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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랜 B

by 맑은돌

"저희가 파악한 바로는 그 집행기관의 응안(Ngan)이라는 여자 집행관도 그 녀석들한테 돈 받기로 했답니다. 그래서 빨리 집행하려고 하는 거예요." 백 변호사가 말한다. 요즘 백 변호사와는 거의 매일 만나고 있다. 금요일인 오늘도 광야 로펌의 회의실에서 미팅을 진행하고 있다.


"그럴 것 같았어요. 우리 회사에 압류딱지 붙이겠다고 하고, 정문을 잠가버리겠다고도 했잖아요. 저를 협박하고 너무 적극적이더라고요."

"그런데, 그 사람이 법인장님 매니저한테 돈 달라고 해서 받아갔다면서요?"

"네. 지난번에 그 집행기관에서 제가 뛰쳐나온 날에 응안(Ngan)이라는 집행관이 우리 총무 매니저 로안(Loan)한테 돈을 달라고 했더라고요. 1천5백만 동(75만 원) 받아 갔습니다."

"양쪽에서 다 받아먹을 생각이었네요. 아무튼 저희가 알아본 바로는 그 여자 매니저하고 그 위에 남자 기관장하고 별로 사이가 좋지 않다고 합니다. 그래서 저희는 남자 기관장에게 접근하고 있어요. 그 남자가 더 높은 포지션이기도 하고요. 우리 광야 로펌의 리우(Lieu) 변호사가 그 남자 기관장의 상관들과 연결되는 고위 공무원들하고 친구더라고요. 그렇게 그 남자 기관장은 저희가 접촉을 했습니다. 이번 사건에 우리 편을 들어줄 거예요. 약속을 하기도 했고요."


"그러면, 다음 주에 저희 돈은 인출이 안 되는 건가요?"

"자, 이제 설명 잘 들으시고 여기부터는 적어 두세요. 일단 그 여자 집행관 응안(Ngan)은 한 개의 은행에다가 공문을 발송한 상태입니다. A 은행에만 발송했더라고요. 다음 주 월요일에 집행기관 명의의 계좌로 회사의 돈을 송금하라고요. 아마 또 다른 은행들은 며칠 후에 인출하겠다고 회사를 협박하면서 그때마다 돈을 달라고 요구할 심산인 것 같아요."

"맞습니다. 총 3곳의 은행에 회사 자금이 압류되어 있는데, 그 여자 집행관은 우리 회사를 고려해서 일주일 간격으로 한 개 은행씩 인출할 계획이라고 했어요."

"사실 그것도 웃긴 얘기긴 한데요. 인질 풀어주는 것도 아니고, 어떻게 인출을 일주일 간격으로 한다는 건지 이해가 안 되더라고요. 어쨌든, 그 남자 기관장은 은행이 돈을 송금하지 않으면 그냥 집행기관이 적극적으로는 받지 않는 것으로 눈감아 주기로 했어요. 이미 집행기관의 공문이 응안(Ngan)을 통해 은행에 접수된 상태라서 이걸 취소하기는 곤란하고, 은행이 자체적으로 돈을 송금하지 않고, 또 집행기관이 받지 못하는 것으로 정리할 예정입니다."


"우리 회사는 어떻게 하면 되는 거죠?"

"A 은행의 지점장을 찾아가세요. 찾아가서 월요일에 집행기관으로 돈 송금하지 말아라. 집행기관의 기관장이 송금받지 않는 것으로 이미 얘기가 됐으니, 궁금하면 집행기관에 전화하라고 하세요. 그래서 은행 지점장이 집행기관의 남자 기관장에게 전화를 하면 '은행 내규를 따르세요.'라고 대답할 겁니다. 그리고 이 건은 지금 검찰에서 지켜보고 있는 사안이니 무리해서 송금할 필요도 없는 것이라고 얘기해 주세요. 검찰이 곧 집행기관을 압수수색 할 예정이라고 하시면 알아들을 겁니다."


"은행 내규상으로는 집행기관으로 송금을 안 해도 되는 건가요?"

"은행 내규상으로는 계좌 주인인 회사에 물어보게 되어 있어요. 은행 지점장이 눈치껏 송금하지 않으면 되는 것인데, 혹시 지점장이나 집행기관의 집행관이 진짜로 회사에 전화할 수도 있으니까 그런 경우에는 회계 매니저가 전화를 받아서 회사는 송금에 동의하지 않겠다고 얘기하면 됩니다."


"조금 복잡하네요. 혹시 전화하다가 또는 우리 직원이나 은행 직원이 실수로 송금할 수도 있겠어요."

"그건 대책을 잘 세우셔야 합니다. 집행기관의 남자 기관장은 저희 말을 따르도록 다 손을 써놨으니까 어기지는 못할 거예요. 은행 지점장도 괜히 송금했다가 이상한 일에 엮일 수 있으니 무리해서 송금하지는 않을 거라고 봅니다." 여기까지 백 변호사에게 다시 내용을 확인해 가며 내 회사 노트에 적어 가고 있었다.


"그리고 다행인 건 이건 백업 플랜이에요. 플랜 B인 거죠. 지금 우리 측 변호사들이 관할 검찰청에 접촉해서 빨리 집행기관 서류를 압류하는 것으로 작업하고 있습니다. 월요일, 늦어도 화요일에는 집행기관에 있는 모든 서류가 검찰에 압류될 거예요. 만약 월요일에 압류되지 않으면 검찰에서 압류 예정이라는 공문을 월요일에 발급해 주기로 했습니다. 그러면 집행기관은 이 사건을 건드릴 수가 없습니다. 또 월요일 또는 화요일에 이 사건 관련 서류가 압류되면 집행기관은 압류 풀릴 때까지 아무런 일을 할 수가 없어요. 검찰은 그 압류를 이 사건이 다 해결될 때까지, 그러니까 재심 판결이 받아들여지고 확정될 때까지 유지할 겁니다. 그리고 만약 월요일 오전까지 이 계획들이 잘 해결되지 않았을 때 아까 말씀드린 백업 플랜을 가동하는 겁니다. 대신에 여기서 로비 자금이 한번 필요할 것 같아요. 지난번 게이트 로펌처럼 큰 금액은 아니고 1억 동(5백만 원) 정도가 필요합니다."


