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월대보름을 소재로 작년에도 두 편이나 고부만사성을 썼지만 그래도 여전히 다루지 않은 세시풍속이 있었다. 오늘은 그 이야길 해보려 한다. 올해는 설이 늦다보니, 대보름도 2월을 이틀 남겨둔 2월 26일에서야 들었다. 그 전날 어머님께선 온종일 나물 만들고 찰밥하시느라 바쁘셨다. 하필 일이 많은 날에 보름(대보름 전날을 흔히 보름이라고 부른다)이 걸려서 나는 일하느라 바쁘고, 어머님은 음식하시느라 점심 무렵부터 오후 늦게까지 주방을 떠나지 못하셨다. 그렇게 해서 한상 잘 차려진 보름밥상을 대보름날 아침에 먹을 수 있었다. 이빨 건강하라고 땅콩으로 부럼도 하고, 막걸리 한 사발에 귀밝이술도 쭈욱 들이키고~. 원래 귀밝이술에는 무를 한 입 베어먹는단다. 귀밝이술 한 잔에 무 한 조각. 일년 내내 무사태평하라고 무를 먹는다. 정월대보름은 농사철이 다가오기 전, 겨울의 마지막 명절이라서 뽀지게 먹고 신나게 놀고서 부지런히 농사를 준비하자는 뜻이 담겼다고 한다. 사람들은 이렇게 거하게 잘 먹는 날인데 반해 개들은 쫄쫄 굶는 날이기도 하다. 한해 농사의 풍흉을 달의 크기로 점치는데, 개가 달을 먹는다는 속설도 있고 보름날 개에게 먹이를 주면 개에게 파리가 꼬이고 개가 파리해진다고 믿어 개를 굶기는 풍습이 있었다. '개 보름 쇠듯'이란 속담이 나온 배경이다. 시골에서는 대보름날 아침, 집에 밥이 있어도 다른 집으로 밥을 얻으러 다니는데 이것을 '약밥'이라고 부른다. 흔히들 생각하는 대추로 붉은 색을 낸 '약식'이 아니다. 약밥 얻으러 온 사람이 얼래미나 소쿠리를 집앞에다 휙 던져놓으면 "저 자식들 밥 얻으러 왔구나~" 하고 할머니가 창호지문 유리창 구멍으로 쳐다보면서 말씀하시곤 했다. 그럼 던져놓은 소쿠리를 가져다가 나물이랑 밥을 담아서 설밖에다 내놓으면 소쿠리 임자가 찾아간단다. 그렇게 얻은 밥은 꼭 칫간(변소, 푸세식화장실) 바닥에 앉아서 먹어야 약이 된단다. 그래서 그 냄새나고 더러운 칫간 한구석에 앉아서 꾹 참고 얻어온 밥들을 먹었다는데... 어트께 그게 목구멍으로 넘어갔을까 싶다. 약밥은 부자들도 아무 집이나 남의 집 가서 얻어다 그렇게 칫간에 앉아 먹었다고 한다. 보름날 밤에는 뭐니뭐니해도 불놀이를 빼놓을 수 없다. 논두렁이 시뻘개지도록 여기저기 불을 놓으며 신나게 불장난하다보면 논두렁도 태우고 옷도 태우고~. 그 시절엔 깡통도 흔하지 않아서 깡통에 불씨를 담아서 빙빙 돌리는 애들은 그리 많지 않았고, 대부분 갈퀴나무를 주머니처럼 모아서 그 안에 불씨를 담아서 돌렸다고 한다. 나무주머니를 돌리면서 가면 불이 활활 타오르게 되는데 그것을 논두렁밭두렁에다 놓곤 했다. 따지고보면 이 불놀이는 해충 잡는 일이라 어른들도 뭐라고 하시지 않았다. 오히려 보름 저녁에도 어머님이 불놀이하러 안 나가고 있으면 "불지르러 안 가냐?"하고 할머니께서 소리를 지르시곤 했단다. "나하고 독천이모만 그런 데 놀러다니는 걸 좋아했니라. 다른 형제들은 공부나 하고 책이나 읽고, 집안에서 꼬물꼬물하고 있는 걸 더 좋아했재. 영광이모는 어릴 때도 그러더니 지금도 그라더라. 전봇대 하나만큼 걸어가는 것도 한참 걸린다니 뭘 하겄냐. 하루는 운동하러 나갔다가 전화를 받았더니 "언니, 지금 걸어감시롱 전화받는당가?" "잉~ 걸음시로 받고 있다~" "아이구, 그람 숨 안 찬당가? 난 숨이 차서 걸음시롱은 전화 못하는디." "뭐 씨게 걷냐? 살살 걷재?" 했당께~" 나무해오는 것도 나나 했재, 다른 형제들은 거의 안 했어야. 그랑께 내가 나무해오면 할머니가 엄청 좋아함시롱 "나무꾼 왔다. 얼렁 밥 차려라~" 하시며 웃으셨재. 나 아니믄 나무해올 인간들이 없응께. " 이렇게 한참 곁다리로 이야기가 새어나갔다가 다시 쥐불놀이 이야기로 턴! "저 년 또 옷 태웠다!" 소리 들으면서도 신나서 멈출 수 없던 정월대보름불놀이를 어머님은 스무살 한참 넘어서까지 매년 했다고 하셨다. "윗동네 아랫동네 처녀 총각 다 모여 있어도 달밤에 누가 누군줄도 모른 채 이리저리 우~~~ 하니 몰려다니며 불을 놓고 다녔는디, 그라고 다니다보믄 옆사람한테서 끄스름냄새가 났어야. 그래도 재미가 오지니께 밤새 그라고 댕겼재." 불을 놓으러 다니던 들판은 집앞 큰 개울 너머에 있었는데 지금은 그 큰 냇갈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고 한다. "여름에 비 많이 오면 그 개울이 엄청 뿔거덩. 그람 물에 옷 입은 채로 들어가서 둥둥 떠내려가. 저어~~~기 아랫동네 대밭 있는 데까지 둥~둥~ 내려갔다가, 대밭에 도착하면 다시 올라와서 또 첨벙 뛰어들어 둥둥 떠내려가고 하면서 놀았재. 오뉴월엔 멱 감는다고 하루종일 입술이 시퍼래지도록 놀다가 아부지한테 짝대기로 맞기도 했어야. ㅎㅎㅎ 그 개울이 엄청나게 컸는디 그 물이 다 어디로 가부렀을끄나~" 어머님께서 고향동네 이야길 하시다 끝자락에 가면 늘 궁금해하시는 부분이다. 지금은 그 크던 개울도 사라지고, "불놀이 안 가냐?" 고 묻던 할머니도 돌아가시고, 대나무와 옥수숫대 들깻대로 가랫불을 만들어주시던 아버지도 돌아가신 채 그분들보다 더 나이드신 어머님이 며느리에게 옛날 이야길 들려주신다. 어머님의 추억 속에 여전한 풍경으로 남아있을 월출산 무위사 아래 마을에선 고향집 앞의 오래된 팽나무와 마을회관 앞의 250년 된 서어나무만이 세월의 흐름을 고스란히 안은 채 쥐불놀이도, 약밥도 사라진 들판을 내려다보고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