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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융이라고 불립니다 Jan 06. 2021

라자냐를 만들던 날

엘리와 나의 비슷한 점

"Guten Morgen!" - 좋은 아침!

출근을 하고 옷을 갈아입으러  복도를 걷다가  언뜻 길이 간 주방에서는 엘리가  메뉴에 준비에 한창인 듯했다. 

코끝으로 솔솔 토마토소스 냄새가 느껴진다.

아, 오늘 라자냐를 한다고 했지.

출근 스탬프 로그인을 하고, 옷을 갈아입으며 오늘은 점심을 먹어야겠다, 생각을 한다.

근무시간이 점심시간에 겹치지만 종일 근무인 엘리에 비해 반일근무인 나는 출근이 늦은 편이라 9시 정도에 거한 아침을 먹고 오기 때문에, 연장근무를 하는 날이  아니면, 퇴근을 하고 집에 와서 또 거하게 늦은 점심을 먹는 편이다. 여기서 '거하게'란, 한식으로 먹는다는 거다.

앞치마를 하고, 모자를 쓰고, 마스크를 하고, 손을 씻고 손세정제를 바르고, 라텍스 장갑을 끼고 주방에 들어섰다.

주방으로 들어서기까지 과정이 다소 추가되어 시간이 걸리지만, 나에게는 코로나 덕분에  갖추게 된 좋은 환경이다. 마스크와 일회용 장갑이 일상화되고ㅡ 그전에는 마스크를 쓰면 전염병 걸린 환자처럼 쳐다보던, 주방에서 투명마스크 조차 쓰지 않던, 환경보호로 일회용 장갑을 선호하지 않던 독일이었다- 마스크를 쓰고 주방에서 일해도 아무렇지 않게 봐주는 요즘이 나는 일하기가 더 마음이 편하다.

한국에서 공수받은 투명마스크를 하는 날도 있고, 아침에 김치를 먹었다던가 얼굴 상태가 안 좋다던가 하는 날은 일회용 마스크를 쓰기도 하고, 왠지 목이 껄껄하거나 머리가 아프거나 해서 병가를 낼 정도는 아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이 들 때는 안심을 위해 K 94 마스크를 하고 일을 한다. 마음 같아서는 주방에 넉넉히 비치된, 중국산 마스크보다 매일 k94를 하고 싶지만, 이건 한국에서 공수받아야 하는 마스크... 우리 집 아이들이 학교 갈 때 쓸 걸 생각하면, 나는 회사에서 주는 마스크를 써야겠다는 생각에 자주 바꿔가며 쓰자!하고 쓴다. 그래도 일터에 마스크가 넉넉히 있다는 게 어딘가. 감사하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조리대 쪽으로 걸어가니 엘리가 인사겸 웃는 얼굴로 날 보고 돌아보다가,

소스 위에 올리던 라자냐 판누델 조각을 일부 떨어뜨렸다.

내가 주워야겠다 생각하던 찰나, 엘리는 떨어진 판누델조각을 발로 무심히 작업대 밑으로 쓱 밀어 넣고 다시 소스를 켜켜이 바르는데 집중했다.

순간,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아, 나랑 똑같다.

나라도 그 상황에서는 발로 밀어 넣어뒀을 것이다.

손은 소스를 바르는 작업 중이었고, 작업대에서 개수대까지는 1미터 정도의 거리가 있다. 떨어진 재료를 쓰레기통에 넣고 손을 씻고 다시 소스를 바르는 작업을 하려면 그만큼의 시간이 허비된다.

하지만, 그 상황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게 행동하지 않는다.

그때, 몇 년 전의 레스토랑에서 일할 때의 비슷한 상황이 떠올랐다. 손님들이 몰려들던 어느 시간, 정신없이 일을 하고 있었다.  그때, 슬라이드로 얇게 썰고 있는 중이던 오이 한 조각이 바닥에 떨어졌다. 오이를 줍고 손을 씻고 다시 일을 하려면 또 그만큼의 시간이 들기에 발에 오이가 치이지 않도록 쓰레기통 가까이 발로 밀어놓고 일에 집중하고 있을 때,  마침 사장이 나를 도우러 주방으로 들어서다 그 광경을 보았다.

