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수함수의 모양으로 땅 속 깊숙이 파고드는 고구마 너~
"바쁘다!"
마침내 고구마 심기가 예정되어 있는 날이다.
평소 토요일 아침보다는 한정된 시간 안의 움직임과 그것을 재촉하는 마음이 더 바쁘다. 시간에 쫓겨 딸아이를 바쁜 맘으로 급히 깨웠다. 그렇게 움직이기 시작한 가족 구성원 한 명 한 명은 제각각 자신의 시간 속에서 그들 고유의 방식으로 에너지를 표출한 이후 울타리를 벗어나서 오늘도 자신의 좌표를 찾아 맡은 역할을 거뜬히 해낸다.
오늘 나의 미션은 강화 쪽으로 발걸음을 재촉하면서 시작된다. 자신들이 맡은 역할의 자리로 이미 떠나버린 우리 4 식구의 대표로 2주 전에 나는 강화에서 고추심기와 남아있던 밭일을 했었다. 오늘은 고구마 심기와 속아내기, 풀 뽑기 등 남은 미션이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루와 골의 주기를 수십 번 반복해서 만들어졌으며 비닐의 안정된 보호를 받고 있는 비어있는 밭 두둑이 있는 그곳으로 향해야 한다.
강화 가는 길에서는 조금의 조급함과 모순적인 맘속에 찾아온 평화처럼 시각적으로 전달되는 자연의 아름다움이 주는 안정감으로 좀 더 속도를 내야 한다는 급한 맘을 잊게 했다. 그렇게 자연이 전달하는 아름다움과 평온함에 잠시 빠졌었다. 태도는 유유자적 자연과 점점 친화적으로 변했고 급한 맘과는 다르게 천천히 페달을 밟고 있었다. 주변에 감정이 동화되면서 자동차는 이미 그것들의 변화와 함께 이동했다. 하늘에서는 끊임없이 달콤한 솜사탕이 유혹한다. 받아 든 마지막 솜사탕의 여운은 마치 기계에서 깔끔하게 마무리되지 못한 실타래의 정돈되지 않은 실이 여기저기 흩뿌려져 푸르른 하늘에 수채화를 그려놓은 듯했다. 구름이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는다. 자리를 잡아준 솜사탕 덕분인지 아쉬움은 수채화가 그려진 하늘에 미련으로 남아 있다.
벚꽃은 더 이상 볼 수 없지만 다채로운 자연에는 내가 모르는 꽃과 식물들이 계절에 뒤쳐져, 때론 계절에 앞서서 언제부턴가 그곳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분위기는 단단하고 아름답게 그들이 있는 자리를 더욱 돋보이게 했다. 자연에서는 자연스러운 무한의 자유가 느껴진다. 평화라고 느껴지는 바람도 코끝에 점점 가까워진다. 조급함은 잠시 뒤로하고 가던 길을 조금 돌아서 강화의 봄 안에서 자연과 조금 더 즐기며 천천히 목적지에 도착했다.
[정담]은 2주 전 아니 이전처럼 여전히 포근하게 나를 맞아 주었다. 따뜻한 마중은 잠시 동안 자신을 귀하게 여기게 했고 높은 신분인 걸로 착각하게 만들었다. 펜션에 도착해서 그곳에 모인 분들께 인사를 하며 새삼 실감한다.
고구마, 오늘은 고구마를 심는 날이다. 잠시 잊고 있었다.
오늘은 고구마를 심는 날... 고구마는 나에게 여러 모습으로 다가온다. 어릴 적엔 고구마는 단지 감자를 비롯해 먹기 싫은 구황작물일 뿐이었다. 가리는 음식 중에 하나였다. 이후 차차 시간이 흘러 고구마의 이로움과 그 맛에 감탄하게 되었을 쯤에는 고구마는 단순하게 수확할 때 힘든 농작물이었다. 그렇지만 다이어트 등 많은 사람들에게 특히 건강 전문가들에게 환영을 받는 식품이 되었고 활용되는 영역도 폭넓게 확장되었다. 그렇지만 고구마가 심어질 때의 모습을 생각하거나 지켜본 적은 한 번도 없었고 궁금해하지도 않았다. 그러니 당연하게 고구마를 심을 때의 모습에서 지수함수가 그려진다는 것은 상상조차도 할 수 없었다.
고구마, 땅속에서 지수함수를 그리다
어느 날의 고구마를 떠올렸다. 흙 속 어딘가에서 조용히, 그러나 끈질기게 뿌리를 뻗어가던 그 고구마. 처음엔 아무 일도 없는 듯 조용했다. 매일 같은 길, 같은 햇살, 같은 물뿌리개.
그런데 어느 날, 그 흙 위로 작은 싹이 올라왔다.
그리고 그다음 날, 놀랄 만큼 잎이 벌어졌고,
마치 땅속에서 몰래 준비한 시간들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는 것 같았다. 그것이 지수함수였다. 아무 변화 없어 보이던 날들 위로, 갑자기 시작된 벅찬 성장의 모습이다.
지수함수 그래프처럼, 갑자기.
