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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그미 Jul 16. 2021

말귀 아래 쌓아올린 돌탑

마이산 탑사 2

* 2020년 2월 15일에 다녀서 쓴 글입니다.

전북 진안의 마이산은 우리나라 명산 중 가장 기가 센 산 가운데 하나로 이성계가 조선을 세우기 앞서 이 산에 내려와 100일 기도를 드린 뒤 속금산이라고 칭했다가, 산의 두 봉우리 모양이 말의 귀를 닮았다고 하여 그의 아들인 태종이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신라시대부터 나라에 제향을 올리는 명산으로 신라 때는 서다산(西多山), 고려시대에는 용출산(龍出山)이라 불렸고, 조선시대부터 마이산이라 불리기 시작하였다.


시대별로만 이름이 달라진 것이 아니다. 마이산은 금강산처럼 계절에 따라 불리는 이름이 다르기도 하다. 봄에는 안개 속에 우뚝 솟은 두 봉우리가 쌍돛배 같다 하여 돛대봉, 여름에는 수목 사이에서 드러난 봉우리가 용의 뿔처럼 보인다 하여 용각봉, 가을에는 단풍 든 모습이 말 귀처럼 보인다 해서 마이봉, 겨울에는 눈이 쌓이지 않아 먹물을 찍은 붓끝처럼 보인다 해서 문필봉이라 부르기도 한다니 계절마다 보는 맛이 다른 산이라고 할 수 있겠다. 경관의 가치를 인정받아 미슐랭 그린가이드북에서 만점을 받은 명소이자, 미국 CNN에서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아름다운 산으로 지정한 이유가 짐작이 간다.


마이산은 진안읍에서 남쪽 약 3㎞ 지점에 있는데, 소백산맥과 노령산맥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두 암봉이 특징이다. 각각 동봉(수마이산)과 서봉(암마이산)이라고 부르며 높이는 서봉 687.3m, 동봉 678m이다. 조금 펑퍼짐한 모양이 암봉, 다소 뾰족한 모양이 수봉이라고 보는 게 구별이 더 빠르다. 두 개의 봉우리가 마치 부부처럼 서있는 모습이 음양오행 사상으로 풀이되기도 하고, 풍수설화에 오르기도 한다. 동봉과 서봉 사이에 448개의 층계가 있다.(이거 오르면 땀 좀 뺀다. 아이들과 하나 둘 세면서 나무 계단을 오르던 기억이 난다. 이번엔 오르지 않고 보기만 했다. 하늘에서 조금씩 비가 내리기 시작해서 더 지체할 수가 없었다)


동봉 중턱의 화암굴에서는 약수가 솟는다고 하는데, 동봉은 입산 금지라 가볼 수 없고, 약수는 탑사와 금당사에도 나오는 곳이 있다. 그런데 알칼리와 미네랄이 풍부하고 갑상선호르몬 단백질 합성에 필요한 '옥소'라는 물질이 전국 최고수치라는 탑사 약수는 왠일인지 나오지 않아서 금당사 미륵존불 옆에 있는 약수터에서 약수를 받아 마셨다. 김천 청암사의 달디단 약수맛에 비할 바는 아니었지만 몸에 좋다니 왠지 건강해진 기분이었다.^^

남쪽 비탈면인 탑사의 용궁이란 곳에서 섬진강 수계가 시작되고, 북쪽 비탈면에서는 금강 수계가 발원한다고 한다.


마이산의 지질은 약 1억년 전 백악기에 자갈과 모래 진흙이 쌓여 만들어진 역암(礫岩)이다.

암마이봉 남쪽에는 타포니라 불리는 거대한 구멍이 벌집처럼 나있는 모습을 관찰할 수 있다. 봉우리 여기저기에 거대하게 뚫린 구멍이 어떻게 생겼나 했더니, '풍화혈'이라 불리는 타포니는 기계적 풍화작용에 의해 생기는 현상으로 물과 바람에 의해 깎여나가는데, 특히 겨울철 암석 속에 스며든 물이 동결과 융해를 반복하면서 자갈 성분의 암석이 수직 암벽에서 떨어져 나가 크고 작은 구멍들이 생겨난다고 한다. 마이산의 타포니와 같이 거대한 규모는 세계적으로 드물단다.


