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쳐티쳐 룩앳미 팔로미
최근 드라마 '닥터 차정숙'을 재밌게 보았다. 그리고 극 중에서 주인공 차정숙이 전공의 시험에서 50점 만점에 무려 49점, 초고득점을 획득한 것에 몹시 놀랐다. 이 전공의 시험은 인턴 수료를 한 사람들이 전공의가 되기 전 치러야 할 1차 관문으로, 대부분의 과에서는 이 점수가 매우 크게 반영된다. 따라서 인기 과를 희망하는 사람들은 고득점을 받기 위해 수개월 전부터 공부하는 게 일반적이고, 심지어 희망하는 과에 합격하지 못하면 수년이 걸리더라도 두세 번쯤 응시하기도 한다.
소아청소년과 인턴을 하던 여름날, 나는 소아청소년과 전공의로 지망하겠다고 의사를 밝혔다. 그리고 모두 경쟁을 통해 소아청소년과에 화려하게 입성했던 선배들은 기특해 마지않으며 시험성적이 제일 중요하다며 조언해 주었다. 다른 과보다는 경쟁이 덜 하더라도 조금의 경쟁마저 피하고 싶었던 나이기에, 전공의 시험이 다가올수록 마음이 무거웠다. 그러나 얄궂게도 딱 그 해부터 소아청소년과의 인기는 급감했고 정원 모집 미달이 예상되기 시작했다. 오히려 좋아, 나는 철없이 문제집을 더디 보기 시작했다. 시험을 치를 당시에 유독 당직도 일도 많던 과의 인턴이어서 체력적으로 한계를 느낀 것도 좋은 핑계로 여겼다. 아주 여유롭게 준비해서 부담 없이 치르고 나온 내 시험 점수는, 무난과 평범을 추구하는 내게 더없이 어울렸다.
사실 이런 내 성향은 강산이 두 번쯤 바뀌는 동안에 완전히 변해온 것이었다. 어린 시절의 나는 '욕심이 많다'는 얘기를 늘 듣고 살았던, 승부욕과 질투심으로 타오르던 악바리였다. 7살 즈음 또래 아이들과 그룹 지어 과외 아닌 과외를 했는데, 원어민 선생님과 영어로 한두 시간씩 동화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고 게임을 하는 것이었다. 마땅한 장소가 없어 각자의 집을 번갈아 제공하기로 했고, 드디어 우리 집에 모이는 날이 되었다. "티쳐티쳐, 룩앳미 팔로미!" 선생님 방문을 앞두고 몇 번이고 외워 두었던 문장으로, 반짝반짝 집청소에 못지않는 중요한 사전 준비였다. 이내 선생님 손을 이끌고 집안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미술 대회와 피아노 대회에서 받은 메달, 트로피를 낱낱이 자랑했다. 다른 집에서 수업을 하는 날이더라도, 우선 테이블의 중앙을 선점해 있다가 선생님이 앉으시는 자리에 맞춰 곧바로 이동하면서 선생님의 곁을 홀로 차지하고 싶어 했다. 아이들은 흔쾌히 선생님 옆자리를 양보해 주었고 이렇게 유난을 떠는 애는 나밖에 없었다.
그러다 8살에 섬에 있는 초등학교에 입학을 했고, 그 얄미운 승부욕은 한동안 이어졌다. 학원이나 과외가 무엇이랴, 그저 친구들과 산으로 바다로 뛰어노는 것이 전부인 날들이었다. 하지만 발야구, 줄넘기, 오징어 게임 등을 하면 꼭 우기고 성내다 울먹거리며 끝을 내는, 한마디로 분위기 망치는 애가 바로 나였다. 운동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데다 게임 이해도도 낮았던 게 분명한데 지는 걸 못 참아했던 밉상을, 아이들은 끼워주기 망설여했고, 나도 점차 부끄러운 행동이라고 느끼기 시작했다. 또 '휸이는 그림을 잘 그린다.' '정민이는 노래를 참 잘한다.'라고 진심으로 칭찬해 주는 친구들을 보면서도 올바르게 어울리는 것이 무언지 깨닫기 시작했다.
서서히 사회화가 완성될 무렵 나는 다시 도시의 초등학교로 전학을 갔고, 수학 시험을 보고 나서 반의 나머지 공부반에 들게 되었다. 어릴 때 함께 놀던 동네 친구들은 이미 학원에 다니기 시작했고, 나보다 더 빠르고 쉽게 문제를 풀어냈다. 게다가 시골에서 왔다며 무시하던 분위기도 은근했다. 나는 아빠와 서점에 가 여러 출판사의 총정리들을 한데 모았고, 며칠 동안 집 바로 옆 시립 도서관에서 저녁 11시까지 시험공부를 한 끝에, 반 3등이라는 쾌거를 얻어 냈다.
어릴 때부터 ‘욕심이 많다’는 말을 들으면서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던 것 같다. 어린 내가 생각하는 ‘욕심’이라는 단어는 부정적인 표현일 뿐이었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하면, 어른들의 ‘욕심이 많다’는 말은, 잘하고 싶은 의욕적인 마음이 어긋나지 않도록 보듬어주는 말이었다. 잠시 어긋날 뻔했던 나는 비로소 그리고 몸소 욕심의 의미를 깨달았다.
그저 잘한다 잘한다 들어 ‘나만’을 외치던 미운 일곱 살 퉁퉁이를 바른생활 어린이로 만든 건 무해한 친구들과 무해한 자연이었다. 자라나며 친구들 뿐 아니라 스스로조차 다치게 하기 쉬운 그런 마음들은 어린이라서 더 쉽게 정화되었다. 도시 학교에서 친구들보다 두배로 나머지 가르침을 받으며 부끄러운 마음도, 잘해보겠다는 욕심도 생기기 시작했지만, 이는 내 부족함을 깨닫고 노력하는 좋은 욕심이었다. 곧, 어린이가 배운 겸손이었다.
이후로도 공부를 꽤 열심히 한 삶이었지만, 다른 사람을 목표로 두지 않으며 오로지 내 부족함을 바라보고 달려온 것 같다. 그리고 나이를 먹을수록 경험이 더 쌓일수록 다른 이보다 더 나에게 집중하게 된다. 아직도 부족하고 나약한 인간이라는 점을 느끼기에, 알고 있다고 믿는 것을 자만하지 않기를 순간순간 매섭게 지켜보고자 한다. 언제나처럼, 아이들에게 좋은 것만 주는 의사가 되기를 기도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