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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KEUFeeLMYLOVE Apr 13. 2023

숨쉬기 운동만 하던 내가 필라테스에 빠지게 된 계기

사는 동안 살맛 나본 적

내가 필라테스에 빠지게 된 아주 결정적인 '계기'가 있다. 고작 선풍기 바람 때문이다.



주 2-3회 필라테스를 꾸준히 한지 꼬박 1년이 넘었다. 이제 막 걸음마를 뗀 것 같다. 여태 소진했고, 현재 사용 중인 수강권을 보니 수업을 나간 횟수로는 150회가 다 되어간다. 필라테스를 하기 전에는 걷기나 배드민턴을 아주 가끔 하거나, 홈트도 가뭄에 콩 나듯 하긴 했지만 그저 숨쉬기 운동이 주종목인 나였다. 그런 내가 이토록 빠지게 된 운동은 진정. 필라테스가 유일무이하다.

2022년 3월 30일

내 인생에서 한참 뒤늦은 사춘기를 직격타로 맞이하고 있을 때, 보다 못한 지인이 필라테스를 권유했다. 처음에는 필라테스 고작 50분 한다고 뭐 달라지는 게 많을까? 하는 마음이 지배적이었다. 이런 마음가짐에도 불구하고 주 2회 정도는 의무적으로 출석을 했다. 아무 생각 없이 다니기 시작한 지 두세 달쯤 되었을까?


어느 때와 똑같이, 필라테스 수업은 나에게 철인 3종경기였다. 50분 수업이 끝나면 나의 다리는 내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사시나무처럼 호도도도 떨렸다. 수업 직후 샤워를 할 때는, 금방 100m를 질주하고 온 사람처럼 헥헥거리고, 팔을 머리까지 들어 올릴 힘도 없어서 허리를 구부리고 머리도 간신히 숙여서 샴푸칠을 하던 시절이었다. 내가 차가 되어 자동세차장에 들어가면 딱- 좋겠다 싶었다.


따뜻한 물로 겨우 샤워를 싹 하고 나와서 머리카락을 말렸다. 스킨로션을 촵촵 바르고 나니 집 나갔던 정신이 조금씩 돌아오기 시작한다. 선풍기 바람에 머리카락이 벚꽃잎처럼 두둥실 둥실 흩날렸다. 그저 상쾌했다. 그 순간 속으로 스쳤던 생각이 "와.. 살맛 난다."였다. 여태껏 살면서 "와~ 살맛 나네!"라고 입 밖으로 뱉어본 기억이 있었던가?


이게 사는 맛인가? 그렇지! 이게 사는 맛이지!!


내가 살아있어 느낄 수 있는 다양한 기쁨을 중에서 처음 맛보는 즐거움이었다. 처음인데도 익숙한 즐거움이다 했더니, 어릴 적 선풍기 앞에서 입을 벌려 아아아아~ 하면서 오토튠으로 노래를 불렀던 장면이 스쳐 지나간다. 마냥 해맑기만 했던 시절이 떠올랐다. 아무런 걱정과 고민이 없었던 어린아이가 맞았던 그 선풍기 바람이 다 큰 성인이 돼서 내 앞에 다시 기쁘게 나타나주었다.

선풍기 앞: 노래 맛집

커다란 고통이야말로 정신의 최종적인 해방자일까? 고통스러운 삶이 우리를 더 깨우치게 만든다.



내가 1년 전 필라테스를 하기로 마음먹은 이유는 단 하나였다. 마음이 힘드니 그럼 오히려 몸을 곱절로 더 힘들게 해서, 마음이 힘든걸 눈치채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때 당시는 나름 신박한 발상이라 생각했다. 비록 시작은 이토록 어리석은 생각이었을지 모르나, 아등바등 몸을 꾸준히 움직인 덕분에 지금은 몸과 함께 마음에 근육도 많이 붙었다.


괜한 생각, 고민, 걱정 등으로 마음이 혼란스러울 때는, 나약해진 마음을 구태여 또 쓰는 것보다는 몸을 쓴다. 정신과 육체는 이어져 있기 때문이다.


나는 사람 만나는 일을 싫어하지는 않았지만, 그 무렵에 혼자만의 시간이 절실했던 때였나 보다. 그런 면에서 필라테스는 나에게 최적의 운동이었다. 자신의 몸에 오롯이 집중할 수 있는 운동이기 때문이다. 필라테스는 호흡을 중요시한다. 내 숨소리로 더욱 집중하고, 강사님의 주문에도 귀를 기울이고, 동시에 동작도 출력한다. 50분의 시간 동안 나에게 온전히 집중할 수밖에 없는 환경인 것이다.


하루 24시간 1,440분 중에서 유일하게 필라테스를 하는 50분만이 완벽하게 쉬는 시간이었다. 나에게 필라테스는 운동이자 동시에 휴식이었다. 수업시간만큼은 쓸데없는 생각 따위는 완전히 다 잊을 수 있는 진짜 휴식.


얼어붙어있던 사춘기를 녹인 봄바람 이후로 수업이 항상 기다려지고 설레기 시작했다. 아무 생각 없이 수업을 듣는 것이 아니라 벚꽃을 보러 가는 설레는 마음으로 필라테스를 하러 간다. 나의 태도가 완전히 변했다. 즐겁게 수업에 나가다 보니 육체 에너지가 점점 차오르고 정신도 서서히 정리가 되어갔다. 자연스럽게 정신 에너지가 채워졌던 것이다.


더불어 내가 꾸준히 필라테스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센터와 강사님 덕분이기도 하다. 나와 잘 맞는 곳과 지도자를 찾았기 때문이다. 좋은 지도자는 교육생과 라포형성을 효과적으로 한다. 강사님과 나 사이에 사적인 말은 하지 않았어도, 신뢰와 내적친밀감이 두텁게 쌓였었다.


나는 이사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센터를 변경하게 되었다. 원래 떠날 때는 시원섭섭해야 하는데 전학 가는 것처럼 섭섭함이 더 컸다. "항상 건강하세요!"라는 마지막말을 건네주시며 두 손이 안 보일 정도로 세차게 흔들어 배웅해 주셨던 강사님이 생각난다. 어딘가에 나를 응원하는 존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힘이 된다. 내가 단지 존재하며 사는 것도 좋지만, 거기에서 좀 더 더해 활력을 느끼며 사는 것. 필라테스의 도움을 살짝 받아 캬- 살맛 나는 인생을 살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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