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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그미 Dec 22. 2022

몰운대에 눈 내릴 때

시 쓰는 새벽

세상의 끝을 보려고

몰운대에 갔었네.


깎아지른 절벽 아래로

사랑보다 더 깊은

눈이 내리고,

눈이 내리고 있었네.


강물에 투신하는 건

차마 아득한 눈발뿐,

몰운대는 세상의 끝이 아니었네,


눈을 들어 바라보면

다시 시작되는 세상,


몰운리 마을을 지나

광대골로 이어지고

언제나 우리가 말하던

절망은 하나의 허위였음을~


눈 내리는 날

몰운대에 와서 알았네,


꿩 꿩 꿩 눈이 내리고 있었네,

불현듯

가슴속으로 밀려드는

그리운 이름들,


바람이 달려가며

호명하고 있었네,


강물이 부드러운 손길로 몰운대를 껴안고

그곳에서 나의 그리움은 새롭게 시작되었네,


세상의 끝은 또 다른 사랑의 시작이었네


ㅡ박정대, <몰운대에 눈 내릴 때>


'눈 내리는 날이면 생각나는 시입니다.'

하고 어제 진순희선생님께서 단톡방에 올려주신 시이다. 언젠가는 나도 이런 시를 쓰고 싶다는

생각이 마구 드는  그런 시여서, 이 시는 꼭 필사해야지~ 하고 생각했다.


어젠 자정까지 일이 있어서 못 쓰고

오늘 새벽에야 한 자 한 자 정성들여 썼다.

얼마만에 필사를 해보는 건지.

요즘은 필사보단 필타(자판으로 쓰기)를 하다보니,

 손글씨가 점점 엉망이다. 몇 년 전 한동안 새벽마다 필사를 하던 때는 글씨가 더 봐줄만 했는데...



어릴 때부터 시 쓰기를 좋아했다.

학교대표로 백일장에 나간 적도 있고(상은 못 탔다. 너무 잘 쓰려고 기교 부리다 망했다), 내가 쓴 시가 신문에 실린 적도 있고(친척이 신문에서 보시고 알려주셔서 알았다. 신문에 실린 줄도 몰랐다), 고등학교땐 내가 쓴 시를 친구가 자기 지갑안에 고이 넣어다니기도 했다.('오늘의 초상화'란 시였는데, 한 친구가 그 시를 보더니 마음에 들어하면서 누구 시냐고 물었다. 쑥쓰러워서 차마 내가 썼다곤 못하고, 이름이 기억 안 나는 어떤 시인의 시라고 했더니 냉큼 베껴 썼다. 1년 뒤 우연히 그 친구의 지갑 안에 그때 베껴 쓴 내 시가 고스란히 들어있는 걸 보고 뿌듯해서, 뒤늦게 "사실 그거 내가 쓴 시야~" 했더니 어디서 되도 않은 소리로 뻥치냐며 친구한테 쫑코먹었다.)



대학 때도 나름 과에서 운영하는 학회를 하며 시를 쓴다곤 썼는데, 2학년 때 턱~ 하니 신춘문예에 당선된 1년 후배를 보고는 시는 나에게 넘사벽인가 하는 생각에 한동안 시 쓰기를 단념했다.


그리고 무수한 세월이 흐른 오늘,

이 새벽 필사를 하며 다시금 시 쓰기를 다짐해본다.


류필작가님 사진


박정대 시인의 시에 나오는 몰운대가 어디에 있는 곳인가 싶어 찾아보니, 부산 몰운대가 처음 떠서 거긴가? 했는데 진순희선생님께서 정선에 있는 몰운대라고 알려주셨다.


몰운대 : 강원도 정선군 화암면 몰운리


정선 소금강의 몰운대에서 시인들은 절벽과 계곡의 아름다움을 노래했다. 또 송천과 골지천이 만나는 아우라지는 정선아리랑 ‘애정편’의 배경이 됐으며, 김원일의 장편소설 《아우라지 가는 길》에서 원초적 고향으로 그려졌다.시인들의 사랑을 받은 몰운대는 그 수려한 공간이 영상에 담기기도 했다. 영화 〈구미호 : 여우누이뎐〉 〈권순분 여사 납치사건〉, 드라마 〈닥터 진〉 등이 이곳에서 촬영되었다.


계곡과 어우러진 몰운대의 비경은 벼랑 아래서 보면 더욱 윤곽이 선명하다. 몰운대를 에돌아 마을로 접어들면 절벽과 계곡이 어우러진 풍경이 펼쳐진다. 가을이면 단풍도 곱게 물들어 아름다운 자태를 뽐낸다


최근에는 몰운대부터 화암약수까지 이어지는 트레킹 코스도 인기 높다. 이곳 산책로는 푹신푹신하고 경사가 평이해 가족끼리 아기자기한 산행을 하기 좋다. 황동규의 <몰운대행>에 화암약수터 호텔 여주인이 몰운대행을 권하는 구절이 나와 발걸음을 들썩이게 만든다.




* 또다른 부산의 몰운대는

부산광역시 사하구 다대동에 있는 경승지로 1972년 6월 26일 부산광역시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아래는 두산백과에 나온 설명이다.


몰운대는 부산광역시 중심가에서 남서쪽으로 16km 떨어진, 다대곶 동편에 있다. 다대곶 일대는 해류의 영향으로 짙은 안개가 끼어 시야가 자주 가려지기 때문에 몰운대라 하였다고 한다.


16세기 이전 몰운대는 섬이었다가 점차 낙동강에서 밀려온 토사가 쌓여 육지와 연결된 것으로 추측한다. 이곳은 대마도와 가까워 일본과 교역하는 주요 해상로로 이용되었으며 왜구들이 자주 출몰하여 해상 노략질을 일삼던 곳이기도 하였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의 선봉장으로서 이곳 앞바다에서 전사한 녹도만호(鹿島萬戶) 충장공(忠壯公) 정운(鄭運)이 이곳 지명을 듣고 운(雲)과 운(運)이 같은 음인 것을 따라 “내가 이 대에서 죽을 것이다(我沒此臺)”라고 하였다는 고사가 있으며, 정운의 순절을 기리는 유적비가 있다.


1983년 북한의 무장간첩선이 이곳으로 침투하다 괴멸되기도 하였다. 최근에도 몰운대 최남단은 군사보호지역으로 일반인 출입이 금지된다. 언덕 전체에 소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지만 예전에는 동백나무가 울창했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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