사장은 혀를 끌끌 차며, "융, 떨어진 건 바로바로 버려야지. 깨끗하게 해야지!" 그러더니 떨어진 오이를 쓰레기통에 넣고는 그 손으로! 씻지도 않고! 내 일을 돕는다고 재료들을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얇은 오이인지라, 주우려면 바닥에 손이 안 닿았을 리가 없었다. 순간, 나는 "야! 손 씻어야지!" 하고 소리를 질렀다. (사장에게도 Du(너)라고 하는 이유.... 영어에서 You라고 하는 것과 비슷한데,  독일어에서 You는 서로 아는 친한 사이일 경우 Du, 모르는 사이나 친하지 않은 경우 Sie를 쓴다. 그리고 사장은 나보다 10살이나 아래이기도 했고 말이다)

도대체, 둘 중 뭐가 깨끗한 거란 말인지...

나는 '입으로 들어가는 건 깨끗하게!'라는 주의다.

(그러나 우리 사장은 보이는 걸 깨끗하게 하는 주의였다. 손님에게 내어가기 전, 음식 담은 접시의 가장자리에 소스가 묻어 있으면 그걸 닦아 낸다고, 싱크대를 닦던 행주로 그 부분을 닦아서 나를 경악하게 했는데... 사장과의 치열했던 싸움 이야기는 다음으로 미뤄본다.)

그런데, 엘리는 그 상황에서 나랑 같은 패턴의 행동을 한다...? 묘한 동질감이 느껴졌다.

그러고 보니, 우리는 둘 다 보이는 일이 있으면 크고 작음에 상관없이 아무렇지도 않게 그냥 한다. 미루지 않는다.

이 단순한 행동이 생각보다 잘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내가 안 하면 다른 사람이 할 수밖에 없는 일은 은근슬쩍 빨리 안 하므로 다른 사람이 하게 하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다. 참 사소한 신경전인데, 이게 참 사람 피곤하고 치사하게 만드는 일이다.

그런데 엘리 하고는 이런 일이 한 번도 없었다.

내가 어, 그거 해야지 하면 엘리가 하고 있고, 엘리가 나 이제 그거 할게! 하면 내가 이미 해놨다. 

그러니, 스트레스도 없고 일의 효율성도 좋다.

생각해보니, 엘리랑 함께 일한 지가 석 달이 안 되었다.

고작 석 달 함께 일했을 뿐인데 오래 일한 것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아마도 케미가 좋아서 일 것이다.

서로 다른 동료끼리 맞춰가며 일할 때는 적응과정 중의 부대낌이 있는데 엘리와는 그런 것이 거의 없었다.

조리 중에 떨어진 재료를 대하는 자세(?)를 보니, 더욱  그런 생각이 드는 오늘이다.

라자냐 소스를 바르며, 어제저녁은 뭐 해 먹었니 퇴근하고 뭐 했니. 하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아침을 서로의 관심 어린 소소한 대화로 시작한다는 건 참 기분 좋은 일이다.

그렇게 또 오늘을 연다.


PS. 물론 음식에 대한 서로의 확고한 주관 때문에 서로 세게 주장을 할 때도 종종 있다.  

예를 들어, 감자튀김 같은 식감의 감자전 같은 'Rösti'라는 음식이 있다. 나는 당연하게 "아, 맞다! 케첩!" 하면서 케첩을 꺼내는데 엘리가 놀라며 "왜 케첩?" 했다. 나는 당연한 거 아닌가 했더니 엘리는 Apfelmus(사과소스)를 곁들인다고 했다. 그때 나도 놀라며 "뭐, Apfelmus?" 했다. 나는 이걸 케첩 없이는 못 먹어했더니 내가 먹을 때는 케첩을 찍어 먹으라며, 절대 케첩을 곁들이지 말라고 했다. 아, Rösti는 당연히 케첩인데... 속상해서 계속 투덜거렸다.

Rösti도 종류가 두어 가지인데,

아래 사진처럼, 우리나라 감자전처럼, 넙적한 거는 그래, 사과소스, 인정한다.


런데, 다른 하나는 좀 더 작은 모양의 감자튀김을 뭉쳐놓은 것 같은 바삭한 식감인, 래 사진인 것이 있다.

이 날은 이 모양의 Rösti 였다.

감자튀김 같은 걸 사과소스에 찍어먹는다니...

한 명이 너무 극렬하게 반대를 하면, 한 명이 숙인다. 그래서 안 싸우고 잘 지내는 것 같다. 그래도, 순간적으로 속상하긴 하다.

( 날의 후기: 점심시간 처음으로 음식을 받아 간 선생님이 물었다. "그런데 케첩은?" 순간 당황하던 엘리의 표정...

나는 동지를 얻은 듯 "내 말이" 하며 맞장구를 쳤다.

나에게 나름 위로가 되었다는 TMI를 덧붙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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