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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융이라고 불립니다 Nov 23. 2020

내게 김치를 주는 독일인 그녀

외국인에게 김치를 받아먹는 한국인인, 나

"어제 김치 만드렀어"

멜리사에게서 카톡이 왔다.

완벽한 맞춤법은 아니지만, 우리는 한글로 카톡을 주고받는다. 매일매일 한글 공부를 하는, 한국을 좋아하는 28살의 독일 친구다.

맛만 보게 조금만 주고 너 다 먹으라고 카톡을 보내 놓고,

다음날 별 기대 없이 김치를 전해받았다.

뚜껑을 여는 순간, 훅 들어오는 향...

세,.. 셀러리?

주변의 외국인 친구들은 김치를 담으면 종종 나에게 준다.

그 어떤, 맛 평가를 기대하는 것 같기도 하다.

다른 외국인 친구가 준 김치

다른 외국인 친구가 만든 오이무침


한국인인 내게, 외국인들이 담아준 김치는 그들의 한식 사랑에 고마운 마음이 드는 그 이상이 되기는 사실상 어렵다.

내가 슈바이네 브라텐(독일식 소스가 있는 삼겹살 요리)을 해서 독일 친구에게 먹어 보라고 하는 것과 같을 것이다.

외국 친구들이 준 김치는 더러는 덜 저려져 배추에서 물맛이 나기도 하고, 그저 맵기만 하고 아무 맛이 안 나기도 하는... 천차만별의 맛이 난다.

그래도 항상 먹을 때마다, 야, 내가 독일에서 얘네들한테 김치를 얻어먹다니... 하는 감격의 울컥함이 있다.

틀림없이, 뿌듯하고 기분이 좋다.

하지만, 맛에 대해서는...

그저 잘 먹었다고 고맙다고 하는 편이다.

그런데 멜리사는 집요하게 평가를 요구했다.

난감했다. 그저 고맙게 잘 먹었다고만 하고 싶었는데.


나름 맛을 잘 보겠다고, 진지하게 뚜껑을 열었는데

셀러리향이 나를 당황시켰다. 얼른  들여다보니, 무대신 뿌리 셀러리가 딱!

잘라 놓으면, 언뜻 보면 무같은 뿌리 셀러리.


윗부분은 우리가 흔히 먹는 셀러리ㅡ가 아니란다. 이 뿌리에 달린 잎은 맛이 그닥 좋지 않다고 엘리가 말해주었다ㅡ는 다른 종이고,  아래, 무같은 셀러리 뿌리를 먹는다. 주로 스프를 끓일 때 토막 내어 넣으면 풍미가 좋아진다.  

우리가 국 끓일 때 무를 썰어 넣는 그런 느낌이랄까.

(얼마 전에는 학교 메뉴에서 채식주의자 돈까스용으로 셀러리튀김이 나오기도 했다. 얇게 썰은 셀러리를 돈까스 튀김옷처럼 입혀서 튀긴 음식이었는데, 맛이 괜찮았다. 역시 튀김은...)

김치에 파프리카를 넣는다던가, 간장이나 고추장이 들어간다던가...하는 경우는 많았지만 셀러리 뿌리가  들어간 김치는 처음이었다.

나는 평소 셀러리향을 좋아하는 편이지만, 김치에서 나는 셀러리향은 참 당황스러웠다.

숨을 가다듬고(ㅋ 그럴 필요까지 있을까마는?)진지하게 맛을 보았다. 어? 배추가 잘 절여졌는데?제법 아삭하다.  알싸하게 매운맛도 났다. 그리고 먹어본 셀러리...

어? 괜찮은데?

셀러리김치, 생각보다 괜찮았다. 독일무보다 더 아삭거리는 식감이 꽤나 잘 어울렸다.

내친김에 밥이랑 김도 가져와 아예 식사를 했다.

외국인 친구들에게서 받은 김치 맛이 '김치' 인 건 이번이 처음이었던 거 같다. 

게다가 맛있기까지 하다.

비건인 그녀는 액젓도 안 썼을텐데...이 시원함은 뭐지?

비결을 묻고 싶은 정도였다.

그 누구보다 한국사랑이 많은 그녀.

그 마음만큼 맛도 깊은 가보다.

12살 때, 우연히 빌린 비디오가 한국 영화, '형사'였단다.

ㅡ 나도 못 본 영화. 한번 봐야겠다.

그 후로 한국에 완전 꽂혔다.

지금은 NCT 태용의 팬이 되었고, 한국에 가서 태용의 발자취(단골 카페, 집근처)를 따라다니리라. 기대하며 지난여름, 한국행 비행기표를 끊었으나...코로나로 여행자 입국 금지가 되어 취소한 아픔(?)이 있다.

내년 여름에도 한국행 휴가를 계획하고 있는데... 꼭 가게 되었으면 좋겠다.

사실, 나도 내년에는 꼭 가고 싶은  마음이 있다. 작년에 한국에 갔을 때,  '우리말 겨루기' 예심을 보았고 통과되어 지난여름 방송 출연을 약속했는데 코로나로 한국을 가지 못 했던 터다. 우리말 겨루기 예심 통과는 외국살이가 오래되어, 내 국어사랑의 건재함에 대한 나름의 테스트가 필요했던 내게 자존감을 꽤 높여주었던 고마운 일이었다.

멜리사가, 우리말 겨루기에 응원 나올 거라고. 한국말을 하는 외국인이 우리말 겨루기에 응원을 나오면 한글사랑에 대한 의미가 깊을 거라 생각되어 잘 됐다 싶었는데...아쉬웠다.

내년에는 꼭 같이 가서, 멜리사가 꿈에 그리던 한국 여행을 멋지게 했으면 좋겠고, 내게도 우리말 겨루기 출연이라는 성과를 이루게 되었으면 참 좋겠다.

다시, 멜리사의 김치이야기로 돌아가서...

맛있었다고, 셀러리가 특이했지만, 정말 맛있었다고 솔직히 말해주니 얼마나 좋아하던지.

스무 살 때부터 김치를 만들었는데 이번이 제일 맛있게 되었다고 뿌듯해했다. 스무살. 난 스무살 때 김치는 커녕 밥도 못 했었는데...새삼 또 놀랐다.

사실, 생머리에 예쁘고 늘씬하고 속눈썹 컬에 네일아트까지,  보면 딱 차도녀인 멜리사의 김치가 맛있다는 건 반전이었다. (어쩔 수 없이, 나도 외모로 사람을 평가하는 사람인 건가?)

한국을 좋아하는 멜리사는 어쨌든 늘 예뻐 보인다.

멜리사의 김치를 맛있게 먹고 난 후, 드는 생각은 뜬금없게도 김치 냄새를 이길 수 있는 게 있겠다. 하는 생각이었다.

셀러리의 잔향이 하루 종일 입 안에서 맴돌았다.

김치를 먹었는데 셀러리향이 남는다는 신기한 사실을 경험한, 멜리사의 맛있는 김치...

아주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거 같다.

내친김에, 나도 셀러리 김치를 한번 담아볼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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