정담에 도착해서 인사를 나눈 후 부지런히 일을 하기 위한 편한 복장으로 갈아입고 몸 전체를 무장했다. 모자와 장갑까지... 그렇게 고구마 심기에 최적화된 복장과 장비와 태도, 주변 환경까지 만들었다. 그때부터는 역할분담을 하고 각자 분담된 자리에서 맡은 바 임무를 다하면 된다. 바람은 산뜻하고 방향과 속도도 적당하다. 볼을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이 유난히 시원하다. 햇살을 더욱 따사롭게 도와준다. 햇살도 미리 계획된 듯 농사에 꼭 필요한 만큼만 내리쬔다.
두 사람은 각자 만들어진 밭 둑이 적당한 거리마다 물이 나오는 호수로 길(깊이 25~30cm가량, 사이의 폭 20cm쯤)을 만들고 다른 한 사람은 고구마 순을 만들어진 곳곳의 자리에 개수를 맞춰 내려놓는다. 그리고 나머지 사람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고구마를 심기 시작한다. 고구마 심기에는 요령이 있다. 고구마 심기에 있어서도 심을 때의 도구가 있다. 고구마 대를 꽂을 수 있는 긴 쇠막대, 그리고 장갑이 있다. 처음에 고구마를 쇠 막대에 꽂아서 먼저 땅속으로 집어넣을 때는 45°로 넣다가 방향을 바꿔 바닥과 수평을 이루게 하여 쭉 밀어서 넣는다. 처음에는 생각보다 쉽지 않았지만 고구마 심기가 익숙해지면서 속도가 붙는다.
속도가 붙으면서 이젠 제대로 보이기 시작한다. 고구마순과 긴 쇠막대인 도구는 손에 맡겨져 점점 편안해진다. 심어질 때 오른손잡이들은 기울기 (a>1 )가 증가하는 모양의 지수함수를 그리며 춤을 추고 자신의 일에 충실할 뿐이다. 또 왼손잡이들은 기울기(0 <a <1)가 감소하는 모양의 지수함수를 그려낸다. 한참 동안 지수함수 그래프를 그리며 춤을 추는 고구마 심기에 푹 빠졌다 일어나니 빙글빙글 하늘이 돌며 주변이 하얗게 보였다. 어지러움에 짧은 시간 눈을 감고 비틀거리는 몸으로 중심을 잡고 서 있었다.
고구마는 자라기 위해 어둡고 답답한 땅속을 견뎠을 것이다. 그러다 어느 순간, 그늘진 밭에서 조용히 땅을 밀어내며 존재를 드러낸다. 지수함수처럼 말이다.
수분 보충을 위해 물을 섭취하기로 하고 잠시 장갑을 벗고 펜션 안으로 들어갔다. 간단한 스트레칭을 하며 냉수 한 컵을 들이켰다. 냉수 한 컵의 영향인지 맥박은 안정을 찾았고 어지러움증이 조금 나아지는 거 같았다. 몸이 좀 나아지고 열심히 반복된 동작들을 하고 있는 동료들과 지수함수가 그려지면서 춤을 추듯 심어지는 고구마가 있는 그곳으로 다시 나갔다. 그렇게 다시 한번 반복된 동작을 마음껏 즐긴다. 수도 없이 많은 지수함수가 춤을 추듯 그려진다. 증가함수와 감소 함수가 조화롭게 자리 잡고 기울기가 완만하고 급하게... 춤을 추며 맘껏 그려진다.
지수함수의 기울기를 나름대로 비교하며 심을 때는 심는 손놀림과 힘에 따라 기울기의 범위를 예상했다. 지수함수의 곡선이 시각적으로 가상의 모습으로 고구마가 땅속 깊은 곳으로 들어가며 그대로 그려지자 마치 환상적인 모습을 예상하고 아름다운 곡선을 마주한 듯 흐뭇하다. 그렇게 지수함수의 모양을 그리며 심어지는 고구마는 몇천 주 각각의 소명을 다했다. 이후 땅속으로 들어가 다시 자신을 새로운 가치로 만들어 낼 준비를 한다. 내 눈에는 몇 천주의 꿀고구마와 노랑이 호박 고구마가 땅속에서 지수함수의 형태로 들어가 자리를 잡고 있는 모습이 그대로 그려지며 새삼 그 모습이 대견하고 사랑스럽다.
고구마는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땅속 시간’을 살아온 걸까. 지금도 또 다른 뿌리를 뻗고 있는 중일지도 모른다. 보이지 않는 그곳에서. 고구마가 그렇듯 내 안의 함수도 자라고 있었다.
각자 자리에서 소명을 다한 모두의 눈에 가치를 다한 고구마의 아름다운 그림이 새겨져 있으리라.
며칠 동안 몸의 표식인 근육통과 몸살로 몸이 자유롭지 않을 것이다. 지수함수의 기울기를 하고 땅속으로 들어가 숨어버린 고구마의 아름다운 선율로 한참 동안은 의식이 좀 더 확장된 아름다움으로 버티리라 믿는다. 근육통으로부터 나오는 신음소리와 함께 꿈속 저편 의식에서 묻어 나오는 지수 함수의 모습인 고구마와 밤을 보냈다. 흙속으로 들어갈 때의 아름다운 곡선의 조화로운 움직임이 밤새 나를 거칠게 때로는 부드럽게 다독여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