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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UHDH Dec 08. 2020

연애의 온습도

어느날 아보카도가 싹이 텄다

1.

2년 전 나무 한그루를 선물 받았는데, 관리를 잘 못해서 금방 죽었다. 버려진 화분을 어떻게 처리할지 몰라서 베란다 한 구석에 쳐박아놨다. 그러던 중 아보카도를 먹고 남은 씨앗을 버려진 화분에 심었다. 화분에 넣을 때 흙을 깊게 파지도 않았고, 씨앗이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만 얕게 뭍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른다. 어느 날 빨래를 하러 베란다에 가서, 뒤를 돌아보니 화분에 긴 줄기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있다. 너무 자연스러워서 뭐가 이상한지 몰랐다. 아보카도가 싹이 트고, 벌써 키가 10cm 정도 자라있었다.


  

2.

처음 아보카도가 자랐을 때 충격은 어마어마 했다. 아보카도 관련 글들을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씨앗을 흙에 심어서 싹을 틔우는것이 굉장히 어렵다고 한다. 그것도 심지어 겨울이었다. 우리집 베란다는 세탁기가 있어서 그런지 습하고, 한 낮에 햇볕이 들어오면 굉장히 더운 편이다. 이런 환경이 아보카도가 원래 살았던 열대성 기후와 비슷하여 아보카도가 살기에 좋았나보다. 반면에 다른 식물들은 이런 환경에서 버티지 못한다.

나의 허브 삼총사- 로즈마리, 바질, 페퍼민트-는 한 달만에 모두 죽었다. 심지어 죽이기도 힘들다는 불사의 상징 선인장, 스투키도 나의 베란다만 오면 시들시들하다.

3.

한 번의 성공 경험으로 나는 기고만장해져갔다.  과일이나 채소를 먹고 나면 씨앗을 들고와서 남는 화분에 심기 시작했다. 이미 많은 화분이 죽었기 때문에 빈 화분은 많았다. 심지어 11번가에서 텃밭 셋트를 구매했다. 그냥 아무 과일 씨앗을 심고, 베란다 환경에 잘 맞는 종은 사는거고, 맞지 않는 종은 죽는다는 식으로 방치했다. 잔인하지만 자연은 그렇게 진화해왔다.


4.

식물 키우기의 끝판왕은 난이다. 그건 아무래도 난이 사는 서식지가 사람들이 사는 환경과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난은 사람과 공존하기 어렵다. 그래서 난을 키우는것은 정성이 많이 든다. 나는 난을 키워선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많은 정성을 들여서 키운다는 것은 지금 환경에 맞지 않다는 것이다.


5.

연애도 비슷한것 같다. 100%잘 맞는 사람이 어딨겠냐마는, 나를 너무 많이 바꿔야 하고, 고쳐야 한다면 그 관계는 오래 지속되지 못한다. 꾸미고 속이고 참고 이런 것들은 언젠간 끝이 온다. 서로간에 마찰이 있을때 버티지 못하는 시점이 온다. 아무리 그 사람을 좋아하고 사랑해도 나의 모든것을 바꿔야 한다면 그 관계는 잘못된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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