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 엄마가 되고싶은 나의 고구분투기 ~
3학년 큰 아이의 공부를 봐주면서 간접적으로 나도 초등생 교과공부를 하게 된다.
그중 배추 흰나비의 한살이에 대하여 공부했는데, 배추 흰나비 번데기는 움직임이 없는 상태로 7~10 일동안 식물이나 나무에 붙어 있지만, 번데기 과정이 지나면 어른벌레인 배추 흰나비가 된다.
문득 번데기의 모습이 나의 모습과 닮은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 번데기 엄마(1) : 워킹맘에서 전업맘으로..
지금의 아이아빠와 연애시절 큰아버지 칠순잔치에 가게 되었는데, 옆자리에 앉은 고종사촌오빠의 올케언니와 두 조카딸들이 엄마와 마주보고 웃으며 다정하게 식사하는 모습이 눈에들어왔다.
내가 자란시절까지만 해도 '집에 남자가 있어야돼' 등등 그런말을 듣고 자라온터라 그 모습이 따듯해보여 눈길을 계속 주면서도 한켠으로는 '딸만 둘이네, 난 나중에 결혼하면 아들을 낳아야지' 라는 구시대적 관념을 되뇌였었다.
눈길이 계속 가던게 어쩐지 나의 미래모습을 미리 보았었던 것이 아니였을까?
결혼하고 1년 6개월이 흐른후 큰딸이 태어나고, 3년뒤에는 작은딸이 태어났다. 그렇게 나도 두 자매의 엄마가 되었다.
첫째애를 6개월 기르다가 복직해서 친엄마에게 맡겨가며, 2년 일하다 스트레스와 과로로 두번째 임신을 유산하게 되었다. 산업체 영양사로 8년을 일하면서 제일 견디기 힘들었던 것은 회사에서의 내노력과 성과에 상관없이 고객사 눈밖에 나면 내일이라도 당장 짐을 싸서 다른 점포로 옮겨 일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8년을 일하고 느낀 산업체 영양사의 생존여부는 고객사 담당자와 노조지부의 입안의 혀가 되는것과 고객사의 요구와 회사의 손익사이에서 줄타기를 잘하는 것이였다.
결론적으로 나는 입안의 혀처럼 굴지 못했고, 줄타기도 잘 못했다.
마지막으로 근무했던 점포의 노조지부장은 나를 잡아먹을 듯한 눈으로 노려보며, 불만을 이야기 했고
고객사 담당자는 당장 내일 짐빼라는 통보를 했다.
점조직으로 다른 회사식당에 입주해 눈치를 반찬삼아 살아가야 하는것이 하루하루 얼음을 걷는 기분이였다.
회사에서 배운점도 많았고, 아쉬움도 있었지만 심리적으로 지쳐있던 나는 퇴사를 택했다.
그렇게 나는 전업맘이 되었다.
#. 번데기 엄마(2) : 육아도 회사생활 못지 않게 힘들다.
'육아를 하고 살림을 하는것이 훨씬 더 편하겠지, 회사생활에 비하면 ..' 호기롭게 생각했던
나는 본격적으로 둘을 기르고 살림하면서 그것이 굉장한 착각 이였음을 깨닫기 시작했다.
동생이 생기니 두돌때까지 엄마품에 있지 못하고 주로 외할머니 품에서 자란 첫째의 질투가 심했다.
자기는 완전아기때 엄마랑 붙어서 자라지 못했는데, 엄마품을 떠나지 않는 동생을 보면서 견딜수가 없었나 보다... 조금이라도 주의 하지 않으면 동생을 긁고 때렸다. 한번은 집안일을 하다가 보니 10개월동생과 큰애가 얼굴을 서로 번갈아 때리고 있었다. 큰애가 자꾸 때리니 맞고만 있던 10개월짜리 작은 아이도 반격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난 남동생과 놀이방식과 성향이 틀려서 서로 따로 국밥처럼 자랐기에, 그렇게 매사 신경전을 한적도 없고, 말싸움이나 때리고 싸운적도 많지 않았다.
성격도 엄청 무뚝뚝하고 조용한 편이라 친구들 사이에서도 조용한 편이었던 내가 매사 신경전을 하고, 말도 엄청많고 잘 울고 복잡 미묘한 어린 두여자를 감당해나가는것이 벅찼다.
중재를 할라치면 자신의 억울함과 주장을 펼치는 두아이에 말려서 어느방향으로 가는지도 모르고 결론을 내버려서 한아이한테 억울하다고 엄마밉다 라는 말을 듣곤 했다.
