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휸 Aug 23. 2023

수고롭고 슬기로운 길치생활

2020년, 1년차 시작과 동시에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이 방영되었다. 당시에는 드라마를, 그것도 의학 드라마를 챙겨볼 시간도 없거니와 마음의 여유는 더더욱 없었기에 수개월이 지나 한데 몰아보며 뒤늦게 드라마에 빠져 지냈다. 1년 뒤 시즌 2가 방영될 때에는 아주 조금의 여유를 찾아서인지 매주 열심히 챙겨보았고, 덕분에 즐겁고 슬기로운 2년차의 여름을 보낼 수 있었다.


기억나는 어느 회차가 있다. 극 중 유능한 간담췌외과 교수인 이익준(조정석 분)도 인턴 때 설압자(구강 안을 진찰하기 위해 쓰는 막대)를 가져오라는 말에 서랍장을 끌고 왔다며, 누구에게나 있을 미숙함을 위로해 주었던 에피소드였다. 어리버리한 인턴 그 자체인 조정석 배우를 보며 많은 사람들이 즐거워했지만 왜인지 나는 대신 서늘해졌으며 내 인턴 시절이 떠올라 마냥 웃을 수만은 없었다.


인턴 시절, 한 달의 주기로 소속 과는 바뀌었고 매달 말 각 과마다의 업무를 인계받기 바빴으나 회진 가이딩은 어느 과나 공통적으로 인턴이 해야 하는 주요 업무 중 하나였다. 수많은 입원 환자들이 때에 따라 여러 층에 걸쳐 여러 병동에 재원하고 있는데, 동선을 잘 짜고 해당과 환자 앞으로 정확히 안내를 함으로써 신속 정확한 회진을 마무리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선천적인 길치'였던 나는, 인턴 초반 이 일이 몹시 고되게 느껴졌다.


당시 병원은 구관과 신관이 복잡하게 이어져 있었는데 길치인 데다 무려 '3월 인턴'이기까지 한 내게는 아주 도전적인 건물이었다. 첫 출근을 앞둔 저녁, 꼼꼼히 회진 동선을 짜고 예행연습까지 마쳤지만 당일의 사정은 몹시 달랐다. 남자 교수님들과 남자 전공의들만 있는 과이다 보니 모두가 한걸음 걸을 때 나는 최소 세 걸음은 걸어야 조금이라도 앞서 안내할 수 있었다. 또 긴장 속에 빨리 걷기에만 열중한 나머지 결국 전일의 연습과는 다르게 모두를 안내하고 말았다. 길이 아니었던 그곳은 철제 구조물 등이 가로막고 있었고, 그 구조물이 어쩌면 내 운명을 되돌릴 마지막 기회였으나 당시 나는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리고 열정 가득했던 김 인턴은, 그것을 아주 열심히도 치우기 시작했다. 다른 선생님이 말렸다고 하지만 전혀 들리지 않았고, 이 기묘한 광경에 교수님들은 그대로 멈춰 크게 웃으실 뿐이었다. 조금 다른 방식으로 화려하게 인턴 데뷔를 했던 첫날이었다.


사실 이전부터 선천적인 길치임을 진단해 주는 사건들은 무수했다. 7살이 되어 처음 성당 주일학교를 갔던 날, 끝나는 시간에 맞춰 부모님이 데리러 오실 예정이었지만 그 낯섦을 견디지 못해 자리를 박차고 나온 적이 있었다. 곧바로 보이는 아파트가 집이었는데도 그저 길에서 꺼이꺼이 울다 식당 아주머니를 통해 부모님을 모셔올 수 있었다. 이후 단단히 연습을 하면서 겨우 집에서 성당까지의 길은 수월해졌지만, 문제는 이 경로에 조금이라도 변수가 생길 경우였다. 주로 토요일 낮에 근처 친구네 집이나 또는 근처 패스트푸드점에서 생일 파티가 열렸는데, 여기서 성당까지 가야 할 때가 종종 있었다. 걸어서 10분도 채 되지 않는 가까운 거리였음에도 나는 혼자 가는 법을 몰랐다. 그저 이제 그만 놀았으면, 나 좀 데려다주었으면 하고 남의 잔치에서 칭얼대던, 참으로 눈치도 없는 길치 어린이였다. 또 한동안 15분 거리의 외가에서 등하교를 해야 했던 때에는, 구간마다 장소를 정해 아빠는 미리 차로 가 계시고 나는 혼자 걸어가는 특훈을 여러 날 반복해야만 했다.


고등학교, 대학교 시절도 예외는 없었다. 오히려 점차 생활 반경이 넓어지며 길치의 면모는 더욱더 두드러졌다. 길치 주제에 성급히 틀린 길로 앞장서는 경향이 있었고 친구들은 갈림길에서 반사적으로 내 손을 잡아끌며 타박하곤 했다. 이밖에 식당이나 가게에 들어갔다가 다시 나오면, 본래 목적지로의 방향이 쉽게 잡히지 않았다. 마치 나침반을 세차게 흔들어 다시 놓았을 때 침이 북쪽을 가리키기까지의 시간이 아주 오래 걸리는 것과도 같았다. 방향을 찾는 일이 본능적 또는 직관적이지 못한, 그야말로 방향치였다. 또 주변 건물, 지형에 대해서도 크게 관심이 없다는 것이 특징이었다. 헨젤과 그레텔처럼 야무지게 과자를 흘리지는 못할 망정 기억에 도움이 될 무언가라도 공들여 구해야 하는데, 이내 떠내려가 버릴 구름을 보며 별생각 없이 걷는 까닭이었다.


