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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글손 Nov 11. 2023

함께 먹는 밥이 더 맛있다

  원래는 혼밥이 맛없는 이유

함께 먹는 밥이 더 맛있다

가을이 깊어간다. 단풍이 물들고, 지고 나면 겨울이 온다. 찬바람도 봄기운에 밀려나고, 다시 작열하는 태양의 여름이 온다. 그리고 다시 산도 들도, 바다도 풍성한 수확이 기다리는 가을을 맞이한다. 당연한 이치라 하지만, 늦은 더위 탓인지 이번 가을은 단풍이 늦다고 한다. 인간 중심으로 돌아가는 세상이라 그런지 자연이, 이 지구가 가지는 권리는 잊고 살아가는 듯하다. 나도 그렇다. 물론 자연의 권리를 존중하는 이들도 많으니, 그나마 이렇게 지구별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한다. 자연의 권리를 존중하시는 분들을 만나면 늘 존경스럽고 고맙다. 당연한 일을 당연하게 생각하기 쉽지만, 당연한 행동은 생각처럼 쉽지 않다.


  하는 일이 그래서 그런지 혼자 다니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다들 그런가 싶기도 하지만, 혼자서 다니고, 혼자서 밥을 먹는 일이 여전히 마음 편하지는 않다. 점심때가 되면 북적대는 식당 문을 열고 들어가는 것이 쉽지 않다. 바쁜 때에 혼자 식탁을 차지하고, 느긋하게 밥을 먹을 때면 주인장에게 왠지 미안함이 먼저 든다. 때론 자리가 없어 기다리는 손님들을 보면서 눈치 아닌 눈치도 보게 된다. 후다닥 먹고 나오는 게 맘이 편하기도 하다. 그렇지 않으면 점심시간보다 조금 일찍 들어가거나, 점심시간이 거의 끝날 때를 맞춰 가기도 한다. 손님이 많이 찾은 가게는 반찬도 바닥을 보이게 마련이다. 마음 편하게 한 끼 때울 요량으로 손님이 드문 한산한 식당은 맛이 별로인 경우도 있다. 혼자 먹는 밥은 이래저래 맛이 덜하다.


  매번 혼자 밥을 먹는 건 아니다. 동행과 함께하는 따뜻한 한 끼는 매력이 차고 넘친다. 여유를 가지고, 지역에서 나름 괜찮다는 식당을 찾아 느긋하게 주문한다. 음식이 나오는 동안,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이 가게의 주인이 어떤 사람인지, 장사는 이런 식으로 해야 된다는 둥, 주문한 음식 재료에 대해 나름의 정보를 자랑하기도 하면서 수다가 이어진다. 식재료가 어우러져 하나의 요리가 되는 과정은 자연의 풍성함과 수많은 이들의 노력에서 비롯된다는 말도 잊지 않는다. 우리 사는 이야기로 식탁은 이미 풍성해진다. 음식이 나오면 인증 사진을 찍어 세상에 자랑도 한다. 음식이 맛나다면서 서로 권하기도 하면서, 한 그릇 여유 있게 뚝딱 비운다. 맛있게 먹은 후, 다음에 가족들과도 한번 오겠다는 말도 잊지 않는다. 한 끼의 식사가 이토록 맛있는 이유이다. 관계의 힘. 함께 사는 세상이라 더 그런지도 모르겠다.


  ‘혼밥’이란 말이 어느새 자연스러운 단어가 되었다. 복잡다단해지는 세상에서 우리는 ‘함께’보다는 ‘혼자’에 익숙해지고 있다. “전화가 편하세요? 문자가 편하세요?” 소통보다는 통보에 가까워지는 일상의 언어. 주고받는 교환 관계는 일방적인 전달 관계로 변했다. 단체 채팅, 비대면 결재, 새벽 문앞 배송 등 우리는 관계를 맺지 않아도 아무런 지장이 없는 세상에 살고 있다. 지금이 이런데 앞으로는 더욱 ‘혼자’의 문화가 성장할 것이다. 어쩌면 자연스러운 현상이라 하겠다. 세상이 그렇게 변하니 나도 그렇게 변해야 하는가 싶다. 이렇게 우리는 ‘함께’의 마음을 잃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삶에 편리함을 더하는 기술이 우리 삶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는 철저한 개인주의의 가속화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혼자’보다는 ‘함께’가 더 즐겁고 행복하다는 사실을 잊지 않고 있다. 나, 너, 우리로 돌아와야 한다. 다시 걸음마를 시작하자. 지금이 아니라 앞으로의 우리를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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