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시간 죽음의 굴레와 분위기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었다. 그동안의 생과 사를 돌아보며 숨어있는 곳곳의 감정들을 꺼내 보기도 하고 차마 꺼내기엔 너무나 큰 슬픔의 일들을 마무리 짓기가 힘이 들어서 다시 그 자리에 묻어두기도 했다. 아버님께서는 주변의 함께했던 추억이 깃든 자들을 아프지 않게 하려는 노력으로 조용하고 천천히 생과 이별하셨다. 아주 고운 모습으로... 임종 때 자리를 함께 하셨던 어머니께서 말씀하셨다. "아버지께서는 내 눈에 비칠 마지막 모습으로 괴롭거나 아픔을 주지 않으려고 아주 곱고 이쁘게 떠나셨다." 그 모습은 지금부터 앞으로 생을 마감하실 때까지의 어머님 기억 속의 아버님의 마지막 모습이 될 것이다. 그건 평생 아버님께 의지하고 기대고 계셨던 어머님을 향한 당신의 마지막 배려이며 사랑이라는 생각이 든다.
오전 수업을 마무리 지으며 학생과 잠시 위드 코로나 시대의 우리의 자세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또한 지금 우리 곁에 그리고 내 앞에 직면해있는 죽음에 대하여 끊임없이 깊어지고 넓어지는 삶의 단계와 피부 가죽이라면 두꺼워지고 얇아지기를 반복하는 인생을 느끼고 알게 된 깨달음에 대하여 생각하고 또 생각하며 나누고 있었다.아마도 죽음을 향해 천천히 움직임을 하고 있었던 아버님을 향한 마음이, 밑도 끝도 없이 불쑥불쑥 튀어 오르는 감정을 자제하려는 마음으로 가끔 생각을 정리하고 마음 나누기를 하곤 했었다. 생각의 나눔이 얼마 되지 않았을 시각 정확하게 11시 48분, 전화기의 불빛이 번쩍인다. 남편이었다. 수업 중인 걸로 알고 있을 텐데 전화를 한건 급한 일일 거란 생각이 밀려들었고 생각이 그렇게 미치자 갑자기 두려운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무거운 맘을 잠시 접고 통화 버튼을 누른다. 누름과 동시에 내 소리가 그의 마음을 잡자마자 "아버지 돌아가셨다. 곧 집으로 갈 테니 준비 좀 부탁해." 그리고 전화기 저편에서 들리는 공허함의 소리 이후 기억이 통째로 떨어져 나간 건지 그 순간의 기억만이 지워져 버린 건지 그이후는 사라져 버렸고 그때의 무너져 내린 가슴만을 쓰다듬고 있을 뿐이었다. 감정의 방황은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스스로를 차분히 다독인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아버님께선 어머님 곁에서 아주 편안하게 임종을 맞이 하셨다. 아주 곱고 편안하게 더 이상 힘들어하시지 않으려고 생과 천천히 이별하셨다. 우리는 모두 자기 앞에 펼쳐진 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걸까? 아버님을 먼저 떠나보낸 어머님을 뵈며 깊은 생각과 그 생각 위에 넘쳐나는 사랑이 이젠 그녀를 짓누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제 어머님의 가야 할 길은..? 삶의 의미는..? 누구보다 더 서로 아껴주는 마음이 강했기에 증오나 분노의 마음은 그전에 미리 다 사라져 버렸고 벌려둔 자잘한 아픔들은 눈에 띄지도 않는다. 그저 떠나간 자와 남겨진 자의 서로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지금까지 내가 경험한 죽음에 대해여다음의 세 가지로 요약해 보았다. 지금까지 나를 짓누르고 있는 죽음 이후의 정리되지 않는 감정도 있고 정리는 했지만 그 깊은 슬픔에 머물러 있는 감정, 아직도 나를 방황하게 하는 감정까지 모두 모였다.
