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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융이라고 불립니다 Jan 20. 2021

혹시, 김치 있어?

그리고, 뭐? 새우젓?

Lockdown 중에 집에만 있어서 그런지,

먹는 것이 많아졌긴 하지만, 특히 김치가 빨리 떨어진다.

보통 4포기 정도 담그면, 2달은 넉넉히 먹는데 요즘은 한 달에 한 번꼴로 김치를 담그는 것 같다.

다행히, 한국에서 공수받은 고춧가루가 넉넉해서 자주 김치를 담아도 마음이 졸이지 않아도 되어서 감사하다.

4포기 정도의 김치는 시간이 좀 걸리는 일이긴 해도 그렇게 힘든 일은 아니다.


큰 다라이

다라이가 순화되지 않은 일본말이고, 나는 그런 말 쓰는 걸 좋아하지 않지만, 김치를 절이는 통을 지칭하는 말 중 '다라이'처럼 적절한 말이  없다.

배추 절이는 다라이, 얼마나 입에 착 붙는 이름인지.

(그래도 순화를 위해, 아쉽지만 아래부터는 대야라고 쓰련다)

김치를 담글 때마다 5포기도 아니고, 굳이 4포기를 담그는 이유라면... 우리 집에서 배추를 절일 수 있는 제일 큰 대야가 4포기 정도 들어가는 통이어서다.

이 스탠 대야와 바구니는 내 애장품(?)이다.

지난번 김치 담글 때 바구니 바닥이 살짝 뜯어져서 마음이 아팠다. 조심히 아껴서 쓰는데도 10년이라는 세월은 만만찮은 시간이었나 보다.

한 10년 전, 한국 회사에서 파견 온 한 가족이 한국으로 돌아갈 때였다.

한국으로 가져갈 것들을  사러 백화점에 같이 갔을 때던가?

있는 동안 도와줘서 고맙다고, 선물을 하고 싶다고 갖고 싶은 것을 고르라고 했다. 나는 꼭 갖고 싶은 것이 있다고, 평소 그 집 김치 담을 때 부러웠던 그 스탠 대야와 바구니를 얻었다.

그분들은 굳이 더 좋은 걸 사주고 싶다고 했는데, 나는 백화점의 쌍둥이칼이나 냄비세트보다 이게 더 갖고 싶었다.

필요와 만족감에 따라 가치는 높아지는 게 아니던가.

그 후로 대량의 김치를 담을 때마다 통에 대한 스트레스 없는 넉넉한 숨을 쉴 수 있었으니 나한테는 보통 가치가 아닌 것이다.


절인 배추를 씻고, 김치 속을 만들고, 물기를 빼는 동안 남편이 들어왔다.

" 여보, 김치 있어? 스티브가 저녁에 불고기 해 먹으려고 하는데 김치가 떨어졌대."

어, 어떻게 알았지?

우리도 며칠간 김치가 없다가 오늘 딱 담그고 있는 중인데?

뭐지, 이 기가 막힌 타이밍은???


남편 친구인 스티브는 김치를 직접 담가먹을 정도로 대단한 한식 애호가이다.

한국음식 해 먹는 모습들을 종종 SNS에 올리기도 하는데, 그의 요리는 웬만한 한국 주부들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다.

우리 집도 김치가 떨어지면 그냥 없이 밥을 먹는데, 티브는 불고기를 먹으니 김치가 있어야 한다는 이 상황은 뭐지...

그렇게 새로 담근 김치를 일회용 팩에 넣어 포장을 하고 있는데,

남편이 또 부엌으로 들어오며 묻는다.

"여보, 우리 집에 새우젓 있어?

새우젓? 우리 남편의 입에서 나올 단어는 아닌데?

"왜, 스티브가 새우젓도 필요하대?"

김치를 새로 담그려고 해서  필요한가? 생각하는데,

"응, 호박볶음 하려고 한대."

헉...... 고수다! 김치를 담그는 것도 아니고, 호박볶음에 새우젓?


원래, 우리 집에 새우젓이 있을 리가 없다.

독일에서 20년을 사는 동안, 한국 방문 후 들고 온 적 말고는 한 번도 새우젓이 있었던 때가 없었다.

그런데 얼마 전 엄마가 고춧가루를 보낼 때, 이번에 산 새우젓이 너무 맛있다며 한주먹만큼 꽁꽁 싸서 보내준게 냉장고에 딱! 있었다.

진짜, 말 그대로 소름~~~ 정말 닭살이 올라올 뻔했다.

간절함은 통하는 건가?

스티브의 한식 사랑의 힘을 느낀 날.

그리고, 지금까지.

냉장고 안의 새우젓을 볼 때마다 스티브 생각이 난다.

스티브, 타이밍, 진짜 기가 막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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