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근앱으로 소파와 책상 구매하기
가구를 고르기 위해서 당근앱을 얼마나 눈이 빠지게 봤는지 모른다.
기존에 사용하던 거주지 동네뿐 아니라 작업실 동네 향동까지 인증을 마친 후 두 지역을 기준으로 번갈아가며 검색했다. 당장 시급한 게 책상이었다. 평소 허리가 약한 나는 의자만큼은 좀 더 신중히 고르고 싶었고 마음에 드는 게 생길 때까지 접이식 간이의자로 버텨보기로 했지만, 책상은 빨리 구해야 했다. 대략 ‘우드+포인트컬러 그린’으로 꾸며볼 생각이었기 때문에 원목 책상 위주로 무한 서치를 했다.
이케아의 '파놈'이란 책상 두 개를 파시는 분을 발견했다. 코로나 시절 테이블 두 개를 구매해서 나란히 놓고 재택근무를 했다고 한다. 실제로 업로드되어있는 사진이 재택근무 느낌이었다. 두 개 중 사용을 덜한 테이블은 8만 원, 사용을 더 많이 해 스크래치가 약간 있는 건 6만 원, 두 개 같이 사면 13만 원에 팔겠다는 판매자의 글이었다. 가로 120cm, 세로 80cm에 모양이 견고해 보여 일단 관심이 갔다.
검색해 보니 넉넉한 사이즈에 습기가 강한 대나무목이라 4인용 식탁으로 많이들 쓰는 제품인 것 같았다. 공식홈에는 검색이 안 되는 거 보니 현재는 단종인 듯한데 당시 정가가 249000원, 현재는 웃돈을 받고 동일상품을 파는 온라인몰도 있었다.
평소에 이케아 자주 가지만 가구를 산 적은 없다. 셀프조립이 힘드니까. 캐비닛 같은 소품이야 쪼물딱 조립할 수 있지만 가구는 일단 너무 무겁다.
그런 무거운 건 남편에게 부탁하면 되지 않냐고? 남편은 ‘가구는 완제품을 사자 주의’라는 걸 나에게 여러 번 얘기했다. 만약 내 의지대로 조립제품을 샀을 경우, 내가 “이거 좀 붙잡아줘.”, 내지는 “여기 좀 같이 해줘”라고 말하기 전에는 절대로 먼저 나서서 하지 않을 게 뻔했다. 때문에 이케아 가구는 패스하곤 했는데 이 테이블은 일단 조립된 상태 아닌가. 왠지 더 이득인 것 같은 이상한 논리가 들었다.
난 한 개만 살 계획이었으므로 더 싼 6만 원짜리 테이블로 결정했다. 어차피 중고인 데다가 2만 원짜리 스크래치가 내 눈엔 크게 거슬리지도 않았다. 무엇보다 운반비용이 추가로 들 터였다.
집 차가 suv였지만 직접 운반할 자신은 없었다. 책상을 운반, 배달해 주실 분을 찾아야 했다.
당근앱으로 가구 검색을 하면 용달업체 광고들을 볼 수 있다. 서울 은평구 응암동에서 고양시 향동 작업실로 가구배송을 아우르는 용달기사님 두 분을 신중히 골랐다. 두 분 다 휴대폰 번호가 남겨져 있어서 전화를 걸어 문의했다. 똑같은 조건에서 한 분은 5만 원, 또 한 분은 4만 원으로 얘기해 주셔서 4만 원에 운반하시겠다는 분께 의뢰하기로 했다.
다음날 다시 정확히 하기 위해 문자를 넣었다.
어제 전화로 문의했는데요,
수요일 오전 10시 120*80 사이즈 책상 1개
응암동 아파트에서 고양시 향동 오피스 (둘 다 엘베 있음)로 당근 픽업배송 가능하실까요?
4만 원 안내받았습니다.
곧 답이 왔다.
넵 9시 30분까지 가겠읍니다.
상.하차지 주소 보내주세요.
어딘가 정겨운 문자였다.
용달기사님께서 말씀하시길, 비번을 알려주면 테이블을 작업실 안으로 넣어주고 갈 테니 바쁘면 외부 볼 일을 편히 보라고 하셨지만 그렇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앞으로도 혼자 있을 곳인데 종종 비어있는 느낌을 주는 것도 별로고, 제품 상태도 직접 빨리 확인하는 게 나았기 때문에 미리 도착해 있었다.
약속보다 일찍 움직이시는 듯하여 나도 일찍 작업실에 갔다. 아니나 다를까 10시도 안 돼 작업실로 가져오셨다. 나무 테이블 하나를 아주 가뿐하게 들고 들어오시면서 제일 처음 하셨던 말씀이 또렷하다.
“테이블 진짜 좋은 거 구하셨네요! 어디서 이런 걸 찾았대요?”
사실, 낯선 용달기사님께 당근픽업부터 배송까지 부탁드렸던 터라 알게 모르게 걱정이 있었는데 그 말씀을 듣자마자 내 마음속 긴장감이 확 풀리는 걸 느꼈다.
“오~ 진짜 괜찮은 거 구한 건가요?”
“그럼요, 이거 봐봐... 딱 세웠을 때 흔들거리는 것도 없고 크게 기스도 없고 진짜 잘 구하셨는데?”
전문가로부터 나의 안목을 칭찬받은 것 같아 기분이 굉장히 좋아졌던 나는, 수고하셨단 말씀을 여러 번 한 후에 현금 4만 원을 드렸다.
