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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을 바꿔 주세요

크리스마스에는

by 글지으니


주말 반나절을 누워 있었다. 늘 씩씩하게 생활하는 것 같지만 나는 깡만 많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저번 주에 서울에 갔다 오고 너무 피곤했었다. 그때 너무 무리했었나 보다. 그래도 감기에 걸리지 않으려고 비타민도 챙겨 먹으며 조심 조심 했는데 여지없이 감기가 오고 말았다.


아들이 전화 와서 뭐 하냐는 말에 낮잠을 자고 있다고 했다. 낮에 잠도 자는군요 하길래, 감기가 걸린 것 같아 오늘은 푹 쉬고 있다고 했다. 나는 주말에 여자친구와 즐거운 시간을 보냈냐고 물었다. 아들은 캐나다에서 진짜 산타를 만났다고 좋아했다.


옛날 어학원했을 때 우리는 후배 샘이 산타옷을 입고 선물을 주었었다. 아들은 딱 봐도 산타가 아니었지만 아무 말하지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외국에서 백인 할아버지가 호. 호. 호 하는 웃음소리까지 진짜 산타 같았다고 했다. 그리고 산타는 "너희들이 하는 것은 우리는 다 알고 있다"는 말도 해주었다고 했다.


아이들을 키울 때 산타는 착한 아이에게 선물을 주는 대명사였다. 산타도 아이들을 키우는데 큰 몫을 했다. 우리 큰 아들은 초등학교 때까지 믿었을까? 작은 아이는 더 어렸을 때 알았을 것이다. 친구들과 얘기하면 산타는 없다는 말에 아이들도 의심했을 테니 말이다. 어쨌든 아이들의 순수함이 있는 그때가 좋았다. 지금은 유치원생도 산타가 없다는 것을 알지 않나 생각된다.


멈춰 진 시계처럼 쉬고 있는데 남편이 오름을 갔다 돌아왔다. 나는 간단하게 라면이라도 먹고 싶었는데 남편 때문에 무엇을 먹을까 고민을 했다. 밖에 나가서 친구들과 밥을 먹고 오면 나는 한 시름 놓았다 싶었는데 속에 가스가 차서 먹지 않고 돌아왔다고 했다.


어휴! 나도 아픈데 나보다 남편을 챙겨야 하는 생각 때문에 머리가 더 아팠다. 하루 종일 유자차만 마셔서 나도 꿀꿀해서 부엌으로 나오니 둘째를 위해서 토스트를 만들어놨는데 빵 한쪽만 먹고 갔다. 엄마가 만들어놨는데 안 먹으면 섭섭할 것 같아 먹는 척을 했나 싶었다. 요즘 밥 먹는 것이 부담스러울 것 같아 토스트를 갖고 가게 만들어 놨더니 이제는 질릴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렇게 남은 토스트와 삶은 계란에 또 유자차를 먹으니 저녁이 해결되었다. 애꿎은 남편은 멀뚱멀뚱 거리다가 결국 라면을 끓여 먹는다고 했다.


남편은 아픈 사람 간호는커녕 혼자 라면만 잘 먹고 TV만 봤다. 나는 자다 깨나서 타이레놀이라도 먹고 푹 더 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실에 있는 남편을 부르고 싶어서 겨우 전화를 눌렀다. 남편은 TV에만 붙어있다 방에서 나는 벨 소리를 듣고 내 전화번호를 보고 뭐냐고 화를 낸다. 나는 타이레놀 좀 갖다주라고 했다. 남편은 싱크대 윗 쪽에서 한참을 구시렁거리면 찾았지만 없다고 한다. 나는 하는 수 없이 일어나 타이레놀을 찾아 먹었다. 아프면 안 되겠다. 간병인 보험이라도 잘 들어 놓아야겠다는 생각만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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