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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UHDH Apr 04. 2020

우리는 왜 게임을 할까?

2만번의 시도, celeste 엔딩을 보며

celeste라는 게임을 한지 1년이 지났다. 무료로 풀린 게임이고, 도트 그래픽에 마리오같은 횡 스크롤 게임이라 그냥 스쳐갈 게임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벌써 1년째 이 게임을 주기적으로 하고 있다. celeste는 스토리보다는 손맛에 치중한 게임이다. 게임을 하다보면 말도 안되는 난이도에 혀를 끌끌 차면서, 개발자를 욕하며 어떻게 어떻게 풀어간다. 


주인공은 산을 오른다. 왜 오르냐는 질문에 잘은 모르겠지만 산에 오르면 뭔가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것 같다고 대답한다. 게임을 하다보면 나도 어느새 주인공에 감정을 이입하게 된다. 이 게임을 왜 하는지 모르겠지만, 어느새 게임을 하고 있다. 그 끝에 무엇이 있을지 모르지만, 순간순간 매번 닥친 위기를 극복한다. 산을 오르면서 주인공을 가장 괴롭히는 것은 몬스터나 어려운 지형이 아니다. 자기 자신이다. 게임에서 재밌어지기 시작하는 부분이 바로 자신의 부정적인 자아를 마주하는 순간이다. 부정적인 자아는 주인공을 사사건건 훼방을 놓으며 방해한다. 주인공은 자신 스스로와 싸우면서, 때로는 스스로를 치유하면서 산을 오른다. 우리의 여정과 닮았다. 


그렇게 부정적인 자아를 이겨내고 엔딩으로 끝난줄 알았으나, 진짜 게임은 이제부터 시작된다. 정말 산넘어 산이다. 이제까지의 난의도는 걸음마 수준이었고, B-side부터는 리듬 게임 퍼펙트를 받아야할 정도로 완벽함을 추구한다. 단 1ms라도 타이밍을 늦게 누르면 바로 실패한다. 이 미칠듯한 난이도는 게이머의 도전의식을 고취시킨다. 거의 끝까지 왔다고 생각했는데, 항상 간발의 차로 삐끗한다. 이것은 변태 제작자의 고심 끝에 만들어진 설계이다. 제작자는 맵을 만들 때 정말 많이 고민을 하고 만들었다. 전 판에서는 통했던 공략이 다음판에는 보기좋게 안먹힌다. 이거다 싶은 솔루션은 항상 틀리다. 설마 이걸 이렇게 할까? 싶은 의문이 들면 대부분 맞다. 그 해법을 찾는 과정도 즐거움이다. 그리고 마침내 모든 것이 딱딱 맞아서 깰 때의 성취감은 엄청나다. 


celeste가 다른 게임과 가장 차별화 되는 점은 실패를 피해야할것으로 치부하지 않고, 오히려 자랑해야할 것으로 만든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게임은 주인공이 땅에 떨어지거나 죽는 것은 플레이어의 미숙 탓이다. 그러나 이건 깨라고 만든 맵인지 의아할 정도로 말도 안되는 도전이 대부분이다. 그렇게 이건가, 이렇게 하면 될까, 이런 저런 시도를 하다보면 조금만 하면 될것 같다. celeste는 게임을 잘하고 못하고의 경쟁이 아니다. 게임의 스토리처럼 자신과의 싸움이다. 미칠듯한 난이도에 몇번이라도 때려치고 싶지만, 계속해서 시도하게 되는 것은 스스로 더 나은 내가 되고 싶어서인것 같다. 어려움. 그래서 해결해야한다. 어렵기 때문에 도전해야한다. 산을 왜 오르냐는 질문에 “거기에 산이 있기 때문이죠” 라는 답을 했던 등산인처럼, 유저들은 미친 난이도에 묵묵히 도전할 뿐이다. 


때로는 아무리 시도해도 게임이 안풀리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땐 그 날 게임을 그만둬야한다. 신기하게도 다음날 하면 너무 쉽게 풀린다. 문제에 너무 깊숙히 빠지면, 특정 패턴에 빠지게 된다. 계속해서 시도하다보면 틀린 부분에서 계속 틀린다. refresh가 필요하다. 멀리보기. 아니다 그 보다는, 에너지 관점에서 봐야한다. 어떤 날은 더 이상 시도할 에너지가 남아 있지 않다. 멘탈이 나간다. 실패가 주는 좌절감이 너무 커서 더 이상 도전할 수 없는 순간이 있다. 그 때 마다 느끼는 것은 어떤 일을 성취하기 위해서 뜨거운 열정보다는 의연함이 필요하다. 의연함이란 실패를 하더라도 흔들리지 않는 것. 아무리 죽어도 아무렇지 않게 평정심을 유지하는 것. 이것이 성취의 열쇠이다. 


마침내 2만번의 죽음 끝에 나는 엔딩을 봤다. 다른 사람들은 1만번이면 깨는걸, 나이먹고 느린 반응속도로  깨다보니 남들보다 더 오래걸렸다. 그래서 나 자신이 자랑스럽다. 포기하지 않고 끝을 봤다는 것에. 이건 남과의 경쟁이 아니다. 나 자신과의 싸움이다. 


산을 왜 오르는가? 실학을 하는 사람이라면 체력증진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인간은 뭐든지 실리만을 추구하지는 않는다. 산이 그 자리에 있으니까. 산을 오르는 것은 그 자체로 가치있는 행동이다. 우리는 왜 게임을 할까? 게임을 하면서 이겨내는 수 많은 역경들을 이겨내는 과정이 가치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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