이 건물 다른 층에 배송 몇 번 와본 적 있으시다면서 5층인가 6층에 그림 그리는 분도 있더라, 이곳에 젊은 분들이 사업하러 많이 오는가 보더라, 등의 말씀도 하셨다. 다행히 나에겐 별다른 질문이 없으셨다. 예리하신 기사님. 아마 물어봤어도 내가 대답 안 할 걸 알고 계셨을 테지.
“물건 들어올 거 생기면 또 편하게 연락 주세요, 제가 단골이 많은 편이에요.”
당근에 올라와 있는 용달 후기를 보면 얼마나 다들 만족해하는지 알 거라며, 내 후기가 아마 제일 많을 거다,라는 깨알 자랑도 하셨다. 진짜 그 말씀이 하나도 과장으로 안 느껴졌다. 나도 기사님 덕분에 편안하게 잘 배송받았기 때문이다.
담배 한 대 태우고 가실 예정인데, 혹시 모르니 30분 주차권을 넣어달라 하셔서 해드렸다. 첫 무료주차권은 이렇게 사용되었다.
부지런하신 기사님. 10시 30분에 문자가 왔다. 출발하시며 보내시는 것 같았다.
오늘 감사했읍니다 다음에 뵙기를 희망합니다
항상 평안한 날 되시길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00용달 이였읍니다
마무리까지 완벽한 서비스였다. 완벽한 맞춤법이 아니었지만 당신의 업을 살뜰히 가꿔가는 분의 에너지를 느꼈다. 정말 큰 감동이 있었다.
3일 후, 당근앱에서 고르고 골라 소파도 들였다. 155*80*70의 3인용 패브릭 소파였다. 말이 3인용이지 두 명이 앉을 수 있는 정도였는데 적당히 웅크려 누울 수는 있겠다 싶었다. 그린색 패브릭이 원목과도 잘 어울리겠다 싶었고.
3일 전 테이블을 배송해 주신 용달기사님께 다시 연락드렸다. 전에 잘해주셔서 다시 부탁드린다며 문자를 남겼더니 흔쾌히 4만 원에 오케이 해주셨다.
바퀴 달린 밀대 위에 소파를 세워 밀고 들어오신 기사님. 소파를 내려놓으며 하신 말씀에 난 정말 빵 터지고 말았다.
“소파 진짜 좋은 거 구하셨네요, 어디서 이런 걸 찾았대요?”
굉장히 낯익은 문장이지 않는가? 맞다. 3일 전 책상 받을 때 들었던 말과 똑같은 말이었다.
그제야 알았다. 당근으로 물건 사는 고객의 마음과 니즈를 파악하고 정확히 찔러주는 사장님의 노하우가 집약된 영업멘트였던 것이었음을.
이쯤 되니, 내가 얼마에 구매한 것인지 말씀드리지도 않았는데 무조건 진짜 좋은 거 구했다고 하시는 게 정말 재밌었다. 10만 원에 구매한 건데, 정가인 30만 원에 구매했다고 말씀드리면 뭐라 반응하실까?
그 궁금증은 속으로 삼킨 채 나도 예전처럼 똑같이 여쭤봤다.
“오~ 진짜 괜찮은 거 구한 건가요?”
“그럼요, 이거 봐봐... 딱 놨을 때 흔들거리는 것도 없고 천도 깨끗하고 진짜 잘 구하셨는데?”
가만 들어보면 틀린 말씀이 하나 없다. 적당히 다 맞는 말씀이었는데 이토록 강한 확신을 가지고 말씀해 주시니 영업용 18번 멘트라는 걸 알면서도 마음이 평온해지면서 기분이 좋아졌다! 당근으로 아주 좋은 물건을 구매한 게 맞다는 걸 전문가도 인정하셨다, 하는 만족감. 립서비스임을 알면서도 기분 좋아지는 게 사람 마음이구나. 이것이 바로 수많은 단골손님을 거느린 일등 리뷰 기사님의 위엄이었다.
잠깐 상상해 봤다. 반대로 내가 당근으로 물건을 팔게 되었을 때는 또 어떤 말씀을 하시려나? 당근 구매자로만 두 번 뵈었는데 판매자로 뵈면 또 어떤 전략가적인 모습을 보여주실지 너무 궁금하다. 판매자의 물건을 받으시면서 분명 잘 파는 거라는 확신의 말씀을 해주실 것만 같은데 그건 과연 무엇일까?
으아, 너무 궁금하다!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당근 판매자로도 이 기사님을 만나보고 싶어지는 순간이었다.
지혜와 열심을 동시에 장착하신 분들은 지금보다 고객이 더 늘어날 것이 분명하다.
그래야만 한다. 부디 건강하시길요!
덧.
나중에 시간이 좀 흐르고 나니 똑같은 테이블 두 개를 다 살 걸 하고 약간 후회했다. 가끔 남편 퇴근 후에 필요하면 들르라고 여분의 책상도 하나 더 들여놓았는데, 나란히 붙이진 않아도 같은 디자인의 테이블 두 개의 활용도가 더 높았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판매자 검색을 다시 해 보았다. 같이 팔던 다른 하나가 아직 남아있을까 해서.
그런데 아예 흔적을 찾을 수가 없었다. 판매 내역 자체를 삭제하셨는지, 내 구매목록에서도 사라졌다. 나도 당근으로 물건을 팔 때 판매 완료된 물건들은 비공개로 돌려놓는 편인데 이 분도 그런 분이셨나 보다. 당근 메시지의 흔적도 다 사라져서 여쭤볼 길이 없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