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으로서의 글쓰기
아버지를 기억하며...
어디서 어떤 이야기부터 꺼내야 할지 막막합니다.
제게 남아 있는 아버지의 이미지는 사진 속 환하게 웃고 계시는 모습입니다.
아마 회사를 다니실 때 책상에서 일하는 모습을 누군가 찍어주신 것 같습니다.
저는 그 사진을 볼 때마다 ‘아버지가 참 잘 생겼구나’ 생각합니다.
이 이미지는 제가 사진을 찍는 아버지를 본 게 아니라 사진에 찍힌 아버지의 모습이라는 점에서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이후 획득한 간접적인 기억입니다.
제게는 제 눈으로 보고 뇌로 기억하는 아버지의 모습이 딱 하나 있습니다.
기억 속의 아버지는 병원 침대에 일어나 앉아 베개를 벽에 기대고 저를 바라보시며
산토끼를 부르면서 깡충깡충 춤을 추는 저를 향해 힘없이 웃으십니다.
벌써 50년 전의 기억이네요. 제 나이 만 4살 하고 3개월 정도가 막 넘었을 때였습니다.
아버지의 모습을 애써 떠올려보려 하지만 제 기억 속의 아버지는 이게 전부입니다.
어쩌면 늙어 비루한 노인의 형상보다 중년의 모습으로 잘 생긴 호남이
환하게 웃는 모습으로 남아 있는 아버지가 더 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우리 형제들은 아버지의 사망 소식을 전하는 엄마의 전화를 받고 부리나케 택시를 타고 병원으로 갔다. 병실이 있는 이층으로 계단을 뛰어 올라가자 엄마가 아버지의 침대를 치우지 못하게 복도에 주저앉아 울고 계셨다.
영안실로 침대를 운반하려는 직원들이 움직일 수 없게 침대 다리를 가슴에 꽉 끌어안고서는 '아이들이 올 때까지 조금만 기다려 달라'며 울부짖으시던 엄마의 절규가 아직도 내 기억에 생생하다.
우리 형제들이 마지막 가는 아버지의 얼굴을 보고서야 침대는 영안실로 내려갈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