작은아이는 태어난지 50일때 돌발진으로 병원입원을 했는데 한번으로 끝날줄 알았던 병원입원을 그 뒤로도 정기순례처럼 일년에 한번씩 다양한 질환으로 하게 되었다.
한돌전 아이 목에서 자꾸 이상한 소리가 나서 대학병원에 가봤는데 심한 천식은 아니지만 소아천식같다고 하였다.그래서 그런지 찬바람을 좀 오래 쐬거나 외출이 길어지면 탈이 나곤했다. 아이를 건강하게 키우고 싶었지만, 면역력이 없는 아이는 열이나기 시작하면 떨어지질 않았고 매우 고통스러워 했다.
할수없이 병원생활을 매년 일주일 정도 하게 되고, 할때마다 너무너무 힘이 들었다.
어린아이라 핏줄이 닝겔바늘을 견디지 못해 몇번씩 다른 핏줄을 찾아 놓을때마다 소리지르다 목이 쉬어 눈물만 뚝뚝 흘리는 아이를 보면서 같이 울었고, 지친눈이 감아질라 치면 병실아이들과 우리아이의 신음소리와 울음소리에 잠이깨 밤을 꼴딱 새는일이 다반사였다.
그럴때마다 나를 일으켜 세운건 내 안에 있는 엄마본능 이였다.
13개월때 병명을 제대로 찾지 못해 이병원 저병원 전전하면서 아이가 잘못될것같은 두려움에 사로잡힌적이 있다. 병원마다 진단이 석연찮고 쓰는약이 듣지 않고 눈은 퉁퉁 부어서 제대로 뜨지 못하는 상태까지 갔는데, 이아이를 절대 포기할수 없는 강렬한 의지가 나를 채우고 있음에 내자신도 '엄마의 모성애는 이런거구나' 하는 신기함이 느껴졌다.
새벽에 남편과 기도를 하고 한 대학병원의 선생님을 예약도 못하고 찾아가 간호사분들께 사정사정 했다.
아이의 눈을 보고 진료를 봐주신다고 하셔서 진료를 어렵게 봤는데, 폐렴 휴우증으로 중이염이 깊게 왔다는 진단을 받았다. 눈은 균이 귀에서 눈으로 번진거였고, 그에 맞는 항생제 치료를 받고 서서히 회복하였다.
내 직업이 영양사였는데도 큰애 아침을 밥과 반찬으로 차려주기 귀찮아서 아침식사를 밥과 반찬으로 주지 않고, 우유와 빵 비스켓등으로 주었다.
4살때까지는 영유아 검진을 했을때 성장정도가 중간정도는 되었는데 5살때는 키가 앞에서 여덟번째 몸무게는 앞에서 다섯번째로 나왔다.
그냥, 쉽게 되는건 없구나.. 인생에 공짜는 없다..
#. 번데기 엄마(3) : 어른 엄마가 될수 있을까?
계속된 시행착오 끝에 이제는 한 아이씩 먼저 마음을 들어주고 공감을 해준다음 최대한 알기쉽게 결론을 내주려고 노력한다.
천식이 있는 아이를 기르면서 실생활로 느낀 건강 팁은 호흡기가 많이 약한 아이는 외출할때 마스크를 쓰면 다양한 호흡기 질환을 예방할수 있다는 것이다.
아침을 빵보다는 밥과 반찬으로 주고 있다. 아침 뿐만 아니라 평소 밥과 반찬도 내 전공을 살려서 기호와 필수영양소를 생각해서 밥은 도정된 백미에 부족한 비타민B1을 채워줄 현미와 잡곡을 넣어 짓고, 국과 반찬은 자극적이지 않고 싱겁게, 단백질반찬은 기호에 맞게 다양한 조리법으로 식이섬유를 최대한 파괴하지 않게 주로 야채무침이나 생야채로 제공한다.
김치를 잘 담그지는 못하지만, 아이들이 좋아하는 오이소박이와 열무김치를 담가보고, 귀찮지만 고기를 갈아와서 동그랑땡과 함박스테이크를 만든다.
사회인으로서도 엄마로서도 참 부족하고 부족했다.
하지만, 사회에서 겪은 여러 일들을 통해, 아이가 성장하면서 부딪히는 수많은 일들을 같이 겪고 이겨내가면서 얻는것들로 인해, 엄마로서 사회구성원으로서 거듭나고 성장해 가고 있음을 이제 조금은 알것같다.
번데기는 겉으로 보기엔 아무 진척이 없어보이지만, 그안에서 많은 과정을 거치며 어른벌레로 성장해 간다.
나 자신 또한 번데기처럼 많은 과정을 거치면서 어른과정으로 가고있는 번데기 엄마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feat: 어른엄마가 될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