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장거리 이사하다 가오나시 되었어!
“너 진짜 아예 속초로 이사한다고?”
“응, 속초 일년살이 제대로 해보려고.”
“그 집 나도 한 번 먼저 가보자!”
“뭐야, 뭐야, 얘가 왜 이래?” 내 오랜 친구가 갑자기 적극적으로 변했다.
바다가 보이는 집 정식 계약서를 작성하기 위해, 친구와 함께 다시 속초에 왔다. 방 3개, 거실 1개, 욕실 1개, 25평형 복도식 아파트, 앞으로 내가 속초에서 살아갈 보금자리다. 얼마냐고? 보증금 2,000만 원에 월세 75만 원. 1년 만기로 계약하였다. 왜 1년이냐고? 혹시라도 너무 좋으면, 눌러앉을까 봐!
그 당시 시세보다 약간 비싼 편이라고 했다. 하지만, 외지에서 이사 오는 내 입장에서는 괜찮은 가격이라고 느껴졌다. 집주인이 붙박이장, 침대, 화장대, 식탁, 소파, TV, 냉장고, 에어컨, 세탁기, 미니건조기 등을 두고 가기로 했기 때문이다.
서울에서부터 챙겨간 줄자까지 들고, 집주인과 함께 안방, 작은방, 거실 등 가로, 세로, 높이까지 꼼꼼히 쟀다. 같이 간 친구는 마치 자기가 살 집인 양 매의 눈으로 살펴봤다. 덕분에, 덜컹대던 욕실 선반장과 두 장 정도 깨진 타일 등 보수를 요청하고 합의했다.
부동산중개사가 소개해준 청소도우미 어르신에게 가전가구들이 있는 상태긴 했지만, 입주청소를 부탁했다. 친구는 문만 열면 파도가 철석이는 마당과 정원 있는 펜션 같은 집을 생각했단다. 그건 너의 로망이지. 난 속초에 와서 마당 쓸고 정원 가꿀 마음 1도 없다.
바다 보이는 집에서 나오자마자, 계약서를 들고 속초 관할 주민센터에 먼저 들렸다. 계약서와 신분증을 들고 확정일자부터 받아 두었다. 주소 이전까지 할지 말지 아직 결정하지 못해서 이기도 했다. 이후에 바로 속초 해변으로 친구와 함께 이동했다.
“오늘이 올해 여행자로서 속초 즐기는 나의 마지막 날이야.” 바닷물에 발도 담그고, 모래사장도 맨발로 거닐었다. 관광객들이 많이 가는 물회 집에 가서 오징어물회도 먹고, 속초관광수산시장에 가서 건어물과 닭강정도 사면서 느낌이 묘했다. 나는 서울에서 반백 년 이상 산 서울 촌년인데......!
서울로 돌아오니 오랜만에 마음이 더욱 바빠졌다. 살고 있는 집을 세를 줘? 아니면 그냥 비워 두고 갈까? 고민을 하다가, 1년간 세를 주기로 결정했다.
서울 집을 비워 두고 가면 속초 집은 세컨드 하우스로 사용하게 될 것 같아서였다. 퇴로를 없애고, 온전한 속초 일 년 살이를 즐기기로 했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이게 이렇게까지 비장함을 갖출 일이야?’
때마침 운 좋게 서울에서 1년만 살겠다는 사람을 구할 수 있었다. 재미 삼아 본 사주타로 집에서 점술사가 올해 나한테 문서운이 많다더니, 사직서를 비롯하여 여기저기 서명해야 할 일이 많긴 많았다. ‘이걸 나름 용하다고 해야 되나?’하고 생각했다.
‘이사는 어떤 방식으로 하지? 장거리 이사는 난생처음인데.’ 노트북을 열고 이삿짐센터를 이곳저곳 검색해 보고 전화 상담도 했다. 이사하기도 전에 벌써부터 살짝 피곤해졌다. 너무 옵션이 다양하고, 업체마다 비용이 제각각 달랐다.
일단 빌트인에서 준 빌트인으로 가는 셈이긴 하지만, 평형이 달라서 고민 끝에 반포장으로 이사하기로 했다. 서울에서 이삿짐 쌀 때 포장이사 형식이고, 속초에서는 짐만 내려두고 가는 방식을 선택했다.
“너 내일 죽냐?”하고 친구로부터 핀잔을 들을 정도로, 그동안 나는 미니멀 라이프에 꽂혀 정리해 두었다. 덕분에 다행히 1톤 남짓할 정도로 짐이 많은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장거리 이동인만큼 무리하게 높이 쌓아 싣고 가다가 도로 위에 민폐를 끼칠까 봐 염려되었다. 그래서 1톤 트럭 2대, 운전 겸 이삿짐 옮길 사람 2명을 90만원에 예약하였다.
약 20여 일 후 아침 6시 반부터 시작한 이사는 오후 2시 반쯤 되어서야 속초 집에 짐을 옮길 수 있었다. 나는 이사를 도와주기로 한 친구랑 오는 도중 휴게소에서 점심까지 챙겨 먹고, 1시 반쯤 속초에 도착했다.
그런데, 어느새 작업하는 사람들이 복도에 짐을 어느 정도 올려 둔 상태였다. 분명히 점심값을 별도로 챙겨줬는데, 밥도 안 먹고 곧장 와서 작업 중이란다. 괜히 돈 주고도 미안해졌다.
주차 딱지가 붙기 전에, 나는 서둘러 계약서를 들고 관리사무소에 갔다. 입주민 카드를 새로 쓰고, 차량에 부착할 주차스티커를 건네받았다. 재활용 쓰레기 수거장과 음식물 쓰레기 버리는 방법 등도 안내받았다.
이삿짐이 다 옮겨진 이후부터는 나와 친구의 작업 시간이었다. 나는 옷과 책들을 정리했고, 친구는 그릇 등 부엌 용품을 정리했다. 둘 다 해야 할 일이 생기면 끝까지 하는 성미를 가진 탓에, 새벽 1시가 넘어서야 얼추 멈췄다.
우리는 다크 서클이 턱밑까지 내려와 가오나시처럼 된 서로의 얼굴을 보며 쓰러졌다. 그러면서 신음하듯 외쳤다. “누군가 말려 줄 사람이 함께 있었어야 했어. “
어쨌든 만만찮던 서울 촌년, 속초시민 되기 프로젝트 대성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