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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그미 Dec 10. 2020

폐사지에서 2

양양 선림원지

바람이 분다


휘잉 감아도는
회오리바람에
갈잎이 날아오른다


연두잎 뾰족뾰족
물 올라오는 봄
푸르름으로 무성한
여름을 지나
노랑 주황 빨강으로
곱게 단장한
가을을 보내고
이제 바스락거리는 갈색
외투를 입고 떠날 시간


잘 있거라
팔부중상 아래 이끼꽃 가득한 삼층탑아
잘 있거라
몽땅 깨졌다가 겨우 하부만 추스린 승탑아
잘 있거라
절터 한가운데서 환한 등불 밝히고픈 석등아
잘 있거라
새로 만든 탑신을 등에 업고 으르렁대는 용머리 탑비야


거센 태풍과 대홍수로
와르르 산이 무너지며
선림원을 덮친 뒤로


지어진 지 백 년도
채우지 못한 이곳은
빈 절터가 되었어도
천 년 넘게 이곳을 지켜온
너희들


가끔 산 속 동물들이
쪼르르 콩콩 찾아와 놀면
넉넉한 미소로 반기던
조용하고 의젓한 너희를
뒤돌아 뒤돌아 보며 떠난다


오소소 떨리는
겨울추위가 지나가면
연두옷 상큼하게 갈아입고
다시 오리


그 날을 손꼽으며
하늘 높이 날아 올랐다가
구비구비 돌계단을 내려가
미천골 계곡물 따라 흐른다


잘 있거라
부디
평안하거라.


* 팔부중상 : 불교의 여덟 수호신인 천·용·야차·건달바·아수라·가루라·긴나라·마후라가를 도상화한 상(像). 팔부신장상


* 선림원지에 대한 자세한 글은

https://brunch.co.kr/@malgmi73/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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