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비가 오는 계절

by 맑은돌

[목사님, 혹시 내일 오전에 시간 괜찮으시면 잠깐 만날 수 있을까요?]


로비 자금을 전달하고 집으로 돌아온, 금요일 저녁. 내가 지금껏 살면서 처음으로 내 인생을 상담을 하기 위해 목사님께 만나자는 문자 연락을 했다. 아마도 자금이 인출되는 것을 막을 수 있겠다고 생각한 뒤, 그러니까 내가 어느 정도 사건을 통제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 뒤에, 나는 처음으로 회사나 아내가 아닌 사람에게 연락을 한 것이었다. 내가 문자를 보낸 뒤에 목사님은 바로 답장을 보내주었다. [안녕하세요. 집사님. 내일 오전 10시, 교회 1층 카페에서 어떠세요?]


"안녕하세요. 목사님." 문자를 주고받은 다음날인 토요일 오전 10시. 목사님이 카페로 걸어 들어온다. 나와 동갑의 목사님은 토요일 오전이라 그런지 정장 차림이 아닌, 편한 운동복 바지에 검은 반팔 티셔츠를 입고서 카페 입구에서 나와 눈을 맞췄다.

"집사님. 무슨 일 있으신가요?" 무슨 일로 보자고 한 건지 짐작이 가지 않는다는 말투로 말을 건넨다.

"네. 목사님. 저도 이렇게 목사님께 연락드린 게 처음인데, 요즘 제 삶이 너무 힘들어서 연락드렸어요." 건조하게 말하려 했지만, 목소리가 떨렸다.

"아, 그러세요? 안으로 들어가서 얘기하실까요?" 목사님은 당황한 듯 카페 안 쪽의 방으로 이동했다.


교회가 있는 건물의 1층에는 교회가 운영하는 카페가 있다. 그리고 계산대 옆에는 탁자 1개에 6명 정도가 앉을 수 있는 작은 방이 있는데, 그 방 안으로 들어가자는 얘기였다. 교회 로고가 그려진 유리로 된 미닫이 문을 닫고 목사님과 마주 앉았다. 테이블을 덮고 있는 유리 밑에는 푸른색 체크무늬의 면으로 된 테이블보가 깔려있고, 그 옆에는 신앙서적이 담겨있는 노란색 박스가 아래위로 포개져 놓여있었다. 목사님이 벽걸이 에어컨을 튼다. 에어컨 돌아가는 소리가 나고, 나는 딱딱한 유리판 위에 두 팔꿈치를 올려놓고 그간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깍지를 끼었다 풀며, 또 두 손으로 내 머리를 쓰다듬기도 했다. 그렇게 하나씩 이야기를 풀어냈다. 사건을 다시 되짚는데, 다시 눈이 충혈된다. 벌써 여러 차례 이 사건의 얘기를 했었는데, 이렇게 처음시점부터 이야기를 시작하면 또 눈물이 나려고 한다.


"집사님, 그동안 얼마나 맘고생이 많으셨어요. 정말 영화 같은 이야기네요. 이 시기를 어떻게 견디셨을지 가늠할 수가 없습니다. 혼자 어떻게 버티셨어요? 저는 전혀 몰랐습니다. 죄송해요." 목사님도 빨갛게 충혈된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제가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습니다.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실 수 있죠. 그래요. 너무 놀라시고 또 책임감이 크셔서 그러셨을 것 같아요."

"근데요, 목사님. 저는 절대 그 직원들을 용서 못할 것 같아요." 떨리는 목소리로 나도 모르게 이 말이 튀어나왔다.

"네. 용서가 안되시겠죠. 용서하지 마세요. 집사님."

"감사합니다. 목사님. 얘기 들어주시고 위로해 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그저 위로를 받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정이 북받쳐 올라온다.


"그런데 집사님. 하나님께서 이 일로 집사님께 주시는 무언가 교훈이 있다고 생각하세요?" 갑자기 목사님이 무거운 질문을 던져 당황했다. 사실 목사님과 이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데, 베트남에 처음 왔을 때부터의 일들이 생각났다. 그리고 천천히 그러한 사건들을 하나씩 떠올리며 다시 이 사건이 조금씩 더 정리되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기도 했다.


7년 전, 베트남에 처음 나왔을 때의 일이다. 베트남에 발령받기 전, 보름간의 출장 명령을 받고 처음으로 베트남의 현지법인에 출근했던 날. 한 베트남 직원이 나에게 회사를 안내해 주었다. 한국어를 할 줄 아는 생산부의 남자 직원 끄엉(Cuong)이었다. 생산부의 청색 작업복을 입고 있던 키가 작은 직원인 끄엉(Cuong)을 따라다니며 사무실과 공장을 둘러보면서 얘기하다가, 한쪽 다리를 절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이 사람을 한국에서 만난 적이 있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나는 한국에서 대학교 다니던 시절부터 취직하고 3년 정도가 되던 때까지 한 봉사단체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었다. "IFC(International Friendship Center)"라고 부르던 곳이다. 거기에서 약 5년 정도 봉사를 하면서 나는 베트남에서 한국으로 온 근로자들과 함께 여행도 다니고, 한국어 공부, 미용 봉사를 시켜주는 일을 돕곤 했었다. 그 단체에서 난 지금 우리 베트남 법인의 생산부에서 근무하고 있는 끄엉(Cuong)이라는 사람을 만났었다. 끄엉(Cuong)은 한국의 한 비닐 제조 업체에서 근무하고 있었는데, 대답을 늦게 한다는 이유로 한국 사장님한테 맞아 다리가 부러진 적이 있다고 했다. 불법체류를 이유로 그 당시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한 그는 이렇게 다리를 전다. 또 한국 남자가 소리를 지르면 본인도 모르게 몸을 움츠리기도 한다.


