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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UHDH Apr 13. 2020

240Hz를 향하여

제 취미는 피씨 견적 맞추기에요

게임을 하다보면 게임이 결코 비싼 취미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닿게 된다. 자동차, 음향, 사진 하다못해 등산 마저도 고가의 장비로 치장하는 우리나라에서, 게임은 컴퓨터 한대만 사면 되니 얼마나 심플한가. 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모든 분야에서 깊이 있게 들어가면, 현재 가지고 있는 장비의 한계를 느낀다. 기타를 처음배우는 초보자는 10만원대의 콜트 기타나 200만원짜리 명품 펜더 기타의 소리를 구분하지 못하지만, 기타를 좀 쳤다 하는 사람은 소리의 솔리드 바디가 내는 특유의 울림, 저음의 웅장함과 같은 기준이 생긴다. 


작년에 처음에 컴퓨터를 샀을 때는 회사 후배한테 100만원으로 견적을 내달라고 부탁(=갑질)을 했다. 다들 내가 게임을 오랫동안 해온 사람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나는 아직 게임을 제대로 시작한지 1년도 채 되지 않았다. 별 생각없이 후배가 다나와에서 견적을 짜준대로 피씨를 구매했다. 그렇게 하는게 내가 일일이 검색할 필요없이, 시간 낭비없으니 이득이라고 생각했다. 100만원짜리 컴퓨터는 생각보다 좋았다. 조립 피씨는 가성비가 좋아 못돌리는 게임은 없었다. 마우스, 키보드도 그냥 만원짜리 싸구려를 사용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게임에 조금씩 빠져들면서, 내가 가진 장비의 한계를 알게 되었다. 먼저 FPS게임에는 주사율이라는 개념이 있는데, 초당 몇개의 화면을 보여주냐의 개념으로, 이게 높을수록 좋다. 모니터를 살때 해상도만 고려를 했던 나였기에, 당연히 주사율이 높은 모니터는 고려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주사율이 높을수록 총싸움이 잘된다는 인터넷의 글과 주변 지인의 충고에 따라 기존 60Hz 모니터를 144Hz로 바꾸기에 이른다. 그 동안 잘쓰던 알파스캔 모니터는 회사에서 사용하기로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144hz에 만족할거라 생각했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었다. 내 컴퓨터 사양으로는 사실 144Hz의 주사율을 감당하기도 버거웠다. 그래서 차선택으로 게임의 그래픽 옵션을 낮춰, 내 모니터에서는 게임 캐릭터가 엉성하게 보인다. 마우스도 13만원 상당의 로지텍 G702모델을 샀다. 마우스 밑에는 무게추가 달려있는게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역시 비싼건 다르구나. 스피커는 5만원짜리 브릿츠껄 쓰다가 40만원짜리 보스 c20으로 바꿨다. 헤드셋,마이크도 비싼거 샀다. 내가 이걸 왜 글쓰기에 쓰고 있는지 모르겠네. 


아무튼 부가적인 물품에 돈을 쓰고 나니, 다시 본체로 돌아왔다. 현재 최고 사양의 피씨는 240Hz의 주사율을 낼 수 있다. 240hz의 성능이 궁금해서 PC방에서 체험해보니 신세계이다. 화면 넘어감이 아주 부드러운게, 막쏴도 적들이 그냥 헤드샷을 맞는다. 내가 그동안 게임을 못했던게 아니라, 컴퓨터가 안좋아서 게임을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게임에 진지하게 임한다면 이제는 240Hz를 향해서 가야할 때인것이다. 


컴퓨터의 주요 부품은 그래픽 카드, CPU, 램 정도인데, 이 중 제일 비싼건 그래픽 카드이다. 그래픽카드의 가격은 비트코인 체굴로 인해서 폭등 후 좀처럼 내려가지 않고 있다. 더군다가 240Hz를 감당할 수 있는 그래픽 카드는 최상위 급으로 최소 70만원~비싸면 120만원가까이 한다. (내 첫 피씨의 그래픽카드는 25만원짜리였다.) 돈이 많다면 그냥 사면 되겠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극한의 가성비 충인 나는, 이렇게까지 비싼걸 사야하는지 스스로 계속 되물으며 다나와 최저가를 확인했다. 그러다보니 가끔 특가 이벤트로 10%정도 세일하는 때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요행만을 바라게 된다. 


요행을 바랄때는 배나무만 마냥 바라보며 배가 떨어질때까지 기다려서는 안된다. 배나무에 알람 기능을 설정해야한다. 뽐뿌 게시판에는 그래픽카드 특가 행사가 가끔 올라오는데, 이를 확인하면 된다. 그런데 계속 게시판만 새로고침을 할 수는 없으니, 내가 원하는 그래픽카드가 올라오면 알람을 울리게 설정하게 하면 된다. 이를 설정하기 위해서 텔레그램을 깔고, bot을 만들어서 게시판 글 중에 “RTX 2080 Super” 키워드가 올라오면, 나에게 바로 톡이 온다. 그렇다. 요행은 똑똑한 자의 것이다. 


어제 새벽에 알람이 울렸다. 시세보다 20만원 가량 저렴한 특가, 50대 한정. 그러나 나는 망설였다. 그래도 여전히 비쌌다. 이를 뽐뿌에서는 “싼데 비싸다” 라고 표현한다. 80만원을 주고 이걸 사는게 맞을까? 그렇게 다나와 최저가를 검색하고, 후기를 검색하는 사이, 매물은 이미 사라졌고, 품절이 떴다. 허탈했다. 근 한 달을 기다렸는데, 나의 망설임으로 특가 버스는 지나갔다. 


보통 피씨를 살때는 한 업체에서 모든 부품을 사서, 조립까지해서 배송해달라고 요청을 한다. 피씨 조립도 생각보다 귀찮고, 특히 초보자는 실수로 부품을 망칠까봐 걱정을 많이 한다. 나도 처음에 조립을 했을 때 쿨러를 잘못달아서 CPU온도가 70도까지 올라가, 부팅 후 1분만에 자동으로 꺼진적이 있었다. 그런데 고가의 컴퓨터를 구매하려는 이들은 한 업체가 아니라 부품을 특가에 맞춰서 따로 구매를 한다. 이를 뽐뿌에서는 “드래곤 볼을 모은다”라고 표현한다. 


나는 현재 드래곤볼 중 3개를 모았고, 6개를 남겨두고 있다. 내가 모았던 3개는 시세의 30%정도 저렴하게 특가로 구매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배송비를 고려하면 그렇게 싼것도 아니다. 게다가 세일하는 모델은 프리미엄 모델로, 사실 그렇게 좋은 모델은 필요 없다. 그래도 30% 세일이라는 느낌이 좋기 때문에 여기에 만족한다. 이렇게 컴퓨터 부품을 싸게 사는 것, 그리고 이를 위해 최저가를 검색하는 과정 자체도 하나의 취미인 것이다. 

PC게임을 구매하는 플랫폼(안드로이드로 따지면 플레이 스토어)인 스팀인 세일 행사로 유명하다. 5만원 하던 게임을 어느날 깜짝 세일로 2만원에 판다. 일단 싸니까 게임을 산다. 그리고 플레이 하지 않는다. 이를 뽐뿌 용어로 “스팀 라이브러리에 추가했습니다”라고 부른다. 게임을 구매하는 것 자체가 게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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