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식 성공 스토리
요즈음 내게 주어진 업무는 외래 진료이다. 단독으로 일반 질환 진료를 보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키가 작거나 성 발달이 빨라 내원하는 아이들의 예진을 담당한다. 예진이란 교수님 진료 전 문진 및 진찰을 하는 것으로, 작성한 예진표를 토대로 아이의 성장 속도, 출생력과 과거력, 가족력을 묻는다. 덧붙여 아이의 식습관, 운동 시간, 수면 시간 등을 체크하고 발달 평가를 한다.
보호자와 문진을 할 때 대체로 아이들은 다소 쭈뼛대며 잠자코 앉아 있기 마련이다. 그러다 식습관을 이야기하는 부분에서 민망한 듯 슬그머니 웃어 보이거나, 때로는 원망스러운 눈빛을 보내기도, 보호자의 팔을 덥석 움켜쥐기도 한다. 뭐가 아닌 지 몰라도 아니야, 먹긴 먹어,라고 항변을 하는 아이들도 많다.
언젠가는 한 여자아이와 엄마가 함께 진료실로 들어왔었다. 아이의 어머니, 아버지 모두 키가 크셨는데 타원 진료를 보고 나서 아이의 최종 키가 158cm로 예상된다고 하자 놀래서 오셨다고 했다. 덩달아 나도 놀랬다. 158. 나름 열심히 키워 온 나의 최종 키였다. 앉은 채 진료를 하는데도 왜인지 허리를 꼿꼿이 펴 보았다. 사실 고백하자면, 나도 편식쟁이였고 치료는 받지 않았지만 성장 클리닉 진료를 봤던 어린이였다.
해산물, 채소, 특히 나물, 과일은 아주 좋아했지만 우유와 고기류를 많이 좋아하지 않았고 지금도 그렇다. 이것은 채소를 좋아하지 않는 아이보다는 가려 먹는다는 티가 덜 났고, 얼핏 골고루 먹는 아이처럼 보이기도 했다. 특히 섬에서 학교를 다녔을 때, 나는 걸리지 않고 편식하는 방법을 깨우쳤다.
초등학교 입학 첫날, 중간놀이 시간에 당번 두 명이 우유 급식이라며 주전자에 담긴 걸쭉하고 노란, 뜨끈한 우유를 가지고 왔다. 이게 무슨 우유인가 싶었지만 얼핏 고소한 냄새가 나는 것 같아 한 모금은 마셔보았고, 그대로 토하는 바람에 아끼던 분홍색 재킷이 지저분해졌다. 원래부터 팩에 담긴 흰 우유조차 즐겨 먹지 않았고 두유는 입에도 대지 않았으니 어찌 보면 그 유난은 예상된 일이었다. 나는 돌배기 동생이 얼마 전까지 먹었던 분유를 준다고 생각했다.
당시 시절은 지금처럼 먹고 싶지 않다고 안 먹거나 다른 걸로 바꿔줄 수 있는 때가 아니었다. 다행히 같은 반 친구들은 그 우유를 참 좋아했고 딱한 나를 도와주고 싶어 했다. 내 그릇에는 처음부터 아주 조금 따르는 척만 하고, 이후 선생님 눈을 피해 다른 친구들이 번갈아 마셔 주면서 그렇게 3년을 버텼다.
또 다른 편식 리스트는 오리탕이었다. 소고기와 돼지고기는 먹긴 하지만 소화가 잘 되지 않는 적이 많았으며 닭고기는 더더욱 그랬다. 게다가 오리고기는 특유의 냄새까지 느껴지는 것이었다. 당시 섬에 오리가 많았던 건지 거의 매주 월요일마다 오리탕이 급식에 나왔고 나는 일요일 저녁부터 심기가 불편해졌다. 또 급식을 다 먹었다고 검사까지 받던 시절이라 더더욱 힘들었다. 매번 오리탕 앞에 당도하기도 전에 “조금만 주세요!” 다급하게 외치는 것이 중요했다. 아주머니는 갸웃, 고개와 함께 아주 조금 국자를 기울여 덜어 주셨다. 그다음은 친구들의 몫이었다. 이곳저곳 잘 먹나 둘러보는 선생님의 눈을 피해 아주 태연하게 아이들에게 국을 덜어주고 다 먹은 아이들의 국그릇과 바꿔치기도 하면서, 3년 동안 월요고개를 넘어갔다.
그렇게 매주 아슬아슬 편식을 성공해 낸 어린이는 결국 158cm의 어른이 되었다. 그리고 내가 그토록 듣기 싫었던 잔소리를 하는 어른이 되었다. 조금만 더 일찍 자거라, 핸드폰은 조금만 하거라, 한 시간씩이라도 운동을 해보자, 그리고 채소도 조금씩 먹어보자. 편식쟁이 의사는 양심에 찔린 나머지 골고루 먹으라는 말을 돌려 말하기로 결심했다.
매일 아이들에게 하루의 잔소리 할당량을 채우며, ‘나 때’보다 쑥쑥 자라나는 아이들을 부러워한다. 하지만 이제 키를 키우는 건 언감생심. 최종키를 유지라도 하려면 아주 단단히 노력해야 함을 인정하고 다짐한다.
거북목 탈출을 위해 삐걱대며 스트레칭을 하고, 금세 차를 탔을 거리도 운동으로 여기며 걸어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장 ‘지금 아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참 좋았겠다 ‘며 너스레를 떨었더랬다. 하지만 꽤나 자주 식당 메뉴를 확인하고 곧바로 라면을 먹자고 의기투합하는 나와 동기를 보면 여든까지 간다는 세 살 버릇, 절반도 지나오지 않았음을 실감한다. 그리고 내일의 내가 해결하리라, 오늘도 쉽게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