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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퐁당 Oct 23. 2021

셀프 카메라

[LIFE]

'아직도 바쁘냐'는 연락에 연말인걸 알았다.

흔한 연말 인사가 위로가 되는 건

누군가 나를 기억해 주었다는 사실 때문이다.

-

과연 끝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긴 터널 같았던 2020년.

올해 사진들 중엔 셀프 카메라로 찍은 사진이 유난히 없다.

-

20대의 마지막이란 아쉬움에 더 기록할 법 도한데

하루하루 정리할 시간 없이,

다 소화하지도 못할 일들을 꾸역꾸역 해내며

턱 끝까지 차있던 우울과 공허함을

마주할 자신이 없었던 것 같다.

-

참 힘들었는데

참 외로웠는데

나는 나를 좋아해 주지 못했다.

-

무작정 성실했던 나는 고장 나고 있었지만

성실함의 방향을 다시 잡지 못했고

예전과 똑같은 조건이 아닌 상황에서까지

왜 예전만큼 못해내냐고 나를 몰아붙였다.

-

우리는 힘들 때

역설적으로 힘든 스스로를 탓하고

더 힘들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냥 그때의 상황이 그랬던 것일 뿐인데

내 속도에 맞게 잠시 멈춰도 되는데 그걸 모른다.

-

괜찮다고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모든 것에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고

스스로를 마주하고 얘기해주었으면 좋겠다.

-

셀프 카메라로 나를 찍는다.

올 한 해 잊고 살았던 나를 기억하고,

참 수고했다고 칭찬해주고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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