길치, 곧 나의 특징을 객관화하고 보니 고칠 수 있는 점들이 보였다. 여러 사람과 함께 길을 갈 때에는 절대 앞장서지 않으며 중간 혹은 맨 뒤 자리를 사수할 것. 갈림길에서는 사람들의 시선을 따라 자연스럽게 행동할 것. 여정 중에 잠시 건물에 들렀다 나올 때는 어느 쪽으로 가야 하는지 필히 외우고서 들어갈 것. 이 길을 혼자서 되돌아가야 할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미리미리 주요 건물의 간판을 세심히 관찰하거나 기록할 것. 수고로운 길치생활을 결심하며 나는 아주 조금씩 발전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스마트폰을 사용하면서부터 급격한 발전을 맞이했다. 단순히 지도를 넘어서 지금 내 방향이 맞는 건지, 어느 버스를 어디서 타면 되는지, 시간은 얼마나 걸리는지까지 친절하게도 알려주는 다양한 지도 어플과 함께라면 그 어떤 길도 두렵지 않았다. 사실 이전까지 나는 새로운 길을 간다는 것이 늘 불안했고 길을 잃었을 때 느끼는 당혹감, 부끄러움, 실망감은 지겨울 정도였다. 이 부족함은 때로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기도 했으며 스스로의 활동에 제약이 생기게도 했다. 하지만 스마트폰을 쓰면서부터 국내뿐 아니라 해외 어느 곳도 혼자 가는 것이 두렵지 않았다. 길 찾기의 성공을 거듭하며 안도감도, 나아가 성취감도 느낄 수 있었다. 행여 중간에 조금 잘못 내리더라도 한 블럭쯤 착각하더라도 다시 올바른 길로 돌아갈 수 있다는 확신, 어찌 되었든 나는 목적지에 당도할 수 있으리라는 자신감이 함께 했다. 또 길을 찾는 것에 여유가 생기면서부터 길 위의 아름다운 것들도 함께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계절마다 여실히 변화하는 아득한 산들도, 하루 끝 노을도, 재잘거리는 아이들도, 총총거리는 강아지들도 한때는 초조함에 흘려보냈던 아름다운 일상이었다. 잘못 들어간 길에서 우연히 발견한 맛집과 카페들도 소박한 즐거움이었으며, 길을 찾을 때 이따금 도움을 주었던 이름 모를 이웃들도 뒤늦게나마 깨달은 소소한 축복이었다.


돌아가더라도 목적지에 닿으리라는 확신, 잘못 들어서도 그 길 나름의 행복이 있으리라는 긍정적인 마음, 여정마다 존재하는 누군가의 사랑과 귀여움을 한껏 느끼겠다는 여유로움. 다소 수고롭더라도 슬기로운 길치생활의 깨달음은 삶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될 덕목이었다. 의사가 되기를 열망하고 노력하면서, 때로 몇 번이고 그만두기를 주저했었다. 어쩌면 조금 돌아가기도, 실패를 경험하기도 했던 여정이었지만 수없이 길을 잃고 찾으며 얻은 경험과 깨달음들이 알게 모르게 나를 버티게 하고 성장시켰으리라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토록 열망했던 의사이자 전공의로서의 삶을 시작하면서부터는 정해진 일과와 업무대로 일하고 공부하며, 길을 찾고 고민하는 것에 도리어 둔해졌다. 일과를 마치면 잠들기 바빴고 잠에서 깨면 출근하기 바쁜, 멀리 내다볼 새 없이 순간만을 살았던 날들이었다. 수련을 마무리하며 그 누구도 알려주지 않고 이끌어주지 못하는 길 찾기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제 나는 행복한 한 사람이자 행복한 소아청소년과 의사로 살 수 있는 길을 어설프게나마 꿈꾸고 있다.


스물이 한참 넘어서야 마침내 슬기로운 길치가 된 것처럼, 아주 오랜 시간 동안 그 길을 고민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언제고 슬기로운 길치생활의 덕목을 상기하며, 사복사복 둘레둘레 가족도 이웃도, 그리고 만나는 아이들도 부단히 사랑하는 여정이기를 다짐한다. 또 조금 쉬어가거나 돌아가더라도 언젠가 과자 부스러기처럼 흘려둔 단서들이 모여 나를 목적지로 이끌어주리라 믿는다. 무엇보다 행여 처음 생각했던 목적지가 명확해지지 않더라도 실망하지 않기를 바란다. 순간순간의 여정들만 슬기롭게 충실하게 살아낸다면 어느 날 뒤돌아본 그 여정 자체가 나의 목적지일지도 모를 일이다.


이전 10화 편식쟁이 소아과 의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