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어 수업 시간에 늘 강조되는 것 중의 하나가 성조를 지키는 것이다. 베트남어는 한자를 바탕으로 된 것들이 많아서 성조를 다르게 발음하며 이를 구분해야 하기 때문이다. 함께 근무하고 있는 베트남 직원 중에는 이름이 투(Thủ)인 직원이 있는데, 내가 이 직원의 이름을 부를 때마다 듣고 있던 직원들이 웃곤 했다. 성조를 지키지 않고 발음하면 완전 다른 뜻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그 직원의 이름인 투(Thủ)라는 말은 으뜸, 우두머리와 같은 뜻을 가지고 있지만, 성조를 잘못 지켜서 투(Thú)라고 발음하면, 짐승이라는 뜻이 된다. 한국어로 하면 앞의 '투'는 머리수(首), 뒤의 '투'는 짐승수(獸)를 가리키는 것 같다고 짐작하고 있다. 그리고 베트남에서는 이를 성조를 구분하여 발음하는 것이다. 한국어 글자로는 성조를 표시할 수가 없기 때문에 그냥 다 똑같은 '투'이지만, 베트남에서는 상당히 다르다.
글자에 성조를 표시하는 문자는 어느 것이 있을까 생각해 보았다. 난 베트남어 이외에는 생각이 나지 않는다. 비교적 최근에 만들어진 베트남 글자는 알파벳을 기반으로 하고, 글자에 성조를 함께 표시하기 때문에 그냥 써진대로 읽으면 되는 이론적으로는 상당히 쉬운 글자이기도 하다. 총 6개의 성조가 있는데, 모든 단어마다 이 성조를 표시하게 되어있다. 어떻게 보면 음악을 위한 악보에 있는 악상을 표시해 놓은 것 같이도 보인다. 프랑스 식민지 시절에 한자를 잘 몰라 글을 읽고 쓸 줄 모르는 베트남 일반인들을 위해 프랑스 신부가 베트남 글자를 만들었다고 하는데, 아마 프랑스에서 쓰고 있는 알파벳과 악상 기호와 같은 것을 참고하여 베트남 글자를 만든 것이 아닐까 하는 상상을 해보기도 한다.
베트남의 6가지 성조(무슨 표시인지 알아보시겠죠? 제가 써봤어요.)
베트남어의 성조는 위의 사진과 같이 글자(모음)의 아래위에 표시한다. 위에서부터의 순서대로 아무 표시가 없으면 음의 높낮이 없이 일정하게 발음하면 된다. 모음 위에 아래로 내려오는 표시가 되어있으면,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게 발음하고, 반대로 모음 위에 위로 올라가는 표시가 되어있으면, 낮게 시작해 높은음으로 끝을 내주면 된다. 악보의 크레센도, 디크레센도 비슷한 것 같지만, 소리 크기를 키우고 줄이는 것이 아니라 음 자체를 올리거나 낮추어야 하는 것이다. 많은 한국 사람들이 그저 음의 성량만 높이거나 줄이기도 하는데, 그러면 베트남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없다. 여기까지는 그래도 조금 쉬운 편인데, 모음 위에 물음표 표시와 물결표시가 어려운 발음들이다. 둘 다 발음할 때 바이브레이션을 주어야 하는데, 물음표는 세로로 바이브레이션을 준다는 기분으로, 또 물결 표시는 메아리치듯 가로로 조금 더 길게 바이브레이션을 준다는 느낌으로 하면 될 것 같다. 마지막의 모음 아래에 점이 찍혀있는 것은 스타카토처럼 발음을 짧게 뚝 끊어버리면 되는데, 쉽진 않다.
그래서 글의 시작에 소개한 회사 직원의 이름인 '투'는 세로로 바이브레이션 한다는 느낌으로 발음을 해주면 된다. 빨래를 털듯이 위에서 아래로 '투∼¿'하면 완벽하다. 화가 나서 목소리 크게 '투↗'라고 불러버리면 짐승을 부르는 줄 알고, 직원들이 당황할 수 있다. 항상 이렇게 성조를 지키려 노력하는데, 아직도 직원들이 당황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여전히 나의 발음이 부족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답답해진 회사 직원 투(Thủ)는 나에게 다시 한번 설명을 해주었다. "법인장님, 제 이름을 한국어로 하면 나라의 수도를 말할 때 쓰는 글자고, 법인장님이 부르시는 말은 수의사라고 할 때 쓰는 글자입니다. 법인장님이 사무실에서 저를 부르면, 직원들이 수군댑니다. 법인장님이 짐승을 찾으니까 네가 들어가라고." 전에도 들어서 알고는 있는데, 내 입이 그걸 구분해서 발음하기가 너무 어렵다.
지난 2주간은 어학당을 다니지 못했다. 회사에 바쁜 일이 생겨서 다닐 수가 없었는데, 직장인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회사일에 더욱 신경을 써야 하는 것이 맞긴 하다. 업무가 휘몰아치듯 닥쳐와서 지친 몸으로 계속 어학당을 가지 못했다. 아무래도 뒤처진 진도를 따라가기 위해서 공부를 따로 더 해야 할 것 같은데, 이번 주말엔 그냥 누워 쉬고 싶기만 하다. 내 인생에도 악상을 붙일 수 있다면, 이번 주말부터 몇 마디 정도는 점점 느리게(rit.)를 붙여 준 뒤에 본래의 속도로(a tempo) 돌아갈 수 있게 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