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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그미 Nov 25. 2020

평안을 구하신다면...

양양 선림원지

폐사지 탐방 두 번째는 21주년 결혼기념일에 찾은 양양 선림원지다. 주말이면 어딘가로 놀러가기 위해 알람을 6시에 맞추고 자는 남편이 그보다 더 이른 새벽 시간에 일어났길래 가볍게 굿모닝 키스를 해주면서 결혼 21주년을 축하했다.

"나 만나서 참 잘 했지? 21주년 축하해!!! 빠라바라바라 밤~"

"그래서 오늘은 어디 갈 건데?"

"특별히 21주년이니까~~"

"특별한 날이니까 어디 가지 말자고?"

"아니, 특별한 날이니까 좀 기억에 남을만한 곳을 가야지. 지난 번에 가려다 만 양양 어때?"

"콜!"

그래서 11월 첫 토요일 아침 일찍 양양 선림원지를 향해 출발했다.

양양 선림원지는 강원도 양양군 서면 미천골길 115(자료에 따라 황이리, 서림리, 미천리 등 지번으로 하면 너무 다르게 나와서 새로 나온 도로명으로 쓴다)에 있는 선림원의 사찰터로 강원도 기념물 제53호이다. 1948년 10월에 정원(貞元) 20년(804) 명(銘)이 있는 신라 범종이 출토된 것으로 유명하다. 미천자연휴양림 안에 있어서 입장시 발열체크와 기록을 해야 한다. 원래는 입장료도 성인 기준 천 원씩 받는데, 코로나 기간이라 그런지 따로 입장료를 받지는 않았다. 주차는 매표소 바로 앞에 있는 주차장을 이용하면 된다.

설악산의 한 자락인 미천골 자연휴양림 안으로 850m쯤 올라가면 나오는 선림원지는 창건 당시 당대 최고의 선수련원으로 알려지며 당시 대규모의 절로 자리잡고 있었으나 900년 즈음에 대홍수와 산사태로 매몰된 뒤 폐사지가 되어 석축 위에 펼쳐진 약3,000평의 절터에는 보물로 지정된 삼층 석탑, 석등, 탑비, 승탑 4점만이 절터와 함께 남아있다.
미천골이란 말의 유래도 이곳에 있었던 사찰이 번성할 당시 한끼 쌀 씻은 물이 계곡을 따라 하류까지 이르러 미천골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동국대학교 발굴조사단이 1985년 7월부터 1986년 8월에 걸쳐 이 사찰을 발굴한 결과 출토된 여러 유물로 해인사를 창건한 순응법사(順應法師)가 남북국시대 때인 804년 경 창건하였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 사찰이 획기적인 변모를 겪게 된 것은 9세기 중엽에서 후반으로 추정된다. 홍각선사(弘覺禪師)가 이곳에 입산하여 안주하면서 외형적으로 대대적인 중창불사를 하게 되고, 내면적으로는 화엄종이 아닌 선종으로 전향하게 된 것으로 보여진다.

그러나 이 사찰은 중창 후 얼마 되지 않아서 태풍과 대홍수로 산이 무너져내려 금당·조사당 등 중요건물들을 덮어버렸기 때문에 폐사된 뒤 다시는 복원되지 않아서 발굴 때 9~10세기 무렵의 각종 기와들이 대량으로 고스란히 출토되었다.

이 사찰의 가람배치는 3층석탑 뒤에 정면 3칸, 측면 4칸의 맞배지붕 금당건물이 배치되었는데 주춧돌이 완전하게 남아 있으며, 오른쪽에 금당과 잇대어 또 하나의 건물지가 있다. 서편 언덕 위에는 석등이 놓여 있고 석등 북쪽으로 정면 3칸, 측면 2칸의 건물지가 발굴되었고, 이 옆에 홍각선사탑비가 남아 있어서 조사당으로 추정된다. 넓은 절터에는 승방 등 많은 건물지들이 확인된다. 선림원에는 보물로 지정된 선림원지 삼층석탑(禪林院址三層石塔, 보물 제444호)·선림원지 석등(禪林院址石燈, 보물 제445호)·선림원지 부도(禪林院址浮屠, 보물 제447호)·선림원지 홍각선사탑비(弘覺禪師塔碑, 보물 제446호)가 남아서 옛날의 영화를 엿보게 한다.

휴양림을 찾는 이들이 간간히 보였지만 우리처럼 이곳을 따로 찾는 이는 많지 않은 듯 머무는 동안 마주친 건 산비둘기와 까치들 뿐이었다. 유난히 바람이 많이 불어서 싯퍼런 하늘 아래 바람을 타고 넘나드는 가랑잎들만이 우리와 놀아주는 곳.
그래도 따스한 햇살이 고적한 선림원지를 가득 메워 왠지 외롭지 않은 곳.

선림원지를 둘러싼 산들이 무척 높아, 산사태가 나서 절을 덮쳤다는 기록을 보며 그럴 만도 했겠다 싶었다. 그래서 아마 산사태가 또 일어날까봐 더이상 재건하지 않았겠지. 11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폐사지로 남아있는 이유가 짐작된다. 아마 그동안 이곳은 산속 동물들의 놀이터나 모임장소로 쓰이지 않았을까?

우리가 머문 동안 토끼, 고라니, 오소리, 멧돼지, 다람쥐, 청설모, 노루, 사슴 이런 동물들이 선림원지 뒤 산속 나무 뒤에 숨어서 저 인간들 언제 가나~ 하고 호시탐탐 때를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한 무리의 등산객들이 올라오다가 선림원지 푯말과 우리가 있는 걸 보고 "어, 저기 뭐가 있나봐? 가보자!" 하며 낮은 언덕길을 올라오는 것을 보고는 내려왔다.


거세게 불던 바람은 잠잠해지고, 하늘은 더욱 파랗게 높아졌다. 선림원지를 떠나온 지 한참이 되었는데도 햇빛 아래 고적하게, 그러나 쓸쓸하지 않게 가을을 즐기던 그곳의 고요가 선명하다.


마음 먹고 찾아가야 하는 곳이지만, 찾는 이에게 깊은 평안을 주는 양양 선림원지가 그 모습 그대로 그 자리를 지키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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