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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월 텃밭일기 3

by 말그미

아직 여름이지만 입추도 지났고

오늘 말복도 지나면 더위가 한풀 꺾일 거라

어제 상추대 뽑아서 정리한 밭에

다시 상추씨랑 시금치씨를 뿌렸다.

몇 년 전 엄마가 주신 씨앗을

올해 아주 요긴하게 잘 쓰고 있다.

상추씨앗과 시금치씨

8월 들어서 해 뜨는 시각이 5:44 으로 좀 늦춰져서 텃밭에 가는 시간도 함께 늦춰졌다. 해도 안 뜬 시각에 가면 어둑어둑해서 작물이 잘 안 보이고, 모기도 많으니까.


오늘은 5시 반에 씨앗 챙겨서 해 뜰 무렵에 밭 도착.

그 사이에 하늘에 뜬 구름의 변화가 드라마틱했다. 먹빛이던 구름이 어느순간 하애지다가 분홍빛으로 물들며 멋진 아침하늘을 선물했다. 그리고 텃밭에 물 주고나서 다시 하늘을 쳐다보니 어느새 무지개까지 반짝 떠있지 않은가!

씨앗을 심을 땅엔 미리 물을 줘야 촉촉해져서 호미질하기도 쉽고, 씨앗을 심었을 때 더 발아율이 좋다. 그래서 어제 덮어둔 풀을 걷은 뒤 물부터 뿌리고, 하늘 한 번 쳐다보고 주변도 돌아보며 물이 땅 속에 스며들기를 기다렸다가, 호미로 골을 파고 그 속에 상추씨앗과 시금치씨를 심었다. 씨앗과 씨의 차이는 뭐냐고? 사실 별 차이는 없다.

국어사전상으로 씨앗은 곡식이나 채소 따위의 씨. 이고, 씨는 식물의 열매 속에 있는, 장차 싹이 터서 새로운 개체가 될 단단한 물질.이라고 정의된다. 내 느낌적 느낌으론 씨앗은 뭔가 질감이 오돌토돌 느껴지는 것이고, 씨는 존재감이 크게 느껴지지 않는 자잘한 걸 부르는 이름이다. 까마중도 씨가 있는데, 열매 안에 보면 토마토처럼 그렇게 존재감 없는 씨가 잘게 들어있다.

암튼 상추랑 시금치를 심고, 다시 물조리개로 물을 준 뒤 까마중이 많이 익었길래 까마중을 따러 가니 역시나 비둘기가 와서 먼저 따먹고 있다.


"안녕~ 비둘기! 간만이야~ 잘 있었어?^^"


나 혼자 반가운 인사를 하는 동안 비둘기는 열심히 까마중을 따먹고는 옆밭으로 오종종 걸어가더니 푸드덕거리며 날아가버린다.

까마중 줄기를 이리저리 젖혀보니, 눈에 잘 안 띄는 곳에 까마중이 아주아주 엄청 달려있었다. 이렇게 숨어서 익어가고 있었는데 몰랐구나~

허리가 아플 때까지 따니 제법 많은 양이다.


아침 준비할 시간이 다가와서 부랴부랴 짐 챙겨서 집으로 가다보니 이웃밭에 아는 분이 계셔서 큰소리로 인사를 드렸다. 이 분은 구청에서 운영하는 텃밭이 아닌 개인 사유지를 빌려서 밭을 일구시는데, 참 다양한 품목들을 가꾸신다. 밭으로 올라와서 이거 좀 가져가라고 하시길래, 지난 번에 주신 호박이 아직도 있으니 괜찮다고 했는데도 가져가는 게 자기 돕는 거라고 제발 가져가라신다. 그렇다면 뭐~ 도와드려야지요^^

그래서 얻어온 수확물이 장난 아니었다. 밭에 거둬두신 채소들과 가지도 더 따서 다 가져가라고 하시는 걸 그나마 덩치 큰 수박이랑 호박은 두고, 가지는 두 개만 따왔는데도 어찌나 많던지 비닐봉지 끈이 떨어질 정도였다. 끙끙 들고 오는 길에 마침 단골 세탁소 앞을 지나가게 되서 그 앞 있는 나무의자에 호박이랑 참외를 덜어 두고, 아랫집에도 수박, 참외랑 우리집 밭에서 수확한 고구마줄기를 한아름 갖다드렸다.

매번 힘들게 농사 지으신 것들을 아낌없이 주시는 고마운 텃밭이웃에게 난 뭐 드릴 게 없나 살피다 예전에 선물받은 스타벅스 디저트랑 커피 쿠폰을 드렸다. 유효기간 넉넉하니, 그 사이에 쓰실 수 있도록.


맨날 얻어먹기만 하다 이렇게 드릴 게 생겨서 참 다행이었다. 오고가는 정 속에 꽃피는 이웃사랑~

텃밭의 좋은 점은 참 많지만 이런 게 또 사람 사는 맛이 아닐까 한다.^^


* 텃밭 오고가며 올려다본 오늘 아침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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