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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그미 May 06. 2022

머우대 다듬는 시간

저녁반찬으로 뭘 해먹을까~

하고 냉장고를 뒤지다가

해남에서 근 한 달 전 보내주신 머우대가

반냉동상태로 있는 걸 발견했다.


머우대를 받자마자 한 뭉치는 바로 해먹고, 한 뭉치는 좀 있다가 먹어야겠다고 야채실 윗칸에 놓아두고는 차일피일 미루다가 깜빡 잊어버렸던 것이다.


보관해둔 곳이 냉장고 냉기가 나오는 쪽이라

반가량 언 채로 있다보니, 다행히 상태가 나쁘지 않아서 살짝 씻어서 끓는 물에 푹 삶아서 물을 빼두었다가 저녁식사가 끝난 뒤 머우대 손질을 하기로 했다. 머우대는 껍질이 질겨서 고구마줄기처럼 껍질을 벗겨내야만 먹을 수 있다.


마침 늦게 식사를 끝내신 어머님께서 식탁에 아직 앉아계시길래 머우대손질을 부탁드렸다. 손이 느린 내가 혼자 하면 한참을 하지만 어머님과 함께라면 금방이다. 설거지를 후다닥 끝내고 어머님과 마주 앉아 머우대 껍질을 까기 시작하며 고부간의 수다도 시작되었다.


"우리 어릴 때는 머우대 줄기만 이렇게 껍질 벗겨서 나물해 먹었는디, 요즘은 머우대가 뿌리에서 잎까지 다 좋다고 버리는 거 하나 없이 다 먹더라. 그래서 그란가 머우대가 무쟈게 비싸졌다는디 사돈어른이 보내주신께 얻어 먹네."


"한여름에나 자라서 먹는 건 줄 알았는데, 벌써 나더라고 하시면서 보내셨더라구요. 아직 연한 거라서 껍질 안 벗겨도 먹을 만할 거다 하시면서요."


"막 보내셨을 땐 연해서 그냥 먹어도 냉장고에서 늙어부러가꼬 인자는 껍질 벳겨야 먹재. 머우대 껍질이 고무줄보다 질겨서 이라고 껍질을 벳겨야 먹는디, 우리집에서는 이 껍질을 된장속에 묻어놨다가 조물조물 무쳐서 먹기도 했어야. "


"그냥 먹기도 질긴 건데 된장 속에 묻으면 좀 삭혀져서 부드러워지나봐요?"


"몰랑해지기는 한디 잘근잘근 씹는 맛으로 먹었재. 다 봐도 우리집처럼 머우대 껍질로 반찬해먹는 집은 없드라. 옛날엔 뭐든 함부로 안 버린께.

우리집 뒤에 대나무밭이 있어서 요맘때는 죽순도 캐다가 가마솥에 껍질째 푹 삶아서 탱자까시로 쭉쭉 찢어가꼬 나물해먹어도 맛났는디... 요즘처럼 냉동고가 있는 것도 아닌께 삶는대로 밖에 뒀다가 먹어야 한께 몇날 며칠 그라고 먹었는디, 진짜 맛있었재."

 

"그야말로 신선한 재료를 바로바로 해서 드셨으니 맛이 있을 수밖에 없었겠어요. 집 뒤 대밭에서 캐서 바로 삶고 쭉쭉 찢어서 양념해가지고 드셨을 거잖아요."


"어디 죽순뿐이냐? 가을에 바가지 만들라고 단단하게 늙도록 지붕에 얹어둔 박을 따서는 가마솥에 푹 삶은 다음에 반을 딱 갈라. 그라믄 그 박속에 있는 것들을 수저로 쓱쓱 긁어내서 그걸로 나물을 해먹으믄 그것도 되게 맛났어야. 박속나물이라고 하재."


"아~ 그게 박속나물이에요? 전 그게 박나물이랑 같은 건 줄 알았네요."


"박나물은 연한 박을 껍질 까고 얇게 저며서 말렸다가 나물해먹재. 그건 그냥 소금양념만 해서 하얗게 먹지만, 박속나물은 된장 좀 넣고 빨간 고추 파란 고추 썰어서 무치믄 박냄새도 나면서 맛있지야. 고거는 따땃할 때 먹어야 더 맛있어."


금방 저녁을 먹었는데도, 죽순나물 박속나물을 떠올리니 입안에 침이 고였다. 집에서 직접 키운 재료들을 바로 캐내고 뜯어서 만든 나물들은 얼마나 신선하고 향이 좋았을까? 생각해보면 어르신들은 그야말로 요즘 말하는 친환경 로컬푸드를 잘 드시고 사셨던 것 같다.


어머님과 이야기 나누며 까다보니 어느덧 머우대 껍질이 벗겨지고 말간 속살을 드러낸 머우대만 남았다. 어머님과 함께 머우대를 다듬으며 잊고 있었던 오래전 시절로 추억여행을 다녀왔다.


오늘 아침 완성한 머우대나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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