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사칼리아 선율을 완전히 집어삼킨 습지의 소녀
안개비 사이로 햇살이 여러 갈래 찢기듯 길게 길게 퍼진다. 이후 햇살은 빛의 구원이 없는 줄로만 알았던 습지까지 내비쳤다. 묘하게 자신을 투영하며 몸을 숨긴 채 그곳을 염탐하고 그녀를 쫓기 시작했다. 조마조마해하며. 뒤돌아 보던 그녀의 강한 눈빛에서 무심한 듯 느껴지는 간절함을 보았다. 또, 누구보다 착하고 순진함에 덮인 계획적인 섬세함을 엿볼 수 있었다. 의지는 그녀를 시달리게 했던 환경 탓에 점점 단단해졌다. 그리고 그것은 다른 세계와 그녀를 단절시켜 버렸다.
소녀의 모습에서 나를 보았다.
노출된 환경에서 겪어낸 경험이 주는 상처의 질량과 무게는 다르다. 다만 견뎌낸 시간으로 그녀와 내가 같은 직선상에 있는 것은 아닐까 하고 의구심을 가져본다. 선구자의 모습으로 그녀가 이미 내놓은 길을 쫓아가며 나는 자신과 만날 수 있었다.
습지를 사랑한 그녀와 그녀를 놓을 수 없었던 습지가 팽팽하다. 먼발치에서 지켜보고 있는 나의 시선 또한 한 치의 양보도 없이 꼿꼿하다. 그녀와 나. 서로를 지키려는 마음만이 가득하다. 6세의 그녀의 습지와 20대의 그녀의 습지는 시간의 질량과 부피보다 더 많이 쌓인 경험만큼 외부세계와는 점점 단절되어 완전히 차단되었다. 그녀의 짧았던 노년은 비록 단절된 삶이었지만 아름다웠다. 소녀의 시선을 쫓다 보니 그녀의 애정이 느껴진다. 그녀는 책으로 소통하며 습지 생물들을 역사에 한 땀 한 땀씩 새겼다. 그녀의 삶인 그곳, 애정 가득한 생물들을 기록물로 남겨 놓았다. 그 과정 위의 그녀는 여전히 강력한 에너지로 습지에서 소외된, 혹시나 그녀와 꼬인 위치에 있을 그것들을 찾아 나섰다. 새로 구입한 배의 머리를 돌리고 시동을 건 후 경쾌한 마음으로 출발해서 고요한 그곳에 잠시 머물렀다. 그리고 그곳을 기록물의 한 곳에 옮겼다.
소녀는 그곳에서의 시간을 충분히 누렸고 마음만이 가득한 습지에 머물러야 했다. 그곳이 세계와 단절되는지도 모르는 채 죽음에 이르게 된다. 그녀는 그렇게 습지의 아름다운 위로의 노래와 축복의 박수를 받으며 평온하게 삶을 마무리했다.
소녀는 습지의 여러 생물과 육지의 사람을 연결해 주는 등호였다. 등호는 인간의 편견과 선입견이 표출되는 거처럼 드러난 무자비한 폭력과 그들의 잔인함에 노출되어 팽팽하게 두 개의 곧은 선으로 연결되어 있다. [수학자의 아침]의 김 소연 시인은 선분을 차분하고 단정하다고 전한다. 소녀는 단정한 두 개의 선분으로 이루어진 등호의 모습을 하고 있다. 그녀의 세상, 습지를 담고 있는 장단점이 많은 그곳으로 육지의 문화와 시람을 연결시켰다.
파사칼리아 선율과 겨울 안개비 내리던 날을 연상케 하는 그녀의 모습에서 오후 4시가 떠올랐다. 그것은 물리적인 나이와 공간을 포함한 시간이라는 질량 안의 경험 때문이었을까?
아무것도 몰랐다고 말할 만큼 그녀는 투명한 눈을 가졌고 그 눈에서 호기심의 빛이 뻗어 나왔다. 이후 그녀에게 부정적인 감정의 강력한 차단과 그것보다 더 강력했던 호기심으로 시작된 경험이 펼쳐진다. 부정적 경험의 트라우마였을까. 사랑에 있어서는 확인하고 다시 돌아본다. 그 안의 결핍이라는 낯선 단어 때문에 더 강한 호기심이 생긴 거처럼 경험을 온전히 치열하게 겪었다. 그녀는 경험에서의 대리만족과 두려움을 양손에 쥐고 어느 한쪽으로 절대로 무게를 싣지 않았다.
