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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밀도 Sep 02. 2020

징징 아니고 열심이야

오늘 첫 댓글, 빛의 속도로 삭제되셨습니다. 


그렇게 징징댈거면 일을 그만두던가.


어젯밤 써 놓은 글에 달린 첫 댓글이었다. 

물감 놀이 후 남겨 놓은 아이의 흔적들에 관한 글이었다. 

마지막 문장은 다음과 같았다. 


불쑥 불쑥 튀어나오는 아이의 추상화가 유독 기다려 지는 퇴근길이다... 라고 하기엔 오늘 엄마가 좀 많이 피곤해. 오늘은 좀 적당히 적당히 플리즈~ 오케이?


브런치에 육아관련 글을 딱 10편 썼을 그 시점에 받아본 최초의 부정적 댓글이었다. 

글쓴이에 대한 배려없는 반말이 일차로 기분이 나빴지만, 가장 거슬렸던 건 '징징'이란 단어였다. 

물론 프로필사진도 없고 발행 글도 없는 분의 댓글이었다.  


코로나19때문에 어린이집은 가정보육을 하고, 학생들은 온라인 원격수업을 하게 되면서 부모들은 그 어느때보다 아이 케어가 힘들어지게 되었다. 시시각각 급변하는 교육부 정책 기사들이 나올때마다 댓글창은 부모들의 아우성으로 가득찬다. 다들 너무 힘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워킹맘들이 발을 동동 구르며 쓴 댓글의 대댓글 중에는 어김없이 내가 받았던 댓글류가 존재한다. 

  

본인의 욕심때문에 일하는 거잖아요. 
그렇다면 징징대지 말고 감수해야죠.


맞다. 내 결정이고 내가 감수할 일이다.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게 너무 힘에 부치면 일을 그만 두고 육아에 올인하는 것도 방법이다. 하지만 '징징댄다' 는 표현은 상당히 속상하다. 

모두가 힘든 전염병 시국에도 어떤이의 댓글은 찐고통이고 어떤이의 댓글은 단지 징징거림일 뿐인건지...


[오늘도 그 어려운 직장생활을 해냈습니다.] [나는 매일 퇴사를 꿈꿉니다.] 등의 직장인 글에는 '열심히 사는 가장, 오늘도 고생한 젊은이' 라며 위로와 응원을 하면서 왜 워킹맘들의 고단함은 '징징거리는' 것쯤으로 평가되는 것일까.  


나는 열심히 살 뿐이다. 


내게 주어진 시간을 낭비없이 가치있게 보내기 위해, 딸리는 체력을 감내하며 마지막 에너지 한방울까지도 적재적소에 쓰기 위해, 일도 육아도 큰 위기 없이 무탈하게 보내기 위해 오늘 하루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열심히 살고 싶어서 내 하루를 돌아보고, 메모장에 짬짬이 기록도 해보고, 주말엔 한편의 글로도 남겨보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나 좀 알아봐달라, 내가 이렇게 힘들게 산다 투정하는 게 아니다. 각자의 삶의 고단함이 조건별로 할당되어 있는게 아니라는 것 쯤은 이제 어른이라면 안다. 저마다의 사정과 처한 환경들이 있는 것이다. 


징징거리기 위해 내 시간과 에너지를 사용하고 싶은 사람이 있을까? 그럴 시간이 있으면 실컷 단잠이나 자고 싶다. 진심으로.


그런 의미에서, 지난 글의 첫 댓글은 1초쯤 노려보다 순삭. 


징징헌터님 뭔가 착오가 있으신것 같아 조용히 삭제되셨습니다. 

저는 징징 아니고 열심이고요, 오늘도 열심히 살고 있을 워킹맘들에게 왠만하면 댓글 안쓰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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