계획대로 될 것이라 확신하며 로펌을 나섰다. 하지만 1분, 2분 짧은 시간밖에 흐르지 않았는데, 다시 의심이 들기도 한다.


"어디서 만나기로 했어?" 통역 직원 투(Thu)에게 물었다. 우린 1억 동의 로비 자금을 들고 이동 중이다. 시내라고는 했는데 아직 정확한 위치가 나오지 않았다. "지금 로펌과 통화해 보겠습니다." 조수석에 앉은 투(Thu)가 뒤를 돌아보며 대답한다. 날은 벌써 어둑어둑해졌다. 이제 오후 3시밖에 안 됐는데, 우중충한 비가 내리고 있다. 검은색 카니발 자동차는 차선 끝에 고여있는 빗물을 인도로 튀기며 달린다.


"법인장님. 1군에 있는 M 빌딩에서 만나기로 약속 잡았습니다. 1층 로비에 있으면 한 중년의 여자가 내려오기로 했어요."

"그 여자가 누구인 거야? 그 사람이 공무원이야?"

"잘 모르겠습니다. 그저 돈을 전달해 줄 중개인이라고 합니다. 이제 거의 다 왔어요."

시내의 한 주상복합 빌딩에 도착을 했다. 20층 정도 되는 높은 건물이었고, 나와 투(Thu)는 1층 로비로 올라가는 계단으로 걸어 들어갔다. 흰색 상의를 입은 경비가 문을 열어준다. 넓은 로비 왼쪽에는 리셉션이 있고, 여자 직원 1명이 서있었다. 맞은편인 오른쪽 벽에는 커다란 그림과 함께 5명 정도는 한꺼번에 앉을 수 있는 큰 소파가 있었는데, 여기에서 돈을 전달할 사람을 만나기로 했다.


"법인장님. 중개인이 외국인이 껴 있으면 받을 수 없다고 한답니다. 제가 전달할게요. 법인장님은 로비 한쪽에 서 계시면서 전달 장면을 확인해 주시면 될 것 같아요." 투(Thu)가 로비를 들어가기 전 광야의 변호사와 통화한 내용을 정리해서 나에게 일러두었다.

"난 저기에 들어가 있을게." 로비 한쪽에는 작은 편의점 서클 K 가 있다. 난 편의점에 들어가서 코카콜라 한 캔을 사고 창문으로 전달 장면을 지켜보고 있는 중이다.

투(Thu)는 소파에 앉아 내가 건네준 우리 회사 로고가 찍힌 서류 봉투를 들고 있다. 그 안에 1억 동이 들어있다. 잠시 후 꽃이 그려진 원피스를 입은 한 여자가 로비로 들어와 투(Thu)에게 말을 건넨다. 둘은 서로 악수를 하고, 투(Thu)가 서류 봉투를 넘겼다. 나는 이 장면을 찍으려고 주머니에 있는 갤럭시 플립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그 순간, 편의점 종업원이 잔돈을 잘 못 거슬러 줬다며 내 어깨를 두드리는 바람에 스마트 폰이 테이블 위로 떨어졌다.


"법인장님. 잘 전달했습니다. 어떤 여자한테 봉투 전달하는 것 보셨죠? 사건이 잘 해결될 수 있게 사용하겠다며 받아갔어요." 투(Thu)가 허탈한 표정으로 얘기했다. "그래. 봤어." 그가 봉투를 넘기는 순간, 나는 무엇을 지키고 있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회사를 위한 일인지, 내 두려움을 덮기 위한 일인지. 편의점의 큰 유리창 밖으로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고, 그 여자는 아무 말 없이 봉투를 가방에 넣었다.


주말 내내 긴장이 된다. 월요일에 돈이 인출되는 것을 막을 수 있을지 걱정이 되어 제대로 있을 수가 없다. 백 변호사 얘기대로, 직원들 중에 그 녀석들과 연락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혹시 그 스파이 같은 사람이 회계부서 직원이면 백업 플랜이 잘 가동되지 않을 수 있다.


토요일 오후. 총무 매니저 로안(Loan)에게 연락을 했다. 본사 요청으로 다음 주 월요일 새벽에 지방에 있는 하치장을 불시 감사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회계부서 직원들은 전원 감사에 투입시키고, 회계 매니저만 회사에 출근하는 것으로 하라는 지시를 했다. 그리고 이는 불시 점검이기에 이 지시를 일요일 오후에 회계 매니저에게 전달하라고 일러두었다. 월요일 내내 회사에는 회계 매니저만 남겨서 혹시 은행에서 전화가 오더라도 회계 매니저만 받을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대부분 내가 채용한 직원들인데, 그들을 믿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는 것이 고통스러웠다.


일요일 저녁. 통역 직원 투(Thu)에게 연락이 왔다. "법인장님. 검찰청에서 T 지방 법원 소속의 집행기관은 3개월간 이 사건을 건드리지 말고, 자금 집행을 관여하지 말라는 공문이 나왔답니다. 광야 로펌의 리우(Lieu) 변호사에게 연락이 왔어요. 내일 아침에 바로 이 공문을 찾아서 집행기관에 제출할 거예요."


비가 그치지 않는 도시 위로 새벽이 오고 있었다. 이제 내일은, 우리의 플랜대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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