그녀의 오후 4시는 나의 모습과 흡사하며 다시 그 모습이 투영되어 소녀를 바라본다. 의지는 오후 4시가 모두 삼킨 거처럼 눈빛은 아련하기만 하다. 그녀의 마지막은 그토록 떠날 수도 벗어날 수도 없었던 습지에서 자신만의 그곳 생물들에게 사랑을 주고받는 중이었다. 그렇게 평안하게 마무리되는 소녀의 삶에서 터트리기 직전의 슬픔이 뭉쳤다. 슬픔의 뭉치는 자꾸만 커져서 습지의 공간 부피만큼 커져버렸다. 충혈된 눈과 퉁퉁 부은 얼굴은 슬픔에 정비례한다.
세계 대전을 겪을 당시 아니 그 이전부터 머리로는 알고 있던 편견과 선입견으로 잘못 자리 잡은 세상의 많은 '정리'들이 이 시대에도 반복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지금 다시 상처를 딛고 꿋꿋하게 일어나라고 격려와 위안을 할 뿐이다. 세대를 거쳐 지나온 시간에도 데자뷔 되는 우리의 삶처럼 악습을 여전히 분별없이 본능적으로 따르고 무관심의 시선으로 그저 바라볼 뿐이다.
소녀는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고 잘 아는 방법으로 습지를 알리려고 마음먹는다. 그것보다 앞선 습지 생물들에 대한 사랑, 경애의 마음과 호기로 똘똘 뭉쳐진 그녀의 실천으로 기록들이 드디어 빛을 발산했다. 습지는 자신만의 공간이 아니며 쓰레기가 난무하는 곳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나간다. 마침내 그 꿈을 실현했다. 자신만의 방법으로 인생을 나누어 세운 계획을 실현한 것이다.
오늘 다시 귀를 자극한 파사칼리아 선율은 오후 4시에 머물러 있다. 초겨울 안개비가 함께 동반되어 소녀가 있는 습지로 나를 안내해 준다. 파사칼리아 선율만으로는 감정의 종착인 슬픔을 딛고 일어나기 힘이 들었다. 이제 아련한 초겨울의 오후 4시를 닮은 그녀와 깊은 만남을 하려고 한다. 슬픔에 침잠된 과정들을 딛고 일어서기 힘이 들 지라도.
[가재가 노래하는 곳_델리아 오언스]
그녀의 공간 터전이었던 습지에서의 카야의 삶을 아련히 지켜본다. 이후 그녀의 도전을 온 마음으로 응원하기에 이른다. 습지를 늪과 구분 지어 빛과 음지로 나누고 습지의 아름다움을 알렸다. 습지의 빛을 보았고 그 첫머리에 카야가 머물렀던 그곳은 이미 나를 매료시켰다. 아름다움으로 펼쳐진 그곳이 실제 자연에서는 더한 아름다움으로 표출되니 그곳을 묘사한 부분을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그녀를 둘러싸고 있는 배경을 쫓는다.
그녀를 둘러싼 사랑이 그녀를 쫓는다.
지켜준다. 테이트와 그녀를 놓지 않았던 주변인들을, 지켜줬다. 그녀와 습지의 팽팽함을 에워싸는 주변인들의 긴장감이 모두 그녀를 지켜준다. 그녀가 습지를 보호하고 지켜준 까닭이다. 소녀는 습지와 등호로 연결되어 있다. 그녀는 습지와 육지의 사람, 문화를 연결해 주는 등호였다.
넓게. 때론 깊게.
상처 투성이인 카야는 단단했다.
꺾이지 않았다. 그녀를 에워싼 습지가 있어서일까.
67p, 449p
죽음의 발걸음이 가까이 다가오면
나는 그 처녀를 사이프러스 나무에 숨기리
과연 카야가 있는 곳 깊은 습지 쪽으로 그녀를 열심히 쫓으면 가재가 노래하는 그곳에 닿을 수 있을까?
아무도 없이 오롯이 혼자의 힘으로 그녀는 습지를 보호했고 자신을 지켰으며 그곳에서 우뚝 솟았다.
마침내 소녀는 파사칼리아 선율과 함께 찾아온 초겨울 오후 4시도 그때 내리던 안개비도 모두 집어삼켜버렸다. 그리고 스스로 자연이 품고 있는 습지 생물들을 향한 무한의 사랑으로 역사를 쓰고 책으로 기록물을 남겼다. 아련한 슬픔에 침잠되어 벗어나지 못하는 깊고 깊은 내 사랑을 대신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