자식을 잃은 부모의 아픔과 상실감, 또 사랑이 존재하는 배우자를 잃은 상대 배우자의 상실감, 부모를 잃은 후 더 나아가 부모에게 아직 못다 한 효가 남아 있다고 자책하는 자식의 상실감이 여기 이렇게 늘어져 있다. 과연 어떤 상실감이 가장 큰 것이라 할 수 있을까? 나에게는 그 상실감이 단계적으로 찾아왔다. 자식을 잃은 상실감은 겪은 자만이 알 수도 표현할 수도 있다. 세상 그 어떤 것도 그 상실감을 대신해 줄 수는 없다.
아이를 떠나보낸 날 내가 겪기에 너무도 어색하고 힘이 들었던 건 아이가 존재하지 않는 이 세상에서 그래도 살아지더라는 거다. 감성은 거부하고 있는 순간의 마음을 이성은 끊임없이 지키려 애쓰고 있고 거부하는 마음과 수용하려는 마음이 갈등하고 싸우고 있었다. 비참한 건 아이가 없는 이 세상에서도 배는 고프고 졸리기도 한다는 거였다. 나는 산자이며 아이는 죽은 자였다. 이제는 더 이상 함께할 수 없는 다른 시간, 공간에서 우리는 서로 시간을 보내게 된 것이다. 그때는 마음을 잘 다지고 추스르고 단단해지려고 애를 썼다. 그리고 그것이 잘 정리된 줄로 착각하며 살고 있었던 거다. 죽음을, 죽은 자라는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게 된 건 사실 불과 몇 년 전이며 어쩌면 아직도...
아빠를 보낸 날 자식으로서의 부족함과 상실감을 반성하며 그 감정까지도 함께 보냈다. 그 두 가지 모두를... 아빠의 배우자인 엄마는 다행히도 강하셨다. 잘 견뎌 주시고 담담히 이겨내 주셨던 엄마께 또 한 번 감사를 드렸다. 자식들을 향해 강한 척을 하셨어도 그것은 나를 지켜 주었고 위로해주기에 충분했다. 네 잘못이 아니라고, 오래전 떠난 아이가 잘 챙겨 드리고 위로해 줄 거라고... 이젠 염려 말라고.
사실 과거 그녀의 아이에게는 접근도 못하게 주변에서 가로막고 자제를 시켜서 주검이 된 아이에게 더 이상 다가갈 수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 보내드린 아버님과는 이별에 대한 준비를 충분히 할 수 있게 해 주었고 그것으로 온전히 비워내기를 해서 그런지 언제까지나 그리울 수 있는 아버님이지만 보내드린 후의 마음은 아주 평안했다. 짐을 지워드리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아버님께 아이를 부탁드리고 싶었다. 손주였던 그 아이를 어디에서나 만나면 알아보실까? 아니면 영혼은 육체와 다른 모습 형태를 띠고 있기에 만남을 지나치며 어긋나 버리는 걸까? 그래도 할아버지는 이제는 천사가 되어버린 손주의 맑은 영혼을 알아보시리라... 사실 사후세계가 존재한다면 그곳에서는 아이가 두 분의 선배이다. 두 할아버지를 챙겨야 한다. 그곳에서까지 다시 아이에게 책임을 넘겨주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아이가 안정되고 두 할아버지의 영혼이 편안하길... 바라고 또 바랄 뿐이다.
아직은 아버님을 그리워하며 현실에서의 삶을 걱정하고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며 감정도 이성도 임시방편으로 살아가기를 시작했고 현실과 부딪히고 있다. 그리고 곧 그 현실에서 편안하게 살아가게 될 것이며 살아질 것이다. 남겨진 자들은 살아내야 한다. 그게 반복되는 우리의 삶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반복해온 우리의 삶은 아니다. 그냥 얻어진 삶이 아니라 소중한 사람을 떠나보낸 후 얻어진 삶이므로 무엇보다 소중하고 값진 삶을 살아 내야 한다. 그러한 삶을 살아 내려면 내가 살아가려는 삶의 가치를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몸을 추스르고 이겨내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리고 다시 좌표 하나가 빠진 좌표 평면에서 각자의 자리를 자연스럽게 찾아가고 자리매김을 하며 관계 맺기를 해 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