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다크 서클 목까지 흐르겠어.”
다음날 아침 친구의 다크 서클은 시꺼멓게 더욱 짙어져 있었다. 서울에서 속초까지 장거리 이사를 자기 일처럼 도와준 친구가 정말 고마웠다.
속초관광수산시장에 들러서 백명란과 대파가 잔뜩 어우러진 유명 김밥과 감자전을 먹었다. 벌꿀아이스크림 디저트까지, 너무 한꺼번에 당보충이 되어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친구 가족들한테 생색도 낼 겸 식구들 먹으라고 강정을 몇 박스 사서 친구 손에 들려주었다. 이전에 여행할 때 시장에 들렀을 때와는 마음이 사뭇 달랐다. 언제든지 들릴 수 있다는 마음에서인지, 내 양손은 가벼웠다.
온라인으로 예매부터 하라고 했건만, 굳이 현장 발권을 하겠다는 아날로그 친구를 속초고속버스터미널에 내려주었다. 매진이라 곤란해하던 차에, 운 좋게 좌석 1개가 취소되어 겨우 표를 끊었단다. 버스 탑승시간 선택이란 주어지지 많았다. 다음에 제대로 속초해변을 즐기겠다는 친구를 배웅하고, 나는 속초 주민센터로 향했다.
전입신고 하러 갔더니, 직원이 타 지역에서 속초로 주소 이전을 하는 사람들에게 제공된다는 환영 선물을 주었다. 쓰레기 종량제 봉투 30장, 음식물 쓰레기봉투 30장, 그리고 전입자확인인증 스티커 10장을 건네받았다. 다른 지역 쓰레기 종량제 봉투에 전입자확인인증 스티커를 부착해서 내놓으면 수거해 간다고 했다. 서울에서 사용하던 종량제 봉투들을 속초에서도 요긴하게 사용할 수 있어 좋았다.
혼자서 남은 짐 정리를 좀 더 하다 보니, 어느새 해질 때가 다 되었다. 더 늦기 전에 슬슬 속초 시민으로서 해변산책을 나서볼까?
해 질 녘 어스름할 때, 약간의 낯섦과 호기심을 가지고 지름길로 향했다. 속초해변에 다다르기까지 두리번거리면서, 동네 주민이 알려준 골목길을 조심스럽게 걸어가 보았다.
이른 저녁임에도 상점 간판들의 불 들이 여럿 꺼져 있었다. 가로등도 적어서인지 서울보다 다소 어두웠다. 이 길이 맞나 하는 의문이 들 때쯤, 탁 트인 바다 전경이 나타났다. 어찌나 반가웠던지!
백사장을 거닐며 혼자서 발자국을 남기기도 하고, 파도소리 들으면서 한동안 멍 때리기도 했다. 바닷가 흔들 그네의자에 앉아 밤바다와 사람들을 구경하면서, 바닷바람이 센 줄도 모르고 한껏 바다내음에 심취하였다.
그래 이 맛이지. 힐링이 따로 있나? 이 순간이 너무나 행복하고 감사했다. 늦은 시간이지만, 나를 기다리는 집이 바로 속초해변 근처에 있다는 점이 내게 안정감을 주었다.
그런데 그거 아나? 속초 현지인들은 대부분 백사장이 아니라 해안가를 따라 이어진 데크로만 다닌다는 걸. 돌아가는 길에는 그새 나도 현지인 모드로 전환한 모양이다. 해변의 데크를 따라 거닐며, 내 집까지 경쾌하고 다소 빠르게 걸음을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