산 전체가 거대한 바위이기 때문에 나무는 그리 많지 않으나 군데군데 관목과 침엽수·활엽수가 자란다. 가장 인상적인 나무는 탑사의 영신각과 미륵불 석조상 사이의 암벽을 타고오르는 능소화나무였다. 무려 45년이상 된 고목인데, 덩굴나무라 암마이봉 절벽을 타고 오르는 줄기의 모습이 경이로웠다. 여름에 능소화가 피면 얼마나 신비하고 아름다울까 싶어 검색해보니 역시나 멋졌다. (탑사 능소화는 아래 글 참고하세요~)

https://brunch.co.kr/@malgmi73/194


진안은 지대가 높아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늦게 벚꽃이 피는 편이라고 한다. 4월에는 3㎞에 걸쳐 벚꽃이 만발해 진안군에서 주최하는 벚꽃축제가 열린다고 하니 봄에 벚꽃 필 무렵에 맞춰 와도 좋음직하다.

마이산에는 줄사철나무군락이 있는데 천연기념물 380호이며, 은수사 앞의 청배나무는 수령 650년 이상된 나무로 천연기념물 386호인데, 이성계가 마이산을 찾았을 때 심은 배씨앗이 자라난 것이라고 한다. 마이산에서만 관찰되는 역고드름 현상이 이 배나무 아래에서도 종종 관찰된다. 이 배나무에서 딴 청배로 만든 제품들을 은수사 앞 매점에서 팔고 있다.

역고드름

남쪽 주차장에서 올라가며 처음 만나는 금당사에는 조선 숙종때인 1692년 만들어진 괘불탱화(보물 1266호)와 목불좌상(전북유형문화재 18), 5층으로 보이지만 다른 석탑의 부재를 모아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석탑(전북문화재자료 122)이 있다.



마이산은 1979년 10월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고, 1983년 8월 24일 전북기념물 제66호로 지정되었다가 2003년 10월 31일 명승 제12호로 변경되었다. 명승으로 지정되면 뭐가 다를까 하고 찾아보니...

명승은 문화재보호법에 따라 예술적인 면이나 관상적인 면에서 기념물이 될 만한 국가 지정문화재를 이르는 말인데, 일단 명승지로 지정이 되면 그 구역 내에서는 현상 변경은 물론 동식물 ·광물까지도 법률로 보호한다고 한다.


탑사는 전북 진안군 마령면 동촌리, 마이산의 남쪽 사면인 암마이봉 아래에 있다. 마이산의 남부주차장에서 약 1.9km정도 떨어져 있다. 바로 이 길에서 봄에 벚꽃축제가 열린다.


탑사는 이갑용 처사가 쌓은 80여 개의 돌탑으로 유명한데, 원래는 120여기가 있었다고 한다. 이갑용 처사는 1860년 전북 임실에서 태어나신 분으로 어릴 때부터 효성이 지극하던 차에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 3년간 시묘살이를 마친  인생의 허무무상함을 통탄하며 전국 명산을 돌아다니다가 25세 때 마이산에 들어오셨단다. 솔잎으로 생식을 하고, 수도를 하던 중 신의 계시를 받아 1800년대 후반 만불탑을 만들기 시작해 30여년에 걸쳐 혼자서 완성했는데, 전국의 돌들을 가져다 쌓으시느라 축지법을 활용하셨다는 설이 있다. 이갑용 처사는 낮에 돌을 모으고 밤에 탑을 쌓았다고 한다.


돌탑들의 형태는 일자형과 원뿔형이 대부분이고 크기는 다양하다. 대웅전 뒤의 천지탑 한 쌍이 가장 큰데, 어른 키의 약 3배 정도 높이이다.