그 당시 나는 현재 다니고 있는 회사의 한국 본사에 막 취직해서 다니고 있었다. 신입사원이었는데 끄엉(Cuong)의 다른 베트남 친구들 3명이 사무실에서 근무하고 있던 나에게 전화를 했다. 내 하얀색 싸이언 핸드폰이 벨을 울리고, 난 사무실 밖으로 나가 7층 흡연실 난간에서 그들과 통화를 했다. 우리 회사 1층에 왔다고 만나자고 하는 것이었다.


"왜? 왜 갑자기 여기까지 찾아왔어?" 회사 접견실로 그 3명의 베트남 남자를 불러들여 얘기를 했다. 환절기였던 것 같다. 강렬한 붉은 바람막이를 입고 있던 한 베트남 친구가 기억에 남는다.

"미스터 림, 아니 형님. 이거 심각한 일이야. 도와줘, 도와줘야 돼. 그 나쁜 놈 진짜 죽여야 돼." 그중 한국어를 잘하는 친구가 나한테 말을 했다. 어떤 친구는 손바닥으로 빡빡 밀어버린 자기의 머리를 치며 알 수 없는 베트남 말을 하기도 했다. 회의실 밖을 지나는 다른 선배 직원이 회의실 안쪽을 흘깃 쳐다본다.

"왜? 무슨 일이야? 여기 와서 나한테 얘기하면 내가 도와줄 수 없을 것 같은데. 이번 주 IFC 모임에서 다시 얘기해 줘." 신입사원인 나는 근무시간 중에 이렇게 나와있는 것 자체가 부담이 되고 눈치가 보였다.

"아니, 진짜. 이거 사장, 이 놈 죽여야 돼. 어떡해. 어떻게 신고해? 어디에 신고해? 내 친구 힘들다. 아프고 돈도 못 받는다." 그러면서 갑자기 담배를 꺼낸다.


밖에서 선배 사원이 계속 회의실을 쳐다본다. 당황한 나는 그들에게 이번 주 모임에서 얘기하자며, 회사 밖으로 그들을 내보냈다. 그리고 그들은 봉사단체의 모임에 나오지 않았고, 그리고 끄엉(Cuong)은 이렇게 다리를 절게 되었다.


'십오 년은 된 것 같은데, 이렇게 베트남에서 다시 만나다니? 그리고 비록 서로 다른 나라이기는 하지만, 수년간 같은 회사에서 근무하고 있었다니? 이건 분명히 내가 여기 베트남에서 근무하게 될 운명이다. 그래, 어떤 사인 같은 것이다.'라고 생각을 하게 되었다.


교회 카페 안쪽에 있는 방에 앉아 푸른색 테이블보를 바라보며 생각하고 있다. 아니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다. '이렇게 나의 운명이라 여기며 살아온 여기 베트남 땅에서, 또 같은 이유로 성의껏 일해 온 이 직장에서, 왜 나에게 이런 일이 발생한 건가요? 내가 그 법률팀 직원들에게 어떻게 대해줬는지는 당신도 아시잖아요?' 목사님이 묻는 '이 사건의 교훈이 무엇인 것 같냐?'는 물음 앞에 나는 이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나는 얼음이 반절 이상 녹은 갈색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욱 들이켰다. 그리고 목사님의 물음에 대해 이렇게 대답했다. "하나님이 저에게 더 가르칠 게 있다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전 지금껏 나의 평안한 삶을 바라며 그러한 삶을 구해왔는데, 하나님은 나에게 더 많이, 더 크게 경험하고, 더 깊게 이야기하자고 하는 것 같습니다. 다른 사람과는 다른, 나에 대한 이야기를 해달라는 것 같아요." 목사님이 나의 손을 잡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감사합니다. 목사님. 정말 큰 위로가 됩니다." 그리곤 유리문을 열고 나와 집으로 향했다.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 것 같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길가의 푸른 가로수를 바라보다가 문득 예전의 꿈이 다시 떠올랐다. 나에게 줄 교훈이 있다고 했었다. '사사기에서 역대하까지 읽으라.' 그리고 이번 사건 이후 나는 그 구간을 꾸준히 읽고 있다. 왕과 사사, 예언자와 백성들이 등장한다. 누구는 번성했고 누구는 망하는 이야기들. 전에 이 구간을 읽으면서 지루하다는 생각뿐이었는데, 이번은 조금 다르다.


누구는 넘어졌고, 또 다른 누구는 고난을 받았다. 그들에겐 그러한 이유가 있을 수도, 또는 아무 이유가 없을 수도 있었다. 그들의 이야기를 따라 읽으며 생각했다. 고난에는 이유가 없을지도 모른다. 모두가 각자의 사정으로 불행을 맞이하지만, 그 불행이 꼭 무엇의 결과는 아니다. 다만 지나가야 하는 시간, 한 사람의 이야기가 그렇게 흘러갈 뿐이었다. 하나님은 나에게 이 시기의 이야기를 해보자고 하는 것 같다.


내가 있는 이곳은 계절을 두 가지로 구분한다. 비가 오는 계절과 그렇지 않은 계절. 비가 오는 계절이 무엇의 결과가 아니듯, 우리의 인생에도 설명되지 않는 계절이 있다. 다만 그 비를 어떻게 견디고 지나왔는가, 그 시간 속에서 무엇을 보았는가, 그것이 하나님이 내게 가르치고자 하는 것이 아닐까? 나는 이 시기를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나의 이야기를 같이 해보자는 것 아닐까?


이 계절의 비가 그치면, 나는 또 다른 이야기를 써 내려가겠지.

keyword
이전 12화플랜 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