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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그미 Aug 15. 2023

소년의 레시피 & 소방관들을 위한 특별한 한 끼

책 두 권에 담긴 한 소년의 성장

100권 가까운 책을 읽은

상반기 도서목록에서

하나의 책을 고르라면, 바로 이 책이다.  


<< 소년의 레시피 >> 배지영 / 웨일북 2017



고등학생 아들이 야간자율학습을 째고, 가족들을 위한 저녁식사를 만든 과정을 엄마가 기록한 책이다. 언젠가는 아이들에게 대학입시 말고도 다양한 길이 열리길 바라는 마음에서 학교공부 바깥에서 꿈을 키워가는 아들의 이야기를 썼다. 아들이 가는 길에는 그늘이 되어줄 크고 잘생긴 나무도 없고, 목을 축일 샘물도 없어서 스스로 물을 챙겨서 다녀야 하기에, 옹달샘이라도 되어주고 싶은 엄마의 마음으로 쓴 책.


아이 둘을 키우는 나는 자식의 꿈을 응원하는 부모이야기에 언제나 귀가 솔깃해진다. 야자 대신 밥을 짓는 고등학생 아들의 이야기는  많은 이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여러 차례 방송섭외를 받았지만, 작가의 신중한 고려끝에 EBS 교육방송의 간판프로인 지식채널e에 '입시공부 바깥에서 자기만의 삶을 찾아가는 한 소년의 이야기'로 소개되기도 했다.



또 한 가지 이 책에 끌렸던 이유는 배지영 작가의 뛰어난 글솜씨에 있다. 지금까지 봐온 어떤 작가와도 다른 개성있는 문체로 간결하면서도 상식을 뛰어넘는 반전과 유머를 담는 한편, 촌철살인의 한줄로 깨달음을 주는 글이었다. 읽을수록 배지영 작가에게 빠져들 수밖에 없어서 도서관에서 처음엔 빌려읽었던 [소년의 레시피]를 소장용으로 사고, 배지영 작가의 다른 책들을 모조리 찾아 읽었다.


[소년의 레시피]가 지닌 매력은 또 있다.

3년간 학교 야자 대신 가족들의 저녁밥을 책임진 아들 제규의 이야기와 더불어 중간중간 지금은 돌아가신 시아버지 이야기가 나온다. 종가집 장손임에도 불구하고 젊은 시절부터 음식을 즐겨하시고, 그 옛날에도 아내가 아이를 낳으면 손수 미역국을 끓여내시고, 직접 기르고 잡은 식재료들로 푸짐하게 음식을 만들어 가족들과 이웃들에게 대접하기를 평생의 낙으로 알고 사시던 시아버지의 이야기가 참 따스하고 좋았다.


시어머니를 모시고 한집에서 18년째 살며 겪는 일들을 '고부만사성'시리즈로 100편이 넘는 이야기를 써왔고, 언젠가는 책으로 출간하고픈 꿈을 가지고 있기에 배지영 작가의 시아버지 이야기가 더욱 다가왔던 것 같다.


이런 이유들로 [소년의 레시피]는 올해 상반기 나의 원픽 책이 되었다. 이 책을 덮고 나면, 책이 나온 게 2017년이었으니 지금쯤 소년은 20대 중반이 되었을 텐데 어떻게 자랐는지 궁금해지기 마련이다.


궁금증은 2023년 6월에 나온 [소방관들을 위한 특별한 한 끼]로 해결이 됐다.



[소년의 레시피]의 주인공 강제규는   친구와 함께 해병대를 지원하고 싶었으나, 신체검사에서 척추측만증이 너무 심해서 흔히 '공익'이라고 불리는 4급 사회복무요원이 됐다. 친구들과 군대 이야기를 할 때면 "뭐가 힘드냐? 공익은 빠져."하는 놀림을 받곤 하지만 나름 자랑스러운 군생활을 했다는 강제규 작가는 소방서에서 사회복무요원으로 근무하며 환자도 살려보고, 화재현장에도 출동했다. 하지만 그중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건 119안전센터 구내식당에서 밥을 한 일이라고 한다. 안전센터의 실세이신 식당 이모님이 사정이 생겨 안 나오시는 날에는 작가가 식사 준비를 했는데, 구급대원들은 '특식 먹는 날'이라고 좋아했단다.    


병무청에서 사회복무요원 체험수기를 제출하면 특별휴가를 준다는 소식에 끌려서 119안전센터의 대기실과 지령 컴퓨터 앞에서 스마트폰으로 글을 써 응모했는데, 이 글로 특별휴가 3일을 받게 되었다. 출동하는 직원들을 가까이 보면서 느낀 것과 가끔 같이 출동 나가서 생기는 에피소드를 주제로 쓴 글로 상을 받자, 밥 차린 이야기를 썼으면 대상을 받을 수도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단다.


119안전센터에서 밥하는 게 재밌어 메모장에 습관적으로 기록해둔 게 있었는데, 가끔 친구들과 가족에게 자랑삼이 이야기해주면 더 듣고 싶어해서 '119안전센터 특식 일지'를 썼는데, 그게 바로 이 책 [소방관들을 위한 특별한 한 끼]가 되었다.


글 잘 쓰시는 엄마의 우월한 유전자를 이어받은 강제규 작가 역시 뛰어난 글솜씨로 소방서에서 군복무하며 요리한 이야기를  아주 맛깔나게 써냈다. 모전자전!



책 읽다가 알게 된 사실이지만 강제규 작가는 집과 좀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대학의 요리 관련학과를 갔다고 한다. 학교 야자를 하지 않아도 자신의 꿈과 재능을 살려 대학에 갔다니, 이 또한 멋진 일. 그리고 대한의 남아로서 군복무를 하는 중에도 용기를 내어(주방이모님이 안 계시니 오늘은 배달음식을 시켜먹어야겠다는 반장님의 말씀에, "제가 요리사 출신이니 혹시 괜찮다면 제가 점심을 준비해도 되겠습니까?"하고 용기있게 말한 덕분에   작가는 소방서에서 짬짬이 요리를 하게 되었다) 요리를 해서 이렇게 책까지 냈으니 정말 대단히 훌륭한 청년으로 성장했구나~ 싶었다.


소방서에서 근무하며 같은 공간에 있는 분들이 현장에 나가 시민들을 구하고 우리의 일상을 유지하도록 도와주고 있는 걸 직접 보고 겪으며, 작가는 아는 만큼 볼 수 있게 되었다. 그 현장의 이야기들을 읽을 수 있는 것도 이 책의 장점이다.



수많은 소방서 보조인력을 봐온 센터장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고 한다. "남들 다 하는 군 생활, 누구는 깨닫고 누구는 허송세월로 끝난다. 너는 깨닫고 갔으면 좋겠다."


119안전센터에서 즐겁게 밥을 하고 전역한 작가가 전역을 한 뒤에 돌이켜보니 센터장님 말씀처럼 남들 다 하는 군 생활을 자신은 흘러가게 두지 않았다.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쏟아부었다고 스스로에게 말할 수 있다'고 당당하게 글을 맺은 강제규 작가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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