주탑인 천지탑은 부부탑으로 2기로 되어 있으며 높이는 13.5m이고 남.북으로 축조되어 있다. 주탑인 천지탑을 정점으로 조화의 극치를 이루며 줄줄이 세워져 있고 팔진법의 배열에 의하여 쌓았다고 전해진다. 맨 앞 양쪽에 있는 탑을 일광탑.월광탑이라 하며 마이산 탑군은 태풍에 흔들리기는 하나 무너지지 않는 신비를 간직하고 있으며 탑들을 보면 양쪽으로 약간 기울게 쌓여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이갑용처사가 바람의 방향 등을 고려하여 축조한 것으로 보인다. 어떻게 이런 높은 탑을 쌓아 올렸는지는 아직도 정확히 밝혀지지 않아 사람들의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갑용처사는 120여기의 돌탑들을 조성하신 뒤 1957년 98세를 일기로 돌아가셨다. 이 탑들은 이제 100년이 넘었는데, 아직도 아무리 거센 강풍이 불어도 절대 무너지지 않는다고 하니, 그저 신기할 뿐이다. 그런데 구경온 사람들이 돌탑 여기저기에 작은 돌을 끼워넣는 바람에 오히려 탑이 훼손되는 경우가 많아서 탑사 곳곳엔 제발 돌을 올리지 말아달라는 간절한 호소문이 붙어 있다.


코로나19 여파가 좀 잠잠해지면서 미세먼지 상당히 나쁨에 날씨까지 흐림에도 불구하고 탑사를 찾는 가족단위 관광객들이 많았다. 탑사 입구에선 등갈비를 숯불에 굽는 냄새가 지나가는 손님들 코를 잡아 이끌고, 생활의 달인에 나온 대왕찰꽈배기와 바로 튀겨낸 강정 한과 뻥튀기 같은 먹거리들이 발길을 멈추게 한다.



우린 타포니 현상을 이용해 조선 숙종 때 암벽 사이에 만들어진 수선루에 들른 뒤 진안터미널옆에 있다는 제일순대국에서 식사를 할 계획이어서 등갈비는 건너뛰고 꽈배기와 강정, 뻥튀기만 간식과 가족선물용으로 샀다.

한두 방울 내리던 비가 수선루에 오를 무렵엔 제법 투둑투둑 쏟아져서 수선루 앞에 우거진 대나무와 전나무 숲에 떨어지는 겨울비 소리를 한동안 듣다가 왔다. 한겨울에도 이 정도 운치라면 다른 계절엔 더 멋드러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을 알려주신 진안이 고향이신 페친분은 어릴 때 이곳이 어떤 곳인지 모르고 막 뛰어놀았다고 하신다. 그때만 해도 제대로 관리되지 않아 지저분했는데, 이제 도지정 문화재가 되어 잘 관리되어 있는 모습이 좋다고 하셨다. 곳곳에 소화기도 설치되어있고, 빗자루로 깨끗이 쓸어두고, 실내화도 새로 여러 켤레 마련되어 있었다. 다만 문짝의 창호지가 뜯어져있어 보기에 안 좋았는데, 이것만 좀 신경써주면 좋을 것 같다.

수선루 앞에는 유학자 송보산을 제향하는 구산사와 구산서원이 깔끔하게 정비된 채로 문이 열려있어서 구경해볼 수 있다.

마이산 여정에서 마지막으로 들른 곳은 식당이다.

진안터미널 옆의 제일순대는 순대속을 돼지피로만 만든 피순대인데, 국물맛은 진하고 개운해서 좋았지만 건더기는 많이 아쉬운 점이 있었다. 순대는 딱 두 개, 나머지는 내장들인데 간혹 누린내가 났다. 특히나 반찬으로 나온 김치와 석박지 맛이 좀 시었다. 쌈장에 찍어먹는 양파와 새우젓은 싱싱하니 맛있었지만.


진안 가면 꼭 이곳을 찾는다는 분들이 많은 걸로 봐선 분명 맛집인 거는 맞는데, 피순대를 처음 접해봐서 호불호가 갈린 것인지도 모르겠다. 가게안에 손 씻는 세면대가 갖춰져있고, 식당 내부는 깔끔하며, 직원들은 친절하시고, 가격도 크게 부담되지 않는다. 순대국은 6천원.


* 2021년 7월에 다녀온 마이산 탑사 이야기가 3편에 이어집니다.

천지탑
은수사 가는 길
이성계가 심은 청배나무가 있는 탑사 뒤의 은수사
탑사 입구의 금당사와 괘불탱화
수선루에서 바라본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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