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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그미 Nov 19. 2021

내 마음 속 다락방

차곡차곡 추억을 담은 집 2

작년 이맘때 썼던 글 [차곡차곡 추억을 담은 집]을 읽다가, 기와집이었던 시절 안방에 달린 다락방이 하나 더 있어서 그 다락방에 대한 글을 2편으로 쓰려다 만 게 떠올랐다.

작년에 글이 너무 길어져서 그 다락방 이야기는 썼다가 지웠는데 나중에 할 기회가 오겠지~ 하구선 1년이 넘은 것이다. 미루다 세월 다 간다더니~ 음냐.

50년 넘게 한 자리에 붙박이로 있으면서 초가집에서 기와집, 기와집에서 오늘날의 양옥집으로 외피가 변한 고향집이 30여년간 가장 긴 외피를 유지했던 기와집 시절, 내부만 몇 번의 리모델링을 거쳤던 기와집의 역사에서 첫 번째 기와집에는 부엌쪽으로 난 다락방 하나가 있었다.

벽 중간에 문 하나 있는 게 전부였던 그 다락방은 네모 반듯하지 않고 세모꼴이었다. 그곳엔 주로 이불과 베개를 넣어두곤 해서 장롱역할을 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어린 시절 그곳은 우리가 숨바꼭질할 때 자주 숨던 장소 가운데 하나였다. 계단이 없으니 벽을 타고 올라가 들어가서 문을 닫고 있으면, 그 작은 곳에 누가 숨었을까 싶어서 그냥 지나치기 쉬운 곳이었다.

아, 지금도 어릴 때 다락방 문턱을 두 손으로 잡고, 두 발로 벽을 타고 올라 다락방 속으로 쏘옥 들어간 뒤 문을 닫고는 술래에게 안 들키길 바라며 깜깜한 어둠 속에 숨어있던 생각이 난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도 못 찾으면 까무룩 잠이 들기도 했던.

그런데 이 다락방은 내가 태어났을 때 고모와 삼촌들이 나를 돌보다가 쏘옥 집어넣었던 장소이기도 하다. 옛날에야 아기가 태어나도 몇 kg인지 알 수 없으니 정확한 체중은 모르지만, 난 상당히 작은 몸집으로 태어났다고 한다. 그래서 불면 날아갈까, 쥐면 부서질까 조바심내면서 13명 대식구들의 관심을 받으며 애기시절을 보냈다. 9남매 맏며느리라 집안팎으로 일이 많아 바빴던 엄마 대신 나를 주로 돌본 사람은 아직 시집 안간 고모들과 어린 삼촌들이었는데, 장난끼 많았던 그 분들은 나를 데리고 다양한 실험들을 했다.

비료포대로 만든 꽤 튼튼한 비닐가방에 내 머리만 나오게 쏘옥 집어넣어서 벽에 옷걸이용으로 박아둔 못에 걸어두고는 까꿍! 하며 놀기도 하고(내가 그걸 참 좋아했다고 한다. 전혀 기억에 없지만^^;;), 포대기에 쌓인 나를 그 작은 다락방에 슬쩍 넣어두고는 젖먹이러 들어온 엄마가 한참을 찾게 만들기도 하고(엄마는 내가 없어진 줄 알고 얼마나 놀라셨을까?), 좀더 커서 내가 말을 하기 시작할 무렵엔 욕을 가르쳐서 할아버지, 할머니를 위시한 대식구가 모여 밥을 먹던 아침 밥상에서 엄마에게 쌍욕을 날리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아침 진지 드시던 할아버지께서 "집안꼴 자알 돌아간다!"하고 한 마디 하시자마자, 나는 엄마 손에 이끌려 뒤꼍으로 끌려가서 쇠비땅(아궁이에 땔감 넣을 때 쓰는 도구)으로 주딩이를 맞았다. 엄마는 쇠비땅으로 내 입술을 때리며 "아나~ 니 이래도 또 욕 할래?" 하면서 혼을 내셨다고 한다.(그 뒤로 난 한 번도 욕을 입에 올리지 않았고, 평생 욕을 안 하는 사람으로 자랐다. 이 사건은 내가 중학생 때 고모를 통해 알게 된 일인데, 내가 욕을 엄청 싫어하고 못하는 건 어릴 적 트라우마때문이었다)

암튼 다시 다락방으로 돌아가서,

애기 때 그 다락방에 숨겨져 엄마랑 숨바꼭질하던 일들이 있었다는 건 나중에 한참 커서야 알게 된 일인데 몸속에 그때의 일이 각인되었던지, 자라면서 나도 모르게 숨바꼭질 장소로 애용하는 곳이 되었단 게 참 신기하다.

세모꼴 다락방은 부엌에서 가장 큰 아궁이 위에 놓인 가마솥 위로 뻗어있어서, 가마솥에 불을 때어 김이 날 때는 다락방 안이 꽤나 훈훈했다. 그 다락방과 반대편에 있던, 문 열면 계단이 나오고 각종 간식거리가 쌓여있던 다락방은 사시사철 썰렁한 곳이었다면 이 세모꼴 다락방은 늘 따스했다.

그런데 어쩌다 이 다락방이 사라졌을까?

집에 연탄보일러를 놓으면서였을까? 아님 부엌을 입식으로 바꾸면서였을까? 아님 집안내부를 대대적으로 리모델링할 때였을까?

중학교때까진 분명 있었는데, 고등학교 다니며 타지에 나가 살다보니 그 다락방이 언제 사라졌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따로 사진으로 남겨두지 않아서 내 추억 속에만 있는 다락방. 좁지만 아늑하고 따스했던 다락방. 나만의 작은 공간이 필요할 때 떠오르는 다락방.

그 다락방은

이제 내 기억의 한켠에 자리한 채

마음 속 다락방으로 남았다.



* 작년에 쓴 글

https://brunch.co.kr/@malgmi73/96

* 아래는 모두 펌사진입니다.

그나마 옛날 느낌의 다락방
세모 네모 동그라미 다 있는 오징어 다락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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