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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은돌 Jul 18. 2021

우연이 주는 신호

It's a small world

베트남의 최대 경제도시인 호치민에는 약 1천만 명의 인구가 있다. 그중에 한국 사람의 숫자는 인구의 1%인 10만 명 정도라고 추산된다.


이들 대부분은 한국 본사에서 파견 나온 회사의 주재원들, 그리고 현지에서 한국 회사에 채용된 사람들이다. 결국 이들은 몇 년 후에 다시 한국으로 돌아갈 계획이 있는 사람들이다. 그러기에 더욱 빠르게 정보를 얻고 근무하기 쉬운 장소에 밀집되어 살게 되는 것 같다. 한인들은 거의 호치민의 '푸미흥' 그리고 '안푸'라는 동네에 모여있다.


이렇게 해서 정말 좁디좁은 한인들의 세상이 생겨나게 되었다. 여기서 지낸 지 일 년쯤 지나니 한국행 비행기를 타거나 내릴 때는 꼭 아는 분과 인사를 하게 된다. 심지어 비행기 바로 옆좌석에서 이웃분을 만나 한국에 같이 갔었던 적도 있었고, 동네에서 또는 관광지에서 아는 사람을 만나는 건 그다지 특별한 일이 아닌 것 같이 되었다. 이런 상황이 너무 빈번해서, 꼭 시트콤에 들어와 있는 것 같다고 와이프와 얘기하기도 했었다.


한인이 가장 많이 사는 푸미흥


하루는 예배시간 전에 교회 현관에서 안내를 하고 있었다. "어서 오세요. 주보 받아 가세요." 이렇게 얘기하며 교회 입구에 서 있는데, 10년 전 즈음에 한국에서 마지막으로 만났었던 한 후배가 내 앞에 떡하니 서있다.


"어?" 깜짝 놀란 나는 비명에 가까운 기쁨의 감탄사를 내밷었다. 그도 그럴것이 지난 10년간 아무런 연락이나 왕래가 없던 사람인데, 갑자기 여기 베트남에서 만나게 되었다. 뭔가 현실감이 떨어지는 상황이라고 생각했고, 희박한 확률의 다중우주 어딘가로 갈려져 나온 기분도 느꼈다.


"어? 형님! 안녕하세요." 내 후배도 깜짝 놀란 분위기다. 나에게 인사를 건넨다.


"우와~ 오랜만이다. 잘 지냈지? 여긴 어쩐 일이야?" 난 마시던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현관문 틀에다 올려놓고 후배에게 악수를 청했다.


"아니, 형님도 베트남 계셨어요? 전 얼마 전에 여기로 발령이 나서 왔습니다." 내 악수에 응답하며 명함을 꺼내고 있다.


"하하하하, 은행에서 파견 나왔구나? 난 이제 1년쯤 됐어."


내가 고등학생 때, 날 교회로 이끌어 주셨던 목사님의 아들이다. 그땐 이 친구가 학생이었는데, 대학교 시절에 다시 만났다가 오늘 여기 베트남에서 또다시 만나고 있다. 정말 인연이 오래 이어진다.


"목사님은 잘 지내고 계시지?" 목사님과 똑같이 생긴 이 후배를 보며 이전에 알고 지내던 목사님이 생각났다.


"네, 그럼요. 건강히 잘 지내세요. 언젠가는 형님 얘기도 한번 하시더라고요." 진짜인지는 모르겠지만, 목사님도 날 기억하실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해봤다.


"식구들은?"


"와이프랑 애들이 있는데, 오다가 슈퍼에 좀 갔어요. 금방 올 거예요." 후배는 교회 뒷편의 편의점을 가리키며 뒤를 돌아본다.


"근데 여기서 만나니까 되게 신기하다. 아니, 어떻게 이 교회로 찾아왔어?"


"하하. 그러게요. 원래 다른 데 가려고 했는데, 예배시간을 잘못 알고 갔다가 허탕치고 여기로 온 거예요."


그 후, 이 친구의 가족과 여행도 다니고 서로 해외 생활을 의지하며 지내고 있다. 또 목사님도 베트남에 들어오셔서 식구들과 함께 만나기도 했었다. 여기 와서 더욱 느끼는 것이지만, 세상이 참 좁다.


처음 베트남에 도착한 날, 한국 자원봉사 단체에서 도와줬던 베트남 친구를 내가 일하게 될 베트남 회사에서 직원으로 다시 만났었다. 그 당시에도 이런 생각을 했지만, 이러한 사건들이 나에게 주는 메세지가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특히 해외에 나와서 이런 우연을 더 많이 경험한다는 것은 분명히 나에게 주는 어떤 징표가 아닐까?


'아직은 내가 옳은 길에 있다는, 그러니 아직은 여기서 돌이키지 말라는 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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