽는 날까지 사과 한 그루를 심겠다"는 말은 평생 아버님의 가치관을 말해 주었다.
고향에서 농사짓는 억대 친구는 아버지께서 살아생전에 70이 훨씬 넘는 고령의 나이에도 일본에서 주최하는 농경 박람회에 참석하시는 걸 보고 대단한 분이시라고 했던 말이 기억난다. 그렇게 아버지는 죽는 날까지 사과 한 그루를 심겠다는 말을 행동으로 옮기셨다. 아버지는 잘 사는 것이 죽는 날까지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하는 것이라는 것을 말해 주었다.
오늘 하루도 작은 것부터 내가 원하는 삶을